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나’라는
환상을 깨는 사진가들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정체성의 유연함 혹은 연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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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人間)’이라는 단어는 ‘인생세간(人生世間)’이 줄어든 말입니다. 그 글자 뜻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인간’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띄며, 이는 “월인석보”에 나오는 “人間은 사 서리라(인간은 사람의 사이이다.)”라는 풀이가 그 본뜻을 더욱 분명히 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소외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관계의 틀에 주입하며 살아가지만, 관계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속일 수도 있으며, 한없이 불안정한 것임을 알게 되죠. 이러한 사실을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세 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정체성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는 니키 리

The Yuppie Project, Digital C- Print, 1998
The Yuppie Project, Digital C- Print, 1998
The Hiphop Project 1, Digital C- Print, 2001.

(내 작품에는) ‘내가 이렇게 속이는데 너희는 뭘 그렇게 한 모습에 집착하니?’라는 의도가 있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_니키 리

“프로젝트” 연작 작품에서 니키 리 작가의 모습은 한국 여고생, 일본 젊은이, 투어리스트, 히스패닉 등 여러 인종과 집단 속에 태초부터 속해있던 원주민 같은 존재로 보입니다.

이는 니키 리 작가는 누군가 되어보고 싶다는 직설적인 욕망과 정체성을 작품에 투영코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관계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속일 수도 있으며, 한없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그렇기에 능동적으로 다른 삶들을 체험하여 재현된 정체성을 기록하죠.

Part 10, Digital C-Print, 2003.

“프로젝트”에서는 집단 안에서 변화하는 정체성을 다뤘다면, “파츠” 연작에서 깊은 관계 안에서의 정체성을 다룹니다. 작품에서 여성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상대는 의도적으로 잘려 나가 정체는 확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녀가 취하고 있는 포즈나 표정을 통해 그들의 관계와 그녀의 정체성을 유추할 수 있죠.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공통적으로 시각적인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된 것이든, 일정 기간 체득한 것이든, 단순 모방이든 간에 말이죠. 이러한 니키의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체성을 재규정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INSTAGRAM : @nikkislee


여성성의 틀을
무효화하는 신디 셔먼

신디 셔면, “Untitled Film Still #13”, 1978.
신디 셔면, “Untitled Film Still #13”, 1978. 이미지 출처: MoMA
신디 셔면, “Untitled #153”, 1985.
신디 셔면, “Untitled #153”, 1985. 이미지 출처: MoMA

나는 매우 인간적인 형태와 아주 추악한 형태를 부각시켜 왔다. 지금 나는 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이겨내려 하고 있으며 사람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처럼 보일 수 있는지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대상화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

_신디 셔먼

우리의 정체성은 가부장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났을까요? 그녀는 기성 남성지가 생산하는 전형적인 이미지인 포르노그래픽한 연출을 조성하거나, 공포스럽고 괴기한 분위기와 불쾌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B급 영화의 여배우, 패션모델, 귀부인, 광대, 그로테스크한 시체 등 스테레오 타입 여성으로 연출된 모습을 담습니다.

이를 통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가부장적 사회가 규정하고 요구하는 여성상과 실제로 드러나는 인간적 개체의 간극을 제시하고 비판하며 사회적, 성적으로 억압받아 온 여성 주체 회복의 작품화를 꾀한 작가의 모습을 고려하게 됩니다.

신디 셔면, “Untitled Film Still #10”, 1978, Gelatin silver print
신디 셔면, “Untitled Film Still #10”, 1978, Gelatin silver print

그녀의 작품 앞에선 우리는 변장 뒤에 감춰진 역사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 변화를 강요당하는 인간 정체성의 연약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합니다. 신디 셔먼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진정한 자아 확립과 주체성 회복, 그리고 복합성과 유연성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죠.


INSTAGRAM : @cindysherman


복합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모리무라 야스마사

“Self-Portrait - After Marilyn Monroe”, 1996, gelatin silver prints
“Self-Portrait – After Marilyn Monroe”, 1996, gelatin silver prints
“Self-Portrait/After Audrey Hepburn 1”, 1996, gelatin silver prints
“Self-Portrait/After Audrey Hepburn 1”, 1996, gelatin silver prints

서양에서 주목받는 오사카 출생의 동양인 작가 모리무라 야스마사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할리우드 여배우, 역사, 서양의 초상화, 대중문화, 미술사 속 상징적 인물로 분장한 본인 자신이 등장합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작가 본인이 분장해 스스로를 피사체로 삼는데, 이는 신디 셔먼의 작업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리무라 야스마사의 차별점은 그는 철저히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것과 더불어,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인 자신에게 대입했다는 점입니다.

“Portrait(Futago)”, 1988.
“Portrait(Futago)”, 1988. 이미지 출처: 모리무라 야스마사

사진 속 그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범주를 허뭅니다.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사진과 회화 등 이분법적으로 정의내린 틀을 드러내고 자신이 아시아 게이 남성이라는 이중적 타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INSTAGRAM : @yasumasamorimura


이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정체성은 단일하고 고정된 것이 아닌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무한하게 변주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게 될지,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관계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과제가 된 것 같습니다.


김진희

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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