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모하는 유기체, 도시. 이름 몇 자와 랜드마크 몇 개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을 만큼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그 안에서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합니다. 어떠한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 건축물은 풍성함을 더합니다. 하나하나의 건축물이 곧 ‘도시 역사의 기록자’로서, 건축은 도시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길을 제시합니다. 건축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사유하게 하는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서울건축사』
하나의 대도시는 수많은 구성 요소가 오랜 기간에 걸쳐 거미줄처럼 씨줄과 날줄로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탄생한다. 거미줄의 구도를 파악하고 이것을 이루는 구성 요소를 적절하게 나누고 재통합해서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화 작업’이다. 이 책은 이런 작업의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 서울의 도시건축 역사책이라고 자평한다.
_임석재, 『서울건축사』
강산이 예순 번도 넘게 변하는 동안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을까요. 그 무수한 흐름 속에서도 수백 년을 살아온 건물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마주하며 과거를 유추하고는 합니다. 서울 곳곳에 자리한 건축물을 조명하는 책, 『서울건축사』. 전통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서양 건축 양식까지, 다양한 양식으로 새겨진 629년의 발자취는 600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고 있습니다. 분절되어 있다는 감각보다는 순풍과 더불어 나아가는 배처럼 역사를 항해하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서울에 있는 건물 5천여 채를 답사한 후 그중에서 400여 채를 선별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렇다 해도 건축물의 수와 시간의 양 모두 방대하기에, 자칫하면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섬세함은 돋보입니다. 본격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들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길을 잃지 않게끔 하는 기준을 서문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시대를 분류한 기준, 건축물을 바라보는 관점, 역사 사관 등을 세세히 짚는 것부터 책은 시작됩니다. 건물들의 수많은 개성을 마주하면서도 도시의 근간을 지탱하는 역사를 읽어내는 대장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간 탐구자와 걷는
도시 건축 산책』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꿈 등 삶의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가장 심오한 증언자라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한 역사이자 문화이며 예술이고, 때로는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_대한건축학회 광주·전남지회, 『공간 탐구자와 걷는 도시 건축 산책』
『공간 탐구자와 걷는 도시 건축 산책』은 너른 빛을 품은 도시, 광주광역시를 조명합니다. 지역 신문 ‘무등일보’에서 연재된 동명의 기획 기사를 엮어 완성된 책인 만큼, 이 책에는 건축사, 연구자 등 ‘건축’을 공통분모로 하는 마흔여 명의 필진이 존재합니다. 그 덕분에 독자의 사유는 풍성하고 다양한 장면을 그려내지요. 마흔여 개의 시선과 더불어 광주의 크고 작은 공간들을 읽으면서, 광주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여정은 더 오밀조밀해집니다.
이 책을 설명하는 여러 개성 중 하나는, 수많은 건축물을 산책하는 여정의 종착점이 자연이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인원의 손끝에서부터 완성된 책이기에 다채롭지만, 마침내 그 다양한 개성을 매듭짓는 것은 자연입니다. 건축물이 도시가 지나온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면, 한 걸음 뒤에서 그 도시마저 아우르는 것은 자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시의 역사와 더불어 그 너머의 바탕도 고찰하게 합니다.
『공간 탐구자와 걷는 도시 건축 산책』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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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 건축』
제주 역사는 외세의 억압과 침탈에 대한 항쟁의 역사였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끝없이 자연에 도전하고 적응했던 긴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땅 제주는 건축적으로 특별함으로 지니고 있다. 한라산을 중점에 두고 타원체로 형성된 제주는 지형적·지질적 조건에서 매우 독특한 자연경관을 만든다. 제주 건축은 이 특별한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 온 제주 사람들의 삶인 것이다.
_김태일, 『제주 속 건축』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 뜨거운 용암으로부터 시작된 짙은 현무암, 드넓은 땅 위에 변주를 반복하는 오름. 제주도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건축물을 관통하는 것은 비단 제주의 시간뿐만은 아닐 듯합니다. 그 시간의 토대가 되어주는, 제주도만의 자연 또한 건물마다 새겨져 있지요. 『제주 속 건축』에는 그러한 사실이 페이지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세밀함이 돋보이는 해설 속에서도 ‘제주’라는 큰 틀을 잊지 않게끔 하는 이정표와도 같습니다.
제주도를 이루는 두 도시, 제주시와 서귀포시. 『제주 속 건축』은 그 두 도시와 기타 여러 섬들을 다시 일곱 갈래로 나누어서 건축물마다의 해설을 제시합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100여 개의 건축물들이 저마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세분화된 지역 분류가 있습니다.
『제주 속 건축』 상세 페이지
『제주 속 건축』 구매 페이지
하나의 건축물에 새겨진 이야기가 도시의 모든 시간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건축물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도시의 연대기를 마주합니다. 어떠한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음악의 장르처럼, 도서관 내부에 표시된 주제 분류처럼요. 도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건축은 흥미로운 시작점이 되어주리라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의 손에서부터 완성되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존재이지만, 결국 그 누군가를 지탱하는 근간을 기록하는 존재가 건축이라는 점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