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턱 막히게 하던 더위도 어느새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스칩니다. 이번 여름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올해가 남은 인생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닌, 오늘 우리에게 닥친 위기입니다. 개인과 국가, 산업의 분야를 막론하고 기후 위기 해결은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죠.
그렇다면 음악은 기후 위기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음악 산업의 영향력을 통해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선단체 ‘어스퍼센트(Earth Percent)’의 활동을 통해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돌아보고, 문화가 가진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법을 함께 고민해 보아요.
공동 저작권자 ‘지구’
어스퍼센트는 영국의 앰비언트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설립한 자선단체입니다. 이노는 자신의 앨범에서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예술과 감성이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등, 환경 문제와 예술의 영향력에 대해 깊이 탐구해 왔죠. 전 세계에서 모금된 기부금의 3%만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쓰인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이노는 2020년 어스퍼센트를 발족했고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더 적극적인 행동을 전개합니다.
어스퍼센트는 아티스트가 공동 저작권자에 ‘지구’를 등재하고, ‘지구’ 몫의 수익을 어스퍼센트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기부금은 어스퍼센트의 이름으로 기후 위기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나 단체에 기부되고요. 이는 기부 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와 음악 산업이 환경 문제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우리가 몸담은 지구라는 공간 없이는 예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죠. 애나 칼비(Anna Calvi), 마운트 킴비(Mount Kimbie), 엘란드 쿠퍼(Erland Cooper), 오로라(Aurora) 등 많은 음악가가 어스퍼센트의 아이디어에 동참했고 공동 저작자로 ‘지구’를 추가했습니다.
어스퍼센트는 또한 한정판 앨범을 제작하여 앨범 수익으로 기부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는 미공개 곡을 어스퍼센트에 제공함으로써 예술 활동을 통해 기부할 수 있고, 팬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소비함으로써 기부를 할 수 있죠.
지속 가능한 비효율을 위하여
어스퍼센트는 ‘음악 산업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필요한 돈을 빨리, 많이 모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후 위기 해결은 더 큰 비용, 더 많은 시간이 드는 방법을 택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전기 에너지를 쓰는 게, 다회용품을 쓰는 것보다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죠. 그러니 그런 비효율 속에서 든든한 돈줄이 되어주는 것, 그래서 그 비효율적인 선택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음악 산업이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하고 현실적인 행동이 아닐까요?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으면 거대한 흐름 앞에 쉽게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이노는 희망적인 부분을 보고자 합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라는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 많은 음악가 동료가 자신의 문제의식에 동감하며 어스퍼센트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단 사실을요.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노와 어스퍼센트의 행보는 보는 이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문화예술이 가진 영향력을 돌아보게 만들죠.
내가 몸담은 분야, 내가 소비하는 문화는 기후 위기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노와 어스퍼센트의 활동을 살펴보며 상상력을 한껏 부풀려 봅니다. 비관에 빠지기엔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굳게 믿으면서요.
WEBSITE : 어스퍼센트
INSTAGRAM : @earthper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