사람은 사람을 통해 살아간다.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빠르게 급변하는 기술과 유행 속에 편입하려 노력하는 세상입니다. 기술과 알고리즘보다 더 가치 있고 풍요로운 것은 무엇일까요? 필자는 ‘사랑’이라 외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닥쳤을 때, 알고리즘과 AI가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을지요. 그만큼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고, 또 기댐이 되어주며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힘, 사랑의 힘을 전파했던 귀엽고 엉뚱한 자크 타티 감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과 사랑의 힘으로
자크 타티
슬랩스틱(slapstick)을 아시나요? 슬랩스틱은 신체적 개그로 웃음을 주는 코미디 장르인데요. 슬랩스틱 코미디는 영화 사운드가 없던 무성 영화 시대의 대표 장르입니다. 대표적으로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감독이 있었죠. 하지만 영화 사운드가 도입되면서 무성 영화는 쇠퇴되고 수많은 무성 감독과 배우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자크 타티 감독은 프랑스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계속해서 이끌어갔는데요. 그는 무성과 유성, 슬랩스틱과 유성영화를 연결해 주는 프랑스 모더니즘 감독이었습니다.
자크 타티 감독은 본래 럭비 선수로 활동하다가 1930년대부터 마임 전문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몸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그는 단편영화에 출연하고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7년 단편영화 <우체부 학교>로 감독 데뷔를 합니다. 그는 앙드레 바쟁, 프랑소와 트뤼포 등 프랑스 평단과 감독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장 뤽 고다르는 “타티의 영화와 더불어 프랑스식 네오리얼리즘이 탄생했다”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자크 타티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 문법을 개발했으며, 되려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흥행에 실패한 감독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거대도시의 교란자 윌로씨
자크 타티 감독은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릴 만큼 찰리 채플린과 견주어져 왔습니다. 채플린은 계급 사회를 비판했던 반면, 타티는 산업 시스템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지켜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채플린은 <황금광 시대> 처럼 하층민이 되어 비극적인 슬픔을 연기해 파토스(pathos)의 대가가 되었고, 자크 타티는 그저 엉뚱한 ‘윌로 씨’일뿐이었죠. 여기서 ‘윌로’는 자크 타티가 직접 연기한 영화 속 인물입니다. 타티 감독의 <윌로씨의 휴가>에서 처음 등장한 윌로는, 이후 타티 감독의 여러 영화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요. 언제나 레인코트와 중절모를 쓴 채 입에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윌로는, 엄숙하고 단절된 산업 도시 속에서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고 다닙니다. 자크 타티는 윌로를 통해 ‘인간다움’을 강조합니다. 차가운 도시 속에서 윌로가 일으키는 실수와 행동은 웃음을 일으키고, 인물 간의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윌로가 타티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 <플레이타임>은 주인공과 플롯(이야기)이 완벽히 부재한 영화인데요. <플레이타임>은 오로지 인물 간의 무수히 많은 대화, 충돌, 만남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극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에 화면 속에 보이는 모든 것이 중요해지죠. 타티 감독은 위 스틸컷처럼 넓은 화면에 모든 것을 채워 담아 관객이 이를 자유롭게 보게 하였는데요. 평단에서는 이에 대해 ‘프레임의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더욱 예민하게 눈과 귀를 열어 프레임을 관찰하게 되고, 타티가 곳곳에 숨겨 놓은 시청각적인 개그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타티의 시청각적 유머
<플레이타임>에서 윌로가 의자에 앉을 때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는 마치 사람의 웃음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이처럼 자크 타티의 영화는 여러 가지 사물과 사람의 소리로 관객에게 웃음을 줍니다. 스테판 구데의 언급처럼 타티의 세계는 “모든 일상의 소리들은 발언권을 가지면서 정확성을 담보한 채, 때로는 놀라움을, 때로는 웃음을 촉발”합니다. 위 스틸컷처럼 영화 <나의 삼촌>에서 윌로가 자신의 여동생 집을 누비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동생의 집은 매우 호화롭고, 기계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정형화된 공간인데요. 시골 마을에 사는 윌로가 낯선 기계들을 잘못 만져 내는 아찔한 소리들이 되려, 그 호화로운 집을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동시에 윌로의 슬랩스틱도 우리에게 웃음을 주죠. 그의 영화에서 도시의 소리는 강박적이고 기계적이지만, 윌로가 등장하는 순간 그 소리들은 리듬이 깨지고 엉망이 되어 웃음을 유발합니다.
자크타티는 공간 연출 또한 뛰어난 감독이었는데요. <플레이타임>의 배경인 ‘타티빌’은 자크 타티 감독이 1만 5000평 부지의 땅을 매입해 만든 가상도시 세트장입니다. 복합단지와 발전소를 갖춰 당시 근대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담았는데요. 그리고 위 스틸컷처럼 타티빌의 사무실은 금속 칸막이로 둘러싸여, 모두 같은 색상과 크기의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이를 통해 자크 타티 감독은 한 개인이 거대 도시의 부속품처럼 되어가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점점 윌로가 일으킨 무질서한 사건으로, 도시는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소이자 일상의 무대가 되어가죠. 이외에도 <나의 삼촌>에선 도시와 시골의 공간 대비를 통해 단절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트래픽>에서는 자동차와 도로 등의 공간으로 개성 없이 획일화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크 타티 감독은 낙천과 유머로 영화를 가득 채웠습니다. 타티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메시지를 깨닫도록 하였는데요. 그는 삶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웃음을 통해 끝없이 전합니다. 타티 감독은 “코미디는 누구에게나 속해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타티 감독의 영화를 보면 나만의 유머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고, 또 우리가 잊어가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기분도 듭니다. 필자는 독자 여러분들 또한 이 엉망스럽고,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운 윌로씨를 만나보길 바랍니다. 자크 타티 감독의 일부 영화들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여러분의 영화적 체험을 기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