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미술계가 뜨겁습니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손꼽히는 영국의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지난해에 이어 서울에서 함께 개최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주요 갤러리들이 참여해 미술사 거장들부터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작가들까지 폭넓은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볼거리로 5일간 8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페어를 방문했습니다. 미술계 가장 큰 행사가 열리는 이때를 맞이해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전시를 오픈하고 삼청, 한남, 청담 등의 지역에서 파티와 행사가 연이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미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놓칠 수 없는 키아프 현장, 그 한가운데 아름답고도 궁금증이 생기는 작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천장에서 길게 내려오는 패브릭 소재의 작품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커튼 같기도, 무언가 형상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한 이 작품. 프리스가 선정한 2023 제1회 아티스트 어워드 서울 수상자, 우한나 작가의 작품입니다. 미술계 인파가 모두 모이는 이 자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 작품. 어떠한 점에서 어워드에 선정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게 된 걸까요?
우연한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
우한나 작가의 작품을 잠시 감상해 봅니다. 천장에 크게 매달린 작품, 그리고 바닥에 넓게 펼쳐진 이 패브릭 작품들, 무엇을 표현한 걸까요? 언뜻 커튼이나 꽃과 같은 자연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장기와 신체의 일부를 작품으로 표현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신체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한 건강검진 결과, 작가 본인의 신장이 다른 사람과 다른 기형의 형태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작가는 신장을 비롯한 장기와 신체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면서 이를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작이 “Bag with You”입니다.
여성의 신체를 탐구하다
“젖과 꿀” 시리즈 또한 신체에 대한 탐구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설치된 U자형 작품은 여성의 가슴을 표현합니다. 중력의 영향, 그리고 고정되거나 무겁지 않은 패브릭 소재로 인해 자연스럽게 주름지고, 쳐진 모양새가 완성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여성의 가슴과 박쥐 이미지를 함께 떠올립니다. 둘 사이 유사성을 발견한 것이죠. 여성의 유방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다가, 노화를 겪으면 비하되는 모습이 코로나19로 박쥐에 대해 생긴 부정적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 설치된 8m 길이의 거대한 “The Great Ballroom” 또한 이러한 “젖과 꿀” 시리즈에서 발전한 작품입니다.
또 다른 작품 “Bleeding”도 여성의 신체 일부분에서 출발합니다. 호접란이라는 꽃의 모습을 한 이 작품은 여성의 생식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마다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모습을 달리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의 신체 기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신체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우한나 작가는 패브릭 소재를 사용해 작업합니다. 빛이 나고 매끄러운 소재, 얇고 비닐 같은 소재 등 다양한 천을 선택하고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패브릭 소재는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듭니다. 작가가 만든 신체의 일부분과 장기들은 고정된 채 변하지 않는 형태가 아닙니다. 바람이나 외부 자극에 따라 흔들리고, 주름이 생기고, 모습이 변화합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신체를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장 가까운 몸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외면에 대해, 그리고 내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관찰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다양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기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지 않았나요? 나아가 늘어지고, 주름지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신체를 표현한 작품은 노화의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늘어지고 탄력을 잃은 피부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말합니다.
우한나 작가는 신체,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당연하게 존재하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의 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작가는 2023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에 도전했을 때, 이렇게 기획서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여기 모인 예술을 사랑하는 너희들 모두 환영한다. 이곳은 위대한 무도회다. (중략) 나의 젊음은 너의 늙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너의 늙음은 나의 젊음을 경험했기에. 건배.”
지금 이 순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한나 작가가 전하는 신체와 삶에 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랍니다.
- 엘르, ‘프리즈’가 불러낸 뜨거운 이름, 아티스트 우한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2023.09.03)
- 프리즈, 여성되기-변종되기의 우한나의 사물들(2023.08.29)
- 뉴스핌, 우한나 개인전 ‘마른 풀 소용돌이’…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벼움의 몸짓(2023.02.09)
WEBSITE : 우한나
INSTAGRAM : @hannah.flashed.t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