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23년의 마지막 달을 맞아 올해를 찬찬히 돌아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다녀왔던 전시의 추억을 되짚어보려 전시 도록을 하나하나 책장에서 뽑아서 읽어보았는데, 전시를 다녀온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뿐 아니라 마치 새로운 전시를 방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너무나 즐거운 겨울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에디토리얼과 작품 사진, 전시의 메시지와 조응하는 독특한 디자인과 사각거리는 표지의 촉감, 도록을 구성하는 면면이 도록이 단순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을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너무나 독특하고 멋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즐거운 경험을 나누고자 친구들과 연말 약속 자리에 세 권의 도록을 소중하게 챙겨갔습니다. 저희는 따뜻한 카페라떼 세 잔을 앞에 두고 모여 앉아 도록을 돌려 읽은 후 각자의 감상을 나누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각자 꼽아보았습니다. 직접 전시를 보지 못한 친구 역시도 도록을 읽고 전시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전시를 갔던 사람과 가지 못했던 사람 모두가 생생한 토론을 즐기고 모임을 파했는데, 저는 도록이 전시 이후로도 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선사하는 이 경험을 안티에그 라이브러리에서도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라이브러리에서 제가 소개 드릴 책은 바로 연말 모임에 제가 가지고 간 세 권의 도록입니다.
이안쳉 : 세계탐구
책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세계탐구’의 DLC
『이안쳉 : 세계탐구 도록』은 단순히 전시에 소개된 이안쳉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큐레이터, 물리학자, 게임평론가, 소설가 등 여러 분야 필자의 글을 모아 전시가 관람자에게 제시한 질문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시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안 쳉의 작품을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확장하는 글들은 마치 게임의 DLC처럼 전시 이후에도 전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세계건설의 가능성을 증명합니다. 『이안쳉 : 세계탐구 도록』의 독특한 북 디자인으로 이러한 도록의 내용과 어우러지며 도록을 읽는 독자에게 전시와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MMCA 소장품 특별전: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는 ‘시대 변환과 미술 지형 변동’, ‘불일치의 활성화’, ‘이질성과 그 비평적 시공간’, ‘미래 간섭 혹은 미래 개입’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기획된 전시를 자세히 소개하며 전시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역사화 과정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도록에 소개된 미술사학자 이은주와 문학평론가 함돈균의 비평은 1990년대 한국미술을 ‘동시대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새로 읽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간결하고 알기 쉬운 문체로 전시에 소개된 내셔널 갤러리의 명화들을 찬찬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도록은 그에 더불어 국내 미술사학자 칼럼 다섯 편과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수재나 에이버리-쿼시의 논고를 실어 한국 관객에게 조금은 낯설지 모르는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들을 관통하는 서양미술의 큰 흐름을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방대한 분량에 질려 서양미술사 공부를 주저하셨던 분들에게 즐겁게 갤러리를 걷는 것처럼 서양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게 하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입문서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