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머무른 경험이 있나요? 만약 당신이 네이티브처럼 말 할 수 있다면 분명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그 시선에는 흥미로움, 애정, 신선함같은 여러가지 감정이 묻어 있겠죠.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 이방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위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제3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 경계인의 이방성으로 균열 속에 자리한 심연을 바라보는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어와 독일어를 함께 사용하나 어느 한 쪽이라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양하여 위계, 젠더, 그리고 금기 같은 문제들을 직시하죠. 경계인의 위치에서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명료하고 예리하게 드러내는 작가, 다와다 요코입니다.
의도된 불완전함으로 마주한
이면의 진실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 2개 국어로 글을 쓰고 두 나라에서 모두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이민자나 이민자 2세가 아니라 성인기까지 일본에서 지낸 후 이주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러시아문학을 전공했고 스위스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로 이주하여 활동 중인, 다양한 문화권이 혼재된 작가입니다.
유독 다와다가 흥미로운 지점은 독어와 일어 모두 세련되게 구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 언어 모두 불완전하게 사용하면서 한 기준에 고착되는 것을 멀리합니다. 스스로를 타자화하여 무경계의 세계에 자신을 데려다놓은 셈이지요. 따라서 이중 언어는 작품 세계의 근간이자 기폭제입니다. 고의적으로 지표면에 틈을 벌려 놓고 경계에 숨어있는 흠결들을 제 3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다와다 유니버스 속
즐거운 혼돈
그의 작품 세계 인물들은 크게 내부인과 경계인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주나 여행으로 여러 문화권이 중첩된 경계인은 자국의 문화가 체화된 내부인의 차별과 위선, 허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개 신랑 들이기』 의 단편인 「페르소나」의 미치코 혹은 『벌거벗은 눈』에서 서독 대학생 외르크에게 납치당한 베트남인이 그러한 경계인들이죠.
작품 속 경계인들은 작가 본인처럼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독자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여러 인물과 상황 사이를 급박하게 오가고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작품을 다 읽은 후, 작가는 어디론가 떠나며 독자의 손을 놓아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독자는 경계와 금기의 우주에서 헤메이게 됩니다. 여러분도 다와다의 세계, 경계인의 우주로 항해를 떠날 용기가 있나요? 이 여정을 이끌어줄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1) 『개 신랑 들이기』
「페르소나」와 표제작 「개 신랑 들이기」 총 단편 2개가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전자는 사회적 가면에 숨겨진 진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후자는 금기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내재된 차별 의식을 폭로하는 작품입니다.
“일본 사람도 외국에서는 외국인이잖아요, 그러니까 마늘 정도는 먹어요. 외국인을 마늘 먹는 사람들이라고 총칭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독일 사람들도 마늘 많이 먹잖아요? 독일 사람도 외국에 가면 외국인이에요.” 미치코가 말하자 슈타이프 씨는 조금 상처받은 표정으로 미치코를 바라봤다.
_다와다요코, 『개 신랑 들이기』 중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되는 가면에서 비롯된 용어로, 사회적인 얼굴을 나타냅니다.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페르소나(가면)를 쓰며 진짜 얼굴을 감추는 과정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탐험합니다. 실제로 표정, 얼굴, 이미지와 관련된 측면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지요. 이를 젠더성과 국가성이 중첩된 ‘동양 여성’ 미쓰코의 시선으로 들여다 봄으로써 문명화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경계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보여줍니다.
미쓰코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 검은 눈동자 너머는 고요했고, 이마에도 코에도 땀 한 방울 없었으며 머리칼을 막 빗은 듯 단정해서 미쓰코가 무심코 손을 내밀어 머리칼을 만져보니 수세미처럼 거칠었고 그 밑의 피부는 소가죽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웠다. 미쓰코가 홀린듯 머리통을 쓰다듬으니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하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미쓰코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서 숙주나물을 볶았다.
_다와다요코, 『개 신랑 들이기』 중 「개 신랑 들이기」
「개 신랑 들이기」는 학원을 홀로 운영하는 미혼(비혼)여성 미쓰코에게 별안간 찾아온 ‘개 신랑’ 다로와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입니다. 미쓰코 선생은 평소에도 특이한 행동으로 정상 가족에게 큰 관심을 받는 인물입니다. 남편이 생겼다는 소문, 다로의 전 부인이 마을에 있다는 소문, 그리고 다로가 동성 애인이 있다는 소문 등 여러 소문들은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와 정상성에 대한 사유를 유발합니다. 이 소문들을 뒤로하고 미쓰코, 다로, 다로의 동성 애인 도시오, 도시오의 딸 후키코는 홀연히 마을을 떠납니다. 소문의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로요. 이렇게 증발하는 장면은 경계인만이 할 수 있는 쿨한 위트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2) 『목욕탕』
이 소설은 꿈과 이미지들이 교차로 반복되며, 꿈-사실-이미지의 경계를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양자의 구분을 투명하게 만들어 경계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있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수하는 동안 자신의 두개골을 더듬거리며,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다른 얼굴을 확인합니다. 몸도 세계도 물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이므로, 고정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엄마는 큰 비늘로 뒤덮인 몸을 시도 때도 없이 암석에 들이받았고 결국 암석은 차츰차츰 부서졌다. 밤이고 낮이고 엄마는 몸뚱이로 쉬지 않고 암석을 들이받았다. 들이받을 때 떨어져 나온 비늘들은 피 묻은 벚꽃이 날리듯 하늘에서 춤을 췄다. 바로 이 때문에 벚나무 한 그루 없는 이 마을이 ‘벚꽃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_다와다요코, 『목욕탕』
주인공이 사는 ‘벚꽃 마을’은 비늘을 가진 엄마가 자신의 몸에 달린 비늘을 없애려 암석을 들이받은 설화가 있는 곳입니다. 암석을 들이받자고 권한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입니다. 당신의 엄마가 다른 사람과 다른 형태인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류와 다른 개인을 대상화하고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설화로 만들고, 마을 이름으로 채택하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낭만화하고 유희하려는 사회의 기괴하고 잔인한 면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해제적인 이미지를 통해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내부와 외부를 넘나듭니다. 이러한 초현실적인 세계는 혼란스러움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생각을 전환할 물꼬를 트여줍니다. 여기에서 독자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다와다 유니버스에 입문하기 전, ‘경계인’이라는 자각에 사로잡혀 자주 외로웠습니다. 평균도 아니고 딥다이버도 아닐 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을 때, 취향도 능력도 애매하게 영점 근처를 떠돌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혀 쉽게 포기하지도, 매달리지도 못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경계인’이라는 건 어쩌면 세계를 더 넓게 사유하는 위치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것도요. 당신을 얽매는 경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길 바랄게요. 그 자유는 당신이 만드는거지만요.
- 최윤영, 다와다 요코의 탈경계적, 탈민족적, 탈문화적 글쓰기, 2015, 일본비평 12호, p328-376
- 이윤주, 『“모든 사람은 ‘이민자’시선으로 경계인식”』, 주간한국, 2011.06.09
- 대산문화재단, “언어의 집 담장 위를 쉴새 없이 넘나들다 – ‘자리’를 벗어나서 경계에 선 작가, 다와다요코”, 20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