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술의 운명을
가늠하는 작가들

인간 기계의 관계를 조명하며
상상력을 펼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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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은 상상 이상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기와 동력은 공간의 의미를 바꿔 놓았고, 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확장했으며,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 기술 덕분에 인간 능력을 강화하거나, 인공물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수행하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속이 붙어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듯합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인간의 편견을 재생산하고, 기술적 특권은 소수의 권력을 공고히 하며, 핵융합 기술은 인류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 가까운 미래의 인간은 자연 법칙을 거슬러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하게 되겠죠.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어, 이렇게 질주하는 것일까요? 기술로 인간을 뛰어넘고자 하는 트랜스휴먼적 비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세 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인간과 기계의 상생을 꿈꾸는
백남준

백남준, “다다익선”, 1988, 국립현대미술
백남준, “다다익선”, 1988, 국립현대미술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자서전”,1989-1991, 리움미술관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자서전”,1989-1991, 리움미술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세상의 지평이 확장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이 인간 삶과 예술에 미치게 될 영향을 탐구하며 예술의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직접 로봇을 만들고 조종하며 인간과 기계의 복합적인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예술적 실천으로 옮기는 시도를 지속하였습니다.

백남준, “라인골드”, 1995, 리움미술관
백남준, “라인골드”, 1995, 리움미술관

작품에서 사용된 비디오, 모니터, 스피커, 금관악기 등은 근대 예술의 시기엔 서로 다 영역에 속하며, 각자 고유한 원리에 따라 예술을 이루었던 것들입니다. 혹은 어떤 재료는 아예 예술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언어, 조형물, 비디오 등등이 하나의 예술의 재료로 사용되며 하나의 작품, 그리고 작품은 하나의 인간의 모습을 구현합니다. 재료구성과 양식을 통해 작가는 인간중심주의나 기술 중심주의 한쪽에 치우침 없이 인간은 지배적인 본질이라기보다 인간과 기술 그리고 자연이 유토피아 세계 가운데 한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WEBSITE : 백남준 아트센터


궁극적인 인간 향상을 꿈꾸는
스텔락

스텔락, “팔 위의 귀(Ear on Arm)”, 2007
스텔락, “팔 위의 귀(Ear on Arm)”, 2007

호주의 행위 예술가인 스텔락(Stelarc)은 “인간 신체는 진부하다” 고 선언하며 신체와 기계 사이 경계에 도전하는 작가입니다. 1970년대부터 이식 수술, 보철 및 의료 장비, 로봇, 알고리즘 등을 활용하여 인간의 신체 강화와 인공적 진화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전 세계적 이목을 끈 “팔 위의 귀(Ear on Arm)”에서는 연골과 세포로 배양한 인공 귀를 자신의 팔에 이식하였고, 수십 개의 갈고리로 피부를 꿰어 신체를 공중 부양시킨 퍼포먼스를 통해 신체의 심리적, 물리적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스텔락, “리-와이어/리-믹스(Rewired/Remixed)”, 2016
스텔락, “리-와이어/리-믹스(Rewired/Remixed)”, 2016
스텔락, “프로펠(Propel)”, 2015
스텔락, “프로펠(Propel)”, 2015

스텔락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기계장치의 결합으로 인간 능력을 향상해 함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시사하고자 합니다. 최근작인 “리-와이어/리-믹스”, “프로펠”, “스틱맨”등 공통으로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원격조종을 할 수 있게 하며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감각의 확장 가능성과 보다 극대화된 인간의 기계적 확장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인간-기계의 공진화를 꿈꾸는 트랜스 휴먼적 비전을 투영코자 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감내하고 거대한 기계장치를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난제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힘겨워 보입니다.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에 있던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것들을 넘어서는 인류의 새로운 모습인 포스트휴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류가 기계나 기술화되고 기계의 부품 조각처럼 대체할 수 있 존재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WEBSITE : 스텔락


초월 열망을 비트는
이형구

이형구(HyungkooLee) , “Altering-Features-with-H-WR”, 2007
이형구(HyungkooLee) , “Altering-Features-with-H-WR”, 2007
이형구(HyungkooLee) ,”Satisfaction-Device”, 2001
이형구(HyungkooLee) ,”Satisfaction-Device”, 2001

이형구는 스텔락의 낙관적인 태도와는 달리 인간 향상의 열망과 기술만능주의를 비틀고자 합니다. 과학적 치밀함과 예술적 상상을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유학 시절 자신이 경험한 신체적 콤플렉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시아 남성으로서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손이 커 보이게 하는 장치, 투명 헬멧에 렌즈를 부착해 눈과 입을 확대와 축소하는 “헬멧” 시리즈, 성기를 커 보이게 만드는 “만족 장치(Satisfaction-Device)”에 이르기까지 신체를 변형하는 장치들을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이형구(HyungkooLee), “Enlarging-My-Right-Hand-with-Gauntlet-1”, 2002
이형구(HyungkooLee), “Enlarging-My-Right-Hand-with-Gauntlet-1”, 2002

작품들은 아시아 남성, 더 나아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작가의 시도를 투영한 듯 합니다. 첨단기술 접목한 전문 의학 기구나 광학 장치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돋보기, 위스키 잔, 페트병 등의 일상 재료로 만들어진 조악한 유사 광학 장치입니다. 이를 뒤집어쓴 작가는 또렷한 서구적 눈매와 황금비율로 향상되기는커녕 기형적이고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있습니다.

이러한 블랙 유머와 같은 모습은 성형술, 유전공학, 로봇 기술 등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포스트휴먼의 환상을 전복시킵니다. 기술만능주의와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이라는 초월 열망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나아가 작가가 장치를 통해 극복하려고 하는 콤플렉스, 한계라고 정의한 이상적인 완벽함의 기준과 근거에 의문의 제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WEBSITE : 이형구


3인의 작가는 인류와 기술은 분할 불가능하며, 포스트 휴먼의 출현을 분명히 예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과연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느냐일 것입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독립성을 강조하며 개인이 자유로이 기능을 향상하거나 변형을 선택하게 하는 자유주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칸트를 비롯한 근대의 계몽 기획과 같이 인간 정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낙관에 기초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특정 기술의 개발 및 적용에 혐의를 제기하는 것보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윤리, 책임, 권리와 같은 이해, 이타성의 발전을 통해 올바른 방향과 기준을 세우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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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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