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도
예술이다

비평가를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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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비평가는 필요할까? 각종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의 주체가 광범위해지는 추세다. 특히나 영화에 관한 한 소셜 미디어 검색만 해도 특정 작품의 수많은 담론을 금세 찾아낼 수 있다. 그 결과가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기반한 지극히 주관적 감상평일지라도, 매체를 소비하는 양식이 변모함에 따라 누구나 담론의 생산자이자 수용자가 되는 시대이기에 단편적인 ‘인상비평’도 일반 대중에게는 작품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곤 한다. 여기에 콘텐츠 소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뷰 인플루언서의 등장이 비평가의 입지를 흔들기도 한다. 물론 ‘리뷰의 범람을 과연 비평의 위기로 연결지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현재 비평의 역할과 기능에 전반적인 의문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비평가 앞에 던져진 질문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이자, 비평은 그저 예술에 종속된 작업이라고 여기며 비평가라는 직업 자체의 무용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평은 여전히 유효하다.


풍부한 수용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

이미지 출처: Unsplash

다른 예술 양식보다 태동을 명확하게 짚을 수 있어 비평의 흐름도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영화로부터 비평의 효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비평이란 무엇인가. 주로 개봉을 앞둔, 새로이 주목할만한 작품을 놓고 그 대상을 관람할 것인가 말 것인가 대중이 선택하기에 도움을 주는 차원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영화라는 예술 매체의 속성을 살피며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행위다.

비평이 담아내는 메시지의 목적은 작품에 대한 풍부한 수용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는 것이며,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감독에게도, 관객에게도, 산업 전반에도 이를 것이다. 비평을 통한 발견은 매체 자체의 역사성을 드러내기도 해 문학, 미술, 음악 등 다른 예술 분야와의 차별 지점을 찾아주기도 한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정의를 재생산하는 셈이다.

단순한 작품 해설이 결코 아닌 비평에 대해 영화비평가인 크리스티앙 메츠는 “우리는 모든 영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이 된 비평가

만년필
이미지 출처: Unsplash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갖가지 방법론은 비평가의 주장을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무기다. 장르를 탐구하는 장르론이나 감독을 작가로 보는 작가론은 작품 자체가 갖는 내재적 요소들을 탐구한다. 한편 인간의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질서를 찾는 철학적, 학문적 개념으로 다가가는 방식도 있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구조주의에 반해 중심을 해체하는 후기 구조주의가 등장하면서 더욱 주목받은 페미니즘이나 탈식민주의 등을 해석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외부적 인식 틀을 장착하는 갈래다.

그중에서도 작가주의 비평이 등장하고 정착한 과정은 예술과 비평의 뿌리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도드라지는 사례다. 기존 관습에 대한 반발, 자기 성찰의 태도가 비평으로 발화되고 창작 활동으로도 체화됐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프랑수아 트뤼포, 이미지 출처: IMDb

작가주의는 195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경향성이었는데,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이 ‘카메라 만년필설’을 주장하면서 영화의 작가는 감독이라는 의식이 번졌다. 이후 많은 비평가들이 작가주의를 채택하고 결정적으로 프랑스의 영화이론가이자 비평가인 앙드레 바쟁이 만든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발표한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을 통해 더욱 힘을 받는다.

배경은 이렇다. 작가주의가 개념화되기 전 프랑스의 영화 제작 관행은 문학 고전을 각색하는 데 빠져있었다. 이에 각색 작품은 장인 즉 테크니션이 만든 영화라는 비판이 일었고, 감독이 직접 작가로 나서 카메라로 고유한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비평가들은 미학적 관습을 해석하며 장인과 작가에 차등을 둔 것이었다. 나아가 스타일의 중심, 의미의 중심에 서야 하는 감독이 시나리오부터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작가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들은 직접 독자적 영화 스타일을 지닌 작가로 거듭나며 감독으로서 위업을 달성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물론이고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이 그 길 위에 있었다. 비평가와 감독 사이를 넘나들며 비평의 주체가 예술가가 된 것이다. 비평적 직관에 의해 형성됐던 ‘새로운 물결’이 신선한 예술의 탄생을 추동했다.


작품이라는 세상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비평가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작가주의 비평의 방향 속에서는 비평가 스스로가 예술가가 됐지만, 반드시 예술가의 모습을 하지 않더라도 비평 자체가 곧 예술 행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자기 의식 없이는 훌륭한 예술이 있을 수 없고 자기 의식과 비평 정신은 하나”라고 보는 통찰. 그에 대한 실마리는 비평의 태도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가 쓴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에서 나온다.

모든 아름다운 창조물의 의미는 적어도 그것을 빚어낸 영혼만큼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영혼에도 있는 법이니까. 아니야. 아름다운 것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를 위해 경탄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시대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어 그것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 되거나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의 상징이 되거나 어쩌면 간절히 바라놓고서는 우리가 얻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의 상징이 되게 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이야.

_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강경이 역, 바다출판사

비평가란 주관을 객관화하며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빚어내는 자이기도 하다. 종종 비평가의 메시지에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히는 말이 더해기도 한다. 작품이라는 세상을 통해 비평가 역시 자연스레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개성도 보여준다. 그저 작가의 의도를 찾아주는 해설자가 아니다. 사실 작품에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할 수도 없다.

다만 주관적일 수 있음이 얼마든지 자의적일 수 있음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 자신을 반영하는 세계를 설득하기 위해 질서를 확보하는 기술이 비평을 가치 있게 한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와 더불어 참고할 수 있는 텍스트다.

그러나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잠재적 유에서 현실적 유를, 감각적 유에서 윤리적 유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원칙적으로 해석은 무한할 수 있지만, 모든 해석이 평등하게 옳은 것은 아니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다양할 텐데, 나에게 그것은 ‘생산된 인식의 깊이’다.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_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결국 깊은 사유를 선보이기로써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해에 이른다.


비평은 예술이 발아하는 양분이 되기도, 스스로 예술이 되기도 한다고 바라보면 비평가의 위상은 달라진다. 비평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은 예술을 의미 있게 만드는 주인의 자리를 우리에게 평등하게 돌려놓을 여지도 남겨놓는다. 작품은 꼭 단독적인 작가의 손에서만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짚어주기에. 명명되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린 평가의 장이 된 시대에 오히려 비평가를 다정하게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작품과 건강한 비평이 상호작용하며 예술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란다.

  • 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바다출판사, 2020
  • 강성률, 『영화 비평 – 이론과 실제』, 아모르문디, 2016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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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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