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오 장르의 기원
얼반 댄스에 대하여

코레오 장르를 발전시킨
세계적인 안무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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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그야 말로 ‘춤 전성시대’입니다. 배고픈 직업의 대명사였던 댄서는 부와 명성을 누리는 셀럽이자 아이들의 새로운 장래희망이 되었습니다. 이 열풍이 모두 TV 쇼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시리즈에서 시작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음지에만 머물던 춤 문화의 매력을 대중에게 전파했죠.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출전하는 댄서들은 모두 각자의 장르를 무기처럼 장착하고 있습니다. 힙합, 왁킹, 보깅, 팝핑, 비보잉처럼 말이죠. 이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코레오’란 정확히 어떤 분야일까요? 미국 서부에서 시작돼 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한 장르 ‘코레오’의 기원과 세계적인 마스터들을 소개합니다.


코레오 이전 ‘얼반 댄스’

얼반 댄스
이미지 출처: Keone & Mari

코레오는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 안무)의 줄임말입니다. 스트릿 힙합 댄스처럼 즉흥적이기보단 한 음악에 오래 집중하며 깊이 있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장르죠. 힙합을 기반으로 현대무용, 발레, 재즈 등 다양한 분야와 제한없이 결합되는 포용력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얼반 댄스(Urban Dance)’라는 명칭으로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얼반 댄스의 시작은 1992년, 미국 서부 샌디에고와 로스엔젤레스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저명한 아시안계 미국인 댄스 크루 ‘킨자즈(Kinjaz)’의 멤버 ‘아넬 칼바리오(Arnel Calvario)’는 자신이 목격한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얼반 댄스
이미지 출처: STEEZY

당시 여러 대학의 필리핀 문화 동아리는 매년 필리핀 문화의 밤에 전통 무용 공연을 하곤 했고, 이때 힙합 춤과 음악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힙합 황금기 속 자라난 필리핀계 미국인에게 힙합이란 이미 익숙한 문화였기 때문이죠. 또 미국의 식민지시기를 지내며 나라가 발전된 만큼 필리핀인이 가진 상호의존적 문화 성향이 현대 장르를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렇게 1992년에서 1993년 사이, 얼반 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춤추는 게 너무나 즐거웠던 사람들은 더 이상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문화의 날을 기다릴 수 없었으니까요. 클럽 행사나 자동차 쇼를 돌며 공연 하다 관객을 동반한 더 공식적인 ‘무대’를 기획하게 됩니다. 1995년 등장한 ‘바이브(VIBE)’나 ‘바디 락(Body Rock)’ 등의 쇼케이스가 바로 오늘날 한국의 댄스 대회인 ‘피드백 컴페티션(Feedback Competition)’의 원형이 됩니다.

전문적인 안무단이 갖춰지기도 합니다. 1993년, 힙합의 선구자로 알려진 댄서 ‘앤지 번치(Angie Bunch)’는 나이키의 지원을 받아 ‘컬쳐 쇼크 댄스단(Culture Shock Dance Trouple)’를 결성합니다. 날 것 그대로의 즉흥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던 스트릿 힙합 스타일을 보다 복잡한 안무로 개발해 공연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었죠. 샌디에고 본사를 시작으로 로스엔젤레스,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등 영미 각국으로 진출하며 여러 세대의 얼반 댄서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유튜브, myspace, 페이스북
이미지 출처: STEEZY

그리고 2000년대 초, 유튜브와 각종 소셜 미디어가 태동하던 시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얼반 댄스는 뉴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해 성장한 장르이기 때문이죠. 유명 팝 음악에 짠 안무 영상을 업로드했고, 이를 발견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양한 촬영 기법을 통해 영상 예술을 실험했던 그때의 패기 넘치는 도전들이 여전히 유튜브에 남아있습니다.

‘얼반’이란 단어는 인종주의적이다

Recording Academy / GRAMMYs
이미지 출처: Recording Academy / GRAMMYs

그렇게 오랫동안 얼반 댄스라는 명칭이 굳어지며 장르가 발전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것을 얼반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인종주의적 의미가 내포돼있다는 배경을 깨달은 뒤로 였죠. 미국의 흑인 랩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2020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랩 앨범 상을 받으며 다음과 같은 수상소감을 남겼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생긴 뮤지션들은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던 간에 전부 랩 혹은 얼반 카테고리에 배치됩니다. 저에겐 얼반이란 단어가 ‘N으로 시작하는 단어(흑인을 비하하는 속어)’와 동일한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다고 느껴져요. 왜 우린 그냥 ‘팝’ 카테고리에 속할 수 없죠?”

_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미국에서 ‘얼반(urban)’이란 ‘빈민가(ghetto)’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통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힙합을 근간으로, 힙합을 사랑했던 안무가들은 이에 큰 충격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유명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성명문을 고지하죠.

