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레미제라블’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면 구걸하거나 빌려라. 그도 안되면 훔쳐라!”
_런던스탠더드지 리뷰
위 인용문은 웨스트엔드(West End)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처음으로 개막했을 당시 런던스탠더드지(London Standard)에 실린 리뷰입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티켓을 훔쳐서라도 관람하라는 평을 남겼을까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그 이름,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위고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입니다. 웨스트엔드에서 1985년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작품이기도 하죠.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레 미제라블>의 모든 것을 알려드릴게요.
장발장과 불쌍한 사람들
장발장을 아시나요? 빵을 훔친 죄로 징역 5년을 살던 중 4번의 탈옥시도로 결국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은 <레 미제라블>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입니다. 국내에서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출판되거나 장발장이 훔친 빵의 크기에 대한 짤이 돌면서 장발장이라는 인물은 익숙할 텐데요. 하지만 <레 미제라블>이 단순하게 ‘절도범 장발장, 과거를 숨긴 채 시장이 되다’ 정도로 생각하신다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제목 ‘Les Mizérable’을 번역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공장에서 부당 해고를 당하여 머리카락과 앞니, 몸까지 팔아 어린 딸의 양육비를 마련하다 병으로 죽은 팡틴과 그녀의 딸 코제트. 코제트를 양육하던 떼나르디에 부부와 그들의 딸이자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마리우스. 마리우스와 함께하던 파리의 대학생 및 청년 노동자들의 모임. 그리고 장발장과 대립하는 원칙주의자 자베르까지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죠. 19세기의 프랑스 왕국, 그중에서도 1983년 6월 봉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무대화
빅토르 위고가 원작 소설을 집필할 당시 프랑스 출판사들은 단어 수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지급했습니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인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죠.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환경, 심지어는 엑스트라의 이야기까지 정말 183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건축, 도시, 설계, 정치, 종교 등 당시 사회상까지도 상세히 기술합니다. 장발장이 은식기를 훔치던 주교관의 건축양식이 어떠한지, 마리우스를 짊어지고 도망치던 하수도의 역사와 길이까지 알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의 프랑스는 조금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1980년 프랑스 파리 돔에서 3개월간의 단기 공연을 올렸습니다. 이를 본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는 이 작품을 런던으로 가져와 대사를 영어로 번역하고, 무대 스케일을 키워 대형 공연으로 만들었습니다. 무대 장치만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LED 화면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고,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들을 생 드니 거리의 바리케이드 앞으로 이끕니다. <레 미제라블>에는 각 캐릭터마다 부여된 테마 멜로디가 있습니다. 이 멜로디는 프랑스 뮤지컬 특징 중 하나인 송스루 형식과 어우러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극대화합니다. 송스루란 대사가 아예 없거나 극도로 제한하고, 모든 대사를 뮤지컬 넘버로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지나가는 대사 하나까지 노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편의 시를 노래하는 듯합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특별한 이유
한국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라이선스를 훔친 적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1980년대부터 1990년 후반까지 원작자의 허락 없이 제작된 무판권 공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는 한국에는 라이선스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하는데요. 2002년 월드 투어팀의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끝으로 <레 미제라블>을 국내에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정식 라이선스 공연이 개막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재연 이후 8년 만에 <레 미제라블>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지난 시즌에도 참여했던 배우, 이미 잘하기로 소문난 스타 배우, 새롭게 등장한 신예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해주실 김문정 음악감독이 함께하죠. 지난 부산 공연에서 전 캐스트로 관람을 마친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의 배우분들,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분들 모두 굉장한 실력자라는 것을요.
뮤지컬 관람 포인트
1) 배우
티켓 가격이 비싸진 만큼 배우 선정에도 고민이 많으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는 너무 쉬운 일이죠.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에포닌 역을 맡은 루미나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외국인 배우로 첫 작품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 실력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신인 배우조차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주니 어떤 회차를 보더라도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장발장과 자베르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앙상블로 등장하니 그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1막 초반 마을 씬에서 마리우스 역을 맡은 배우와 코제트 역을 맡은 배우가 함께 있는 장면을 찾아내는 재미말이죠.
2) 좌석
웅장한 무대장치와 무대 전체를 사용하는 장면만큼이나 각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솔로 넘버도 중요합니다. 배우들의 표정연기와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는 2층보다는 1층, 뒷 열보다는 앞 열을 추천합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분위기만큼이나 무대가 많이 어둡기 때문인데요. 만약 뒤쪽 좌석을 예매했거나 표정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오페라글라스를 소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할지 고민된다면 뮤지컬 극장 시야 공유 플랫폼 ‘see ya!’에서 극장 후기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간 블록에 잔여좌석이 없고 장발장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다면 왼쪽 블록에 앉는 것을 추천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 대해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귀스타브 랑송은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혼돈’이라고 말했고요.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류의 고통은 멈추지 않습니다. 미천한 자들의 고통 소리는 서울에서 2024년 3월 10일까지, 대구에서 2024년 3월 21일부터 2024년 4월 7일까지 이어집니다.
WEBSITE : 레미제라블
INSTAGRAM : @lesmi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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