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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권하는 사회

우리는 왜 성인의
귀여움을 탐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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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애교 문화는 K-콘텐츠들이 해외에 점점 노출되면서부터 서구인의 도마에 종종 오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만 검색해도 ‘미국인이 바라본 한국의 애교’, ‘애교를 처음 본 외국인 반응’ 등 애교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볼 수 있다. ‘성 불평등이다’, 심지어는 ‘소아성애적 취향이다’라는 반응까지 나오곤 한다.

이렇게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디어에서는 해가 다르게 각종 참신한 애교들이 트렌드를 타며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왜 성인이 인위적으로 아이처럼 구는 행동을 보며 귀여움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이를 탐닉하는 문화적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애교는 나의 무기?

한국 사회에서 애교는 대체로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자질이다. 선후배 개념이 확실한 학교, 나이를 터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는 사회에서 적당한 애교는 남성에게도 더러 요구된다. 특히 사회형 애교란 상사를 싹싹하게 챙기고, 사근사근하게 말하며,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 줄 아는 사회성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결국 애교는 권력관계에서 하위에 놓인 자가 부리는 처세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여성의 애교로 돌아와 논지를 이어가 본다. 지난 10월 파주시에서 바른 자세로 경례하는 남군 구조물 옆에, 애교를 부리는 자세의 여군 구조물이 논란이 된 사례가 있었다. 군 성폭력상담소는 “남군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군은 애교를 부리는 자세로 인해 군인 역할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덧붙여 “왜곡된 성별 역할을 심어줄 수 있으며, 군인으로서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며 복무하는 여군을 차별하고 배제한다”면서 철거 및 변경을 요구했다.a)

실제로 사회에서 여성에게 애교와 같은 자질이 얼마나 요구되는지는 당사자들의 증언 외에 측정할 방법은 없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애교를 통해 능력 이상의 결과를 달성하는지 또한 수치화할 수 없다. 그렇다 한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또한 명백히 가릴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어쨌든, 이 구조물 또한 소수에 의해 찰나의 실수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획부터 최종 결재까지 짧지 않은 과정 동안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제기했더라도 변경되지 않은) 사실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미지 출처: tvN 유튜브

몇 해 전 한 인기 드라마에서는 직장 내 부당한 애교 요구를 희화화하기도 하였다. 드라마제작사의 마케팅팀장인 여주인공은 감독과 남배우에게 PPL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 감독은 ‘오빠라고 해봐. 그럼 해 줄게’라는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 처음에는 불쾌하고 자존심마저 상했던 여주인공은 심기일전하여, 무한 오빠 공격을 시전한다. 치명적인 매력 대신 치명상을 입히는 전략을 구사하여, 감독과 남배우는 당혹감에 휩싸인다. 어른이라면 하기 싫은 일도 해내는 게 진짜 능력이라는 말처럼 이 또한 능력이라고 치하해야 할까, 혹은 능력 부족을 애교로 무마했다고 봐야 할까?


너의 순진함과 무해함을 보여줘

이미지 출처: MBC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에게 애교 요청은 단골 코너로 자리 잡았다. 자발적으로 애교 개인기를 보여주는 연예인도 많다. 여기에 권력관계가 어디 있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성인의 애교를 탐닉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지부터 의문을 제기해보자.

우리는 왜 성인이 인위적으로 어린아이처럼 굴며 귀엽길 바라는 것일까?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무력하고 불완전하다. 결국 귀여움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뇌가 상대를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인식할 때 안전감과 함께 발생한다.

이미지 출처: tvN 유튜브

아이돌은 전적으로 대상화되어야 가치가 발휘되는 존재이다. 0.1%의 톱스타를 제외하고서는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보다 대중이 원하는 틀에 자신을 끼워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한국에서 귀엽고 애교 많은 아이돌이 유독 사랑 받고, 강한 이미지의 연예인에게도 애교를 요구하는 데에는 앞서 말한 사회형 애교와도 비슷한 문화적 코드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들에게 주체성의 결핍을 만들어, 비로소 사랑하기에 최적화된 대상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상의 의미를 지닌 아이돌이라는 단어로 이들을 지칭하지만, 사실은 소비의 주체로서 이들의 우위에서 많은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을 소비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권이 대중에게 있는 이상, 아이돌의 애교 또한 상호관계에서 하위에 있는 자가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애교의 맹점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빌려 순진함과 무해함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인지한다면, 우위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남자도 이제는
카리스마보다 애교

이미지 출처: GPT 4.0 (Dall-e), Leonardo.Ai로 생성

최근에는 걸그룹을 넘어, 남자 연예인들에게도 애교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애교를 거부하는 경우, 마치 직무 유기처럼 남녀 할 것 없이 비난 여론의 대상이 되곤 한다. ‘카리스마 대신 애교’, ‘애교 넘치는 하트’ 등 최근 남자 아이돌을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 사진 기사 제목들이다.

남자 아이돌-여성 팬의 관계는 그 반대의 경우인 여자 아이돌-남성 팬보다 조금 더 복합적인 역학 관계가 존재한다. 후자는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던 기존 사회적 시선이 비슷하게 투영된다. 응당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귀엽거나 혹은 섹시하더라도, 적당히 수동적인 존재이길 바란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듯한 남성미와 동시에 귀엽고 순진한 소년미도 요구된다. 이는 얼핏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꽤 진보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이미지 출처: 일간스포츠

가수 옥택연은 얼마 전 팬과의 1:1 영상통화에서 나눈 대화를 털어놓았다. 각종 애교스러운 하트 요청에 주저하고 있는데, ‘오빠, 이거 유료 서비스에요’라는 팬의 일침에 하트 장인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팬의 그 한마디는 진정 날카로운 일침이었을까?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서 구매력은 거대한 권력으로 작용한다. 비용을 지불한 팬은 아이돌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우위에 놓인다. 작게는 앨범이나 굿즈부터, 가장 극명한 예로는 팬 사인회가 있다. 그간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에 대한 보상 심리가 바로 애교로 치환된다. 우상화하던 아이돌이 아이처럼 작고 순진한 존재로 반전되는 순간, 상대를 귀여워함으로써 나의 권위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귀여워하고 귀여움을 당하는 관계 안에서 완벽한 수평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의 귀여움이 애정의 근간이 되는 문화적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쩌면 일상에서 너무나 많은 자극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나머지 잠시나마 무해함으로 도피하고 싶은 심리적 욕구일까? 상대의 순진함과 무해함의 증명을 통해 나의 안위가 확인된 후에야 성립되는 우리의 권위적 사랑에 대해 한 번쯤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귀여움이라는 감정에 내재된 결코 귀엽지 않은 힘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애교를 권하고, 애교를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살리

살리

파리에서 방랑 중인 예술가.
단 하나의 색이 아닌 그라데이션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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