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사유를 담은
짐 자무쉬의 영화

나와 타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행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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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새로운 자극을 느끼게 합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문화를 경험하게 하니까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장소에 가보고,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동시에 사라지는 것에도 미련을 두게 해요. 이동은 새로운 경관이 눈앞에 펼쳐지면서도 지나온 것들이 사라지는 경계 위에서 지속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행지에서 나른하게 걸을 때, 새로운 광경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소멸의 멜랑콜리를 함께 느낄 때처럼요. 미국 인디 영화계의 대명사 짐 자무쉬 감독은 후자의 감각을 영화에 담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멜랑콜리. 이동의 사유를 깊이 있게 그려낸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소개합니다.


뉴욕이라는 연옥을 배회하는 사람들
<영원한 휴가>

짐 자무쉬 <영원한 휴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원한 휴가>는 유랑하는 이방인의 내면을 줄곧 그려 온 짐 자무쉬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숭배하는 청년 알리는 떠도는 삶을 자처하며 뉴욕의 거리를 배회합니다. 그는 길에서 세상과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혼자인 삶을 몹시 지겨워하는 여자, 헬리콥터 소리를 적의 폭격 소리로 오인하는 남자, 정신병원에 수용된 엄마, 흐트러진 모습으로 소리치듯이 노래를 부르는 여자, 찰리 파커 이야기를 늘어놓는 흑인 남자를요. 알리는 여러 기이한 만남 속에서 자신의 방랑에 대한 사색을 이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실존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린 그는 뉴욕을 떠날 것을 결심합니다.

알리의 걸음을 따라가며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뉴욕의 텅 빈 거리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화려한 뉴욕의 모습은 아니죠. 영화의 비어 있거나 부서진 이미지, 반복되는 헬리콥터 소리와 음산한 음악은 고독감을 넘어서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다’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천국보다 낯선>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헝가리계 미국인인 윌리는 뉴욕 빈민가의 낡은 아파트에 삽니다. 어느 날 헝가리에서 사촌 에바가 찾아와 둘은 잠시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낮에는 친구 에디와 도박을 즐기고 저녁에는 TV를 보며 식사하는 나날을 반복하는 윌리에게 에바와의 동거는 번거로울 따름입니다. 며칠 후,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에바는 그가 태어난 클리블랜드로 떠나기로 합니다. 막상 에바가 떠나려 하자 윌리는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지만 그녀와 작별합니다. 1년 후, 따분한 생활을 보내던 윌리와 에디는 클리블랜드로 에바를 만나러 갑니다. 셋은 재회를 이루지만 이곳의 생활에도 이내 지루함을 느끼고 플로리다로 떠나려 합니다.

윌리와 에바, 에디는 세 도시 뉴욕, 클리블랜드, 플로리다로 이동합니다. 기후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판이한 세 도시를 여행하면서 에디는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여행지에서 처음 느꼈던 신선한 자극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권태로워지는 것처럼 말이죠. 각기 다르지만 모두 삭막한 세 도시는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풍경화 합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 끝도 없이 떠도는 세 명의 청춘의 모습은 더욱 고독해 보이고요.


멤피스를 떠도는 두 유령
<미스테리 트레인>

짐 자무쉬 <미스테리 트레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미스테리 트레인>은 세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령이 떠도는 듯한 미국의 테네시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일본인 커플 미츠코와 준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전에 거주한 그레이스랜드에 가기 위해 멤피스에 당도합니다. 멤피스에 불시착하게 된 이탈리아 여인 루이사는 이곳에서 엘비스의 유령을 마주합니다. 영국계 이민자 조니는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다녀 엘비스라고 불립니다. 그는 술김에 범죄를 저지르고 백인 이발사 찰리, 흑인 윌과 함께 도망치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이곳에 머무르는 이들은 모두 멤피스의 같은 호텔로 모여듭니다.

영화 속 멤피스는 로큰롤의 제왕으로 군림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자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엘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와 관련된 명소에서는 관광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인물이 다니는 멤피스의 모든 곳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고요. 하지만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숨을 거두기에 앞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한 곳입니다. 백인 문화에 집어삼켜진 멤피스에서 흑인 인권 신장을 부르짖던 정신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종과 국적이 다른 여러 인물은 미국의 지배적인 문화에 열광하는 오늘날 대중의 모습과도 같고요.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정처 없이 떠돌면서 방황하는 인물의 여정을 그려냅니다. 우리는 이들의 면면에서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엿볼 수 있어요.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 이동은 <영원한 휴가>처럼 실존적 고민의 여정이자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들추어내는 것이 되기도, <천국보다 낯선>처럼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경계를 묻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스테리 트레인>은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 가는 물리적 이동에 의해 생기는 낯선 만남에 주목합니다. 낯선 만남은 인종과 국적이 다른 이들의 서투른 소통, 토착 세력과 이주 세력의 묘한 긴장 관계를 들여다보게 해요.

짐 자무쉬는 이런 낯선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이동을 긍정하는 듯합니다. 이동은 이질적인 것을 마주하면서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닿게 하는 ‘연결의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마치 강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처럼요. 난민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타자에 대한 각종 혐오가 난무한 오늘날 그의 영화는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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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영

낯선 사람, 낯선 공간을 마주하며
세상의 이미지를 보고 기억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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