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미래를 말하는
아프리카 여성작가들

동시대적 관점으로
아프리카 미술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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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먼 대륙, 이웃도 아닌 대륙, 아프리카. 그곳에서 새로운 여풍이 불고 있습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두 명의 작가가 모두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올해 2023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총감독인 레슬리 로코(Lesley Lokko)는 가나계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 건축가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건축가들을 조명하는 기획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단지 피부색이 아닙니다. 그들은 흑인으로서의 역사적 정체성과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출해 왔습니다. 예술계가 그들의 이야기를 주요 담론으로 꺼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지난 9월, 런던 ‘테이트 모던’의 기획전 ≪A World in Common : 현대 아프리카 사진전≫에서 만난 아프리카 여성작가 3인을 소개합니다.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물 긷기 노동

Wura-Natasha Ogunji, Will I still carry water when I am a dead woman?, 2013
Wura-Natasha Ogunji, Will I still carry water when I am a dead woman?, 2013, 이미지 출처: wuraogunji.com/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는 무거운 물을 운반하는 여성들의 행렬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촌 여성들은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매일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을, 20kg 이상의 물통을 끌고, 5km 이상을 걷습니다. 이들은 신체적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질병, 성폭행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됩니다.

우라 나타샤 오군지(Wura Natasha Ogunji)는 미국에서 태어난 나이지리아계 여성작가입니다. 퍼포먼스를 비롯해 비디오, 드로잉, 텍스타일 등 다양한 매체로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인간과 지리적 환경과 맺는 관계, 여성의 역할과 존재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 퍼포먼스는 “우리가 죽은 여성이 되어도 물을 운반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분노의 화염병을 던지고 시작합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한 지역에서 작가와 다른 여섯 명의 여성이 발목에 물통 고정한 채 힘들게 끌고 갑니다. 화려한 패턴의 가면과 의상은 아프리카의 전통 가면 의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가면 의식은 전통적으로 남성 권력층에게만 허락된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성의 노동과 지위에 대한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얼마나 해야 충분한가요? 기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회를 바꾸는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언제 사람들은 쉬고, 생각하고, 비전을 그리며, 상상하고, 다른 삶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_우라 나타샤 오군지


WEBSITE : 우라 나타샤 오군지


생존 그 이상의 미래를
갈망하다

Aïda Muluneh, The shackles of limitations, 2018
Aïda Muluneh, The shackles of limitations, 2018, 이미지 출처: aidamuluneh.com

아이다 물루네 (Aïda Muluneh)는 2018년 ≪대구사진비엔날레≫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여성작가입니다. 2019년 노벨 평화상 전시회를 공동 큐레이팅한 최초 흑인 여성이며, 미국 현대미술관(MoMA),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프리카 박물관, RISD 미술관, 성서 박물관 등에서 그의 작품 소장하고 있습니다. 젊은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더 충분히 성장하고, 더 넓은 무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아프리카 최초의 국제 사진 축제 ≪Addis Foto Fest≫의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예술, 교육, 문화기획 등 다양한 행보를 통해 아프리카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 가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Water Life” 시리즈는 에티오피아의 물 긷는 여성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입니다. 미니멀한 구도와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매혹적이지 않나요? 앞서 본 우라 나타샤 오군지의 필름 속 거친 현장감과는 다르게, 아이다 물루네의 물통을 끌고 가는 여성에게서는 정제된 우아미가 느껴집니다. 아프리카의 고통과 빈곤을 다루던 기존 매체들의 진부하고 단편적인 시선을 뒤엎고, 새로운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촬영지인 에티오피아 북부에 위치한 달롤 소금 평원은 평균 기온이 40도 이상에 달하며 거의 강수량이 없는 아주 건조한 지역입니다. 작가는 이 지역을 촬영지로 선정하여, 물 부족의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여성들의 힘과 인내심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에게 물은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게 하는 생존 그 이상의 자원입니다. “Water Life” 시리즈는 총 16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대륙의 개척자처럼 앞으로 진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WEBSITE : 아이다 물루네
“Water Life” 시리즈 상세 페이지


과거 유산은 계속되어야 할
문화이자 정체성

Atong Atem, Adut and Bigoa, 2015
Atong Atem, Adut and Bigoa, 2015, 이미지 출처: tate.org.uk

아통 아템(Atong Atem)은 호주에 거주하는 남수단 출신의 여성작가입니다. 백인 중심적인 예술계에서 유색인종 및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유리천장 아래 놓이곤 합니다. 작가는 호주 내 흑인 예술가 커뮤니티를 통해 연대의 힘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이탈의 역사와 이민자의 삶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진 속의 화려하고 선명한 전통 패턴은 두 여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언으로 말하고 있음을 유추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작가와 같이 호주에 사는 이민자 2세로 어린 소녀들입니다. 현재 이들은 부모님의 고향에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아프리카 패턴의 프린트 의상과 장식을 통해 정체성의 뿌리는 그곳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통 아템 역시 가난과 고통으로 대표되는 서구 중심적인 시선에 대한 도전으로써, 과하리만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재현합니다.

식민지 이전의 전통은 과거의 영화이자 그들의 영적이고 고유한 힘이기도 합니다. 끊어져 버린 문화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것은 이들의 당연한 소명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에게 토속적 전통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유산이 아닙니다.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할 문화이자 정체성입니다.


WEBSITE : 아통 아템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미술이라고 하면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이미지들만 가득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원시미술과 현대미술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현대 작가들은 동시대에 직면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이어가며, 그 이상의 미래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죠. 바로 예술을 통해서 전 지구가 그들의 문제에 주목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도 원시적으로 머물러 있던 편견을 버리고 동시대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대할 필요가 있겠지요.

국내에서도 아프리카 미술 전시가 보다 자주 열리고 있습니다. 혹시 이들의 화려한 색감, 독특한 패턴,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혹되었다면, 그 안에 담긴 무언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요?


Picture of 살리

살리

파리에서 방랑 중인 예술가.
단 하나의 색이 아닌 그라데이션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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