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나 해가 짧아지고 어둠이 깊어졌습니다. 도시에 어둠이 드리우면 서서히 우리의 밤을 채우고 있는 빛의 존재가 드러나죠. 역에서 내려 부천 시청 앞 잔디 마당으로 향하는 길에 수많은 인공의 빛을 마주쳤습니다. 저마다 이름을 뽐내는 전광판과 퇴근길을 비추는 빽빽한 헤드라이트,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신호등까지. 순간마다 이런 장면에 감탄해 본 적 있지만, 예술이라고 느낀 적은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예술이라 감각한 LED 빛을 마주쳤습니다.
사진 송재인
오르:빛, 물방울 체험하기
부천 시청 건물을 가로질러 광장에 도착했을 때 아,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는 커다란 구들. 그것을 던지고 굴리고 올라타는 사람들. 어떤 설명 없이도 이 몽환적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추위도 잊은 채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요?
천체의 궤도를 돈다는 뜻의 orbit과 빛의 합성어인 ‘오르:빛’. 경기도 구청사에서 시작된 ‘오르:빛 워터 파고다’는 관람객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체험 전시입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문화기술산업팀은 문화기술이라는 것을 대중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로 만들어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오르:빛’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경기도 지역의 특징을 살린 문화기술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오르:빛’의 첫 시작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진행한 미디어 파사드 전시 ‘오르:빛 재인폭포’에요. 총 3만 4천 명의 관객들이 찾아주셨고, 오르:빛 덕분에 연천 재인폭포는 열린 관광지로 선정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연천에 찾아올 수 있도록 관광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고 해요. ‘오르:빛 워터 파고다’는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현대판 소원 빌기,
물 탑(Water Pagoda)
12m의 거대한 물탑을 둘러싸고 있는 90여 개의 물 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몸이 닿을 때마다 저마다 다른 물방울 소리를 냅니다. LED 조명과 공기로 안을 채운 가벼운 공들은 물방울을 상징하는데요. 관람객들은 체험을 시작하기 전, 잠시 퍼포먼스를 감상합니다. 이때 잠시 무선 모드로 전환된 물 덩어리들은 가운데 있는 물 탑과 함께 기운을 모으는 듯 공이 가진 LED 색을 변주하는 퍼포먼스로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산신을 모시는 형태로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워터 파고다, 즉 물 탑은 일종의 현대판 소원 빌기를 형상화한 것인데요. 현장에서 QR 코드를 찍어 소원을 작성하면 내가 빈 소원이 다른 사람들의 소원과 함께 스크린에서 노란색 별이 되어 떠다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현장에 있는 전광판에 공유됩니다.
오르:빛 워터
파고다가 향하는 곳
워터 파고다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던 수원 경기도 구청사는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바다와 같고 구청사를 둘러싼 팔달산의 화기가 강해 구청사 구관의 지붕도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역성을 고려해 물 탑의 형태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하죠. 잔잔하면서도 활기찬 파도 소리가 섞인 배경 음악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가장 많았는데요. 이 색과 저 색을 번갈아 드는 아이, 부피가 매우 큰 공을 마치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는 아빠, 가볍고 작은 공 위로 커다란 공을 올려보는 시도. 이곳은 마치 중력을 잃은 물속 같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경험한 이러한 다양한 감각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고와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 같습니다.
≪오르:빛 워터 파고다≫는 처음에 일회성으로 만들어진 전시였으나 작품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 다양한 연령의 가족들이 모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아 꾸준히 전시를 이어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 전시는 11월 10일부터 19일까지는 부천 시청 잔디 광장에서 그 두 번째를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다음으로 광명동굴 빛 축제에서 만나보실 수 있다고 합니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의 의미가 닿는다면, 연속성을 위해 추가 전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문의가 있다면 경기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세요.
사람의 감각은 생각보다 단순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전시를 직접 보기 전에는 빛을 내는 커다란 구들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이미 몇 번이고 겪어본 미디어 아트가 조금은 뻔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 마음은 물방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단번에 바뀌었습니다. 서로 다른 색과 소리를 가진 큰 구와 작은 구, 그 사이를 걷는 동안 오롯이 이 비현실적인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간과하는 것들을 다시금 경험할 때, 어린아이들이 느끼는 투명하고 즐거운 감각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당 아티클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