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발레 데이
무대 밖 무용수의 1만 시간

세계 발레단 연습 현장과
발레의 매력 조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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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일은 세계 발레의 날, ‘월드 발레 데이(World Ballet Day)’였습니다. 월드 발레 데이란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연습하는 현장을 각 소셜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행사입니다. 2014년 영국 로열발레단과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등 5개 발레단이 협업한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200여 개 주체가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프로 무용수들의 연습 과정을 선보여 완벽함을 향한 노력을 대중이 직접 확인할 뿐만 아니라,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 리허설을 공개해 발레에 친숙해지게 합니다.

평소 발레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세계 발레단의 일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설렘을, 발레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입문의 계기를 주는 콘텐츠입니다. 올해로 10년을 맞은 월드 발레 데이를 기점 삼아 이 아티클에서는 세계 4대 발레단 중 세 곳을 손꼽아 간략한 역사와 동향을 전하고자 합니다. 월드 발레 데이 영상도 곁들입니다. K문화예술이 전 지구적으로 활약하는 만큼 발레계에서도 입김이 세지는 우리나라 무용수를 찾는 재미는 덤이랍니다.


영국 로열발레단
The Royal Ballet

1931년에 설립된 영국 로열발레단은 근대 발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러시아 발레계의 영향을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무용수로 구성된 발레 뤼스(Ballet Russe) 출신의 니네뜨 드 발르와(Ninette de Valois)가 릴리안 베일리스(Lilian Baylis)와 함께 발레단을 구성했고 이후 변화를 거치며 영국만의 발레 스타일을 진화시켰습니다. 현재의 명칭은 왕립 발레단이 된 1957년부터 쓰였습니다.

로열발레단의 독창성은 서정적인 안무에서 강렬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대비에 의해 형성됩니다. 이렇듯 연약함과 기운찬 분위기를 동시에 발산하는 원천은,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면서도 비언어로 감정의 진폭을 그대로 전하는 표현력이 더해지는 결과입니다. 그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현역 무용수는 마리아넬라 누네즈(Marianela Nunez)입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도 영국식 발레를 완성하는 요소입니다.

로열발레단에서는 한국 단원의 입지가 눈에 띄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재일동포 4세 최유희가 2003년 입단한 이후 2017년 전준혁, 2019년 김보민, 2020년 박한나가 차례로 합류했고 지난해에는 발레리노 전준혁이 단원 내 승급 소식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WEBSITE : 영국 로열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
The Paris Opera Ballet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발레단입니다. 프랑스에서 궁중 발레가 발전하면서 1661년 루이 14세가 설립한 왕립무용아카데미가 기원입니다. 1671년 최초의 오페라 발레 <포몬>을 공연하면서 현재의 기관 형태로 비로소 정립됐고 1871년에 파리오페라발레단으로 명명됩니다. 모든 무용수는 1713년에 세워진 파리오페라발레학교에서 양성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역사가 긴 만큼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스타일은 프랑스사의 굴곡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프랑스 혁명과 맞물려 발레계에서도 권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잊을 만한 환상성을 갈망하게 되고 낭만주의 경향을 크게 대중화시킵니다. 발끝을 완전히 세우고 마치 혼령처럼 부유하듯이 가볍게 춤추는 기법, <지젤>과 같이 창백한 기운이 서린 작품들이 첫 등장하는 흐름 속에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주역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발레 형식은 나라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보하지만 당시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시대 정신은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우아함으로 설명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 파리오페라발레단이 특히 언급된 시점은 2021년. 2011년 준단원으로 입단한 발레리나 박세은이 수석 무용수를 칭하는 에투왈(étoile)로 지명된 해였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처음으로 동양인 무용수에게 최고 영예인 에투왈을 안겨 화제가 됐죠. 박세은은 2018년 발레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WEBSITE : 파리오페라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
American Ballet Theatre · ABT

초기 발레는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움텄지만 독자적인 양식을 개발하며 발레의 중심지가 된 러시아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고전주의 발레를 세계에 전파했는데요. 로열발레단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언급한 ‘발레 뤼스’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도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발레 뤼스의 후예 미하일 모르드킨(Mikhail Mordkin)이 결성한 발레단을 바탕으로 1939년 뉴욕에서 아메리칸발레시어터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본래 발레시어터였던 이름은 1957년에 바뀌었고 2006년 미국의 국립발레단이 됐습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는 떠오르는 젊은 안무가들에게 개방적이었습니다. 다른 발레단보다 현대적인 작품 발굴에 신경을 썼습니다. 한 안무가의 스타일이 발레단 전체를 장악하기보다는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안무가들이 개성을 발휘하는 기조가 강하다고 할까요. 이런 자유로움은 세련된 감각의 발레단이라는 평가를 낳습니다. 미국 발레는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 무대 연출이나 의상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덜어내고 몸의 쓰임에 집중하도록 개혁한 산물이기도 했는데, 그가 일으킨 뉴욕시티발레단과 견주어집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서는 한국의 발레리나 서희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수석 무용수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더불어 발레리노 안주원이 2020년 수석 무용수로 승급하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WEBSITE :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발레는 취향으로 삼기엔 장벽이 높다거나, 여성성이 유난히 돋보여 성별을 가린다는 편견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또 <지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등 너무나 유명해서 제목은 귀에 익지만 정작 작품의 전막은 낯설게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안에서, 방에서 마주하는 세계 발레단의 모습은 한 목표를 위해 몰입하는 ‘어느 누구의 일상’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두세 시간의 무대를 위해 1만 시간 이상의 훈련을 거치는 무용수들에게서 자극을 받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합니다.

물론 이에 더해 발레의 매력에 빠져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마침 매년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처럼 늘 상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이 기다리기도 합니다. 월드 발레 데이로 확인한 무용수들의 열정을 떠올린다면 작품 감상의 층위가 두터워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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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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