이미지 출처: Mike Song 인스타그램

“얼반이란 단어가 인종적으로 해로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기존 댄스 스타일과의 구분을 위해 선택했던 것이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 변화의 시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얼반이란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커뮤니티에도 이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_얼반 댄서 커뮤니티

안무 창작을 기본으로 하는 장르인 만큼 얼반 댄스는 자연스레 ‘코레오그래피(이하 코레오)’라는 말로 대치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코레오란 이런 맥락 속에 뿌리 내린 것이죠. 그럼 이젠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코레오 장르를 개발하고 발전시켰던 마스터들을 소개해봅니다.

1) 키온 앤 마리

동영상 출처: URBAN DANCE CAMP

필리핀계 미국인이자 샌디에고 출신으로 얼반 댄스의 성장을 이끈 주역들입니다. 작은 효과음까지 잡아내는 섬세한 음악 센스, 한 몸처럼 움직이는 놀라운 커플 댄스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아하게 동작을 연결하는 아내 마리와 감미로운 분위기를 발산하는 남편 키온의 시너지가 대단합니다.

부부는 늘 한발 앞서 창의적인 시도를 도모하는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동화 같은 스토리텔링을 구상하거나 특수 효과를 실험하며 얼반 댄스의 영상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또 2NE1이나 2PM, 방탄소년단 등 오랫동안 케이팝 아이돌과 작업하고 있는 친숙한 안무가이기도 합니다.


INSTAGRAM : @keonemadrid
INSTAGRAM : @_marimadrid


2) 라일 베니가

동영상 출처: URBAN DANCE CAMP

‘베니가(BNGA)’라는 이름이 이미 브랜드가 된 거물입니다. 힙합의 거칠고 속도감 있는 리듬이 신체를 통해 그대로 구현되는 모습은 마치 온몸으로 랩을 하는 듯합니다. 격동적인 힙합 스타일이 짙게 배인 그의 춤은 특히 남성 안무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안무 퍼포먼스에 공을 들이는 아이돌 음악의 특성 상, 얼반 댄스 안무가들은 일찍이 케이팝 씬의 일원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곡들의 춤을 창작한 경우가 많은데요. 라일 베니가 또한 태양의 ‘웨딩 드레스’와 ‘I Need A Girl’로 케이팝에 동참한 초기 해외 안무가들 중 한 명입니다.


INSTAGRAM : @lylebeniga


3) 카일 하나가미

동영상 출처: KYLE HANAGAMI

케이팝 팬들에겐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이름입니다.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레드벨벳의 ‘러시안 룰렛’, F(x)의 ‘4 Walls’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여아이돌 히트곡을 담당했습니다.

매혹적인 동작으로 여성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이지만, 초창기엔 담백하고 진솔한 스타일이 돋보이던 안무가였습니다. 사랑이란 감정 안에 담긴 상실과 아픔을 특히 섬세하게 표현해냈죠.

미국의 가수 ‘에타 제임스(Etta James)’를 추모하며 올렸던 비디오는 간결하지만 풍성합니다. 그만의 감수성과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섹시하고 파워풀한 스타일로만 알려진 안무가 ‘패리스 고블(Parris Goebel)’과의 듀엣도 눈 여겨 볼만 합니다.


INSTAGRAM : @kylehanagami


4) 앤소니 리

동영상 출처: Arena Dance Competition

아시안계 미국인 댄서 커뮤니티를 형성시킨 중요한 인물입니다. <스트리트 맨 파이터>의 심사위원으로 존재를 알린 ‘마이크 송(Mike Song)’과 함께 크루 ‘킨자즈(Kinjaz)’를 설립한 핵심 멤버이죠. 가동 범위를 고정한 정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세밀하게 음악 포인트를 짚어내는 관찰력이 대단한 안무가입니다.

5) 리아 킴

동영상 출처: URBAN DANCE CAMP

얼반 댄스를 한국에 대중화시킨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원밀리언(1 Million)’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적극 활용했고, 여러 프로모션 비디오를 통해 영상 예술의 발전을 모색하며 씬을 고도화 시켰습니다.

얼반 댄스의 성지라 불렸던 독일의 아카데미 ‘얼반 댄스 캠프(Urban Dance Camp)’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 안무가이기도 합니다. 단순 춤 실력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코레오 문화의 선구자적 인물로서 인정과 찬사를 받는 이유입니다.


INSTAGRAM : @liakimhappy


코레오라는 장르를 추억하면 ‘서툶’이란 표현이 떠오릅니다. 480p도 겨우 되던 저화질 영상, 무비메이커로 이어붙인 듯 촌스러운 편집과 디자인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러니 코레오 씬이 거대화되어 전문 영상 기술을 사용하고 상업적 가치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지금이 가끔은 너무 낯설어 얼떨떨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십 여 년 전 어설픈 영상들에서도 확실한 잠재력은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그 춤에 담긴 폭발적인 창의력은 기술의 한계를 뚫고 분출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지독히도 성실했던 그들의 시도가 쌓이고 쌓여 현재의 전성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어떤 장르보다 유연한 결합력으로 영리하게 시대 흐름을 읽고 있는 코레오가 앞으론 어떤 변화를 이룰지, 벅찬 마음으로 기대되는 요즘입니다.

  • Why We’re Not Using the Term “Urban Dance” Anymore | STEEZ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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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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