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의 간절한 기도
『삶이라는 고통』

포크록 싱어송라이터 한대수
고통의 삶에서 건진 일상의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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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비틀즈의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침대 위에서 반전 시위를 펼쳤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울부짖는 기타로 미국의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청춘들은 한데 모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록 음악의 최전성기이자, 반전에 대한 목소리가 한창 커지던 시대였지요.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통기타를 동여맨 장발의 남자가 무대 위에 오릅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비주얼에 당황한 청중의 시선에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내 큰 숨을 들이쉬고, 전주도 없이, 목을 긁으며 “물 좀 주소!” 하고 외칩니다. 답답한 사회 분위기 속 자유에 목마른 20대 청춘들에게 울분을 토하듯이 물을 찾는 사내의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요?

한국 포크록의 창시자 한대수는 그렇게 국내 대중음악계에 등장했습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젊은 청년이 품은 열정은 시대와 맞물려 저항의 정신이 되었고, 잔잔했던 국내 대중음악계에 모던 포크록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대중들은 강렬한 그의 첫 등장만을 기억하겠지만, ‘금지곡을 부르는 불온한 가수 한대수’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 중 짧은 찰나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풍족했고, 서양 문화에 밝았습니다. 할아버지 한영교 박사는 연세대학교의 공동 설립자이자 신학자였고, 아버지 한창석은 핵물리학자, 어머니 박정자는 피아니스트였으니까요. 어릴 적부터 최전선의 문화를 접하기 쉬운 환경이었습니다. 풍족한 가정 환경과는 별개로 한대수 본인의 마음만은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버지가 실종되고, 할아버지와 함께 프로펠러 비행기에 몸을 실어 미국으로 떠난 그때부터 한대수의 일생은 방랑자의 삶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고통』은 한대수가 아날로그 카메라로 직접 찍고, 인화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입니다. 미국의 청춘 문화를 온몸으로 겪은 방랑자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삶은 고통이다’라고 말합니다. 찰나의 순간을 스케치하듯 담은 그의 사진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사랑과 평화를 외치고자 하는 그 시절 히피의 마음이 녹아 있었습니다.


이스트빌리지의 동양인

생계로서의 사진

한대수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가 사진 전공자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는 할아버지의 권유대로 뉴햄프셔 주립대 수의학과에 다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뉴욕에 있는 사진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경제적인 지원도 끊길 것을 각오한 과감한 결정이었지요. 청년 한대수는 사진의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솔직함, 우연성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모델들과 말도 섞을 수 있었고요.

젊은 사진 학도가 자리 잡은 곳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였습니다. 그곳은 전 세계의 청춘들이 뛰쳐나와 모여 사는, 말 그대로 히피 소굴이었지요. 마약 밀매업자와 급진 사회주의자, 반전주의자가 사는 허름한 빌라에서 동양의 히피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카메라는 통기타만큼 분리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의 곡들이 모두 금지곡이 되어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없을 때, 뉴욕으로 돌아와 사진과 관련된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동시에 세상에 대한 번민과 고민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끈적한 생활상이 묻어나 있습니다. 행복의 반대편에 있는, 어쩔 수 없이 영위해야 하는 일상의 피곤함 같은 것들이 말이죠.


방황을 묶어둘 닻을 찾아

카메라 렌즈에 서린 고독

한대수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67년부터 2003년까지 대륙을 넘나들며 그가 찍은 필름 사진들이 켜켜이 모아져 있는데요, 각 챕터는 사진들을 갈음하는 챕터인 동시에 한대수의 일생을 갈무리하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카메라 렌즈에 비친 찰나의 순간들은 한대수의 삶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히피들과 어울리고, 최고급 레스트롱 ‘세렌디피티 3’에서 일하던 때를 지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서울로 돌아와 우리가 아는 뮤지션 한대수로 데뷔하던 때까지. 젊은 한대수가 찍은 사진들은 청춘의 방황을 그대로 옮긴 듯 뉴욕과 서울을 질주합니다.

하지만 흔들린 초점처럼, 젊은 히피 한대수는 언제나 상실감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선 가난한 나라의 동양인이었고, 고국에선 괴상한 차림으로 불온한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뮤지션이었습니다. 어디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그의 마음에는 고독과 소외감이 차곡히 쌓여갔지요.

색감은 옅고, 초점도 흐릿해진 사진에 비친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공허한 여백이 느껴지는 건 한대수 본인의 상실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길거리에 마주친 그들과 스스럼없이 다가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상실과 고통이 너무 커 주저하는 마음들이요.

옛 연인 김명신을 담은 사진에선 그 마음이 증폭되어 느껴집니다. “나는 늙어가면서 명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슬프다.” 한대수에게 있어 사진은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기록이면서, 세상에 편입되고자 하는 방랑자의 욕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히피의 기도

LOVE & PEACE

한대수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대수의 카메라는 도시의 소외된 이들에게도 시선을 던집니다. 갈등과 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꾼 최초의 히피에게 있어 소외민들은 지나칠 수 없는 안쓰러운 존재들일 것입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오점과도 같은 이들이니까요.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없어 한대수에게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고통의 결정체입니다.

1960년대 최초의 히피들은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 전쟁일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자잘한 전쟁들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하마스-이스라엘 분쟁까지 아직 매듭짓지 못한 문제들이 불씨가 되어 인류에게 번지고 있습니다. 75세의 히피는 여전히 ‘사랑과 평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일어나 ‘폭력은 안 된다, 전쟁은 안 된다’라고 외쳐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합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통기타를 치던 그때와 똑같이 말입니다.

쫓아가기 힘든 과학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도 많아지는 요즘, 한대수의 외침은 공허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빛바랜 사진 속 ‘NO WAR’을 외치는 낯선 이들의 얼굴 위로 노인이 된 한대수의 목소리는 옛날 “물 좀 주소!”라고 외치던 때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삶이라는 고통』 상세 페이지
『삶이라는 고통』 구매 페이지


한대수의 사진은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탓에 초점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카메라와 다르게 찍는 그 순간에 의도한 상을 맺지 못할 수도 있고, 핀이 나가 무엇을 찍으려 했는지 불분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찍는 순간부터 물성을 지닌 사진으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사진들인 셈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사진들에 잡힌 모습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자신을 동여맬 닻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의 삶처럼 흔들리고 번잡스럽습니다.

삶의 편린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고, 너무 많은 행복들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다채롭습니다. 발전된 기술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조각들을 빠르게 포착해 선별하여 SNS에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정갈하게 편집된 사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삶에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괴로운 기억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고통의 감각들은 피드 게시글이 아닌 현실의 삶에 명백히 존재합니다.

해결하질 못한 문제에 직면해 괴로우신 가요. 아니면 행복하지 못해 불행하신가요. 『삶이라는 고통』을 통해 한대수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여전히 LOVE & PEACE를 외치는 백발의 히피가 직접 고른 사진을 보다 보면, 소중히 여겨야 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어떤 때일지 깨달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이라 할지라도요.

해당 아티클은 북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지정현

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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