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겨울이 시작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겨울바람처럼 시린 시대의 계절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견디어낸 아름다운 부부. 폐허 같은 조국의 현실을 예술혼으로 밝혀 미래상을 제시한 시대의 등불. 우리의 얼, 우리 강산, 우리의 고유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평생 정직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 하늘과 나무를 사랑하며 그림을 사랑하고 서로를 생명 다해 사랑한 김환기 화백, 김향안 작가입니다.
순수한 그림 세계, 독창적인 색채와 기법으로 유명한 김환기 작가는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림에 대한 안내보다는 김환기라는 사람, 그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낸 김향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아티클을 준비했습니다. 김환기의 글을 모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향안의 글을 모은 <월하의 마음>이라는 두 책에 실린 보석같은 문장들을 인용하며 두 사람의 우주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진정 그림만 그려야겠소
김환기는 화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발길에 차이는 모든 것을 예술과 연관 지어 생각하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그는 그림에 미친 그림쟁이로 삽니다. 눈 앞 풍경에서부터 시작해 제멋대로 뻗어가는 잡념일지라도 모든 생각의 끝은 붓끝으로 돌아옵니다. 주변 사람들과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더 공부에 매진하며 그림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당부하는 말이 가득합니다.
“365일 아니 죽을 때까지 자고 새면 하루라도 팔레트에 빛깔을 짓이겨 보지 않고는 한 달이고 목욕을 못해 생리가 개운해질 수 없는 것처럼 돼버려야 한다. 날이 날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생활이 돼버려야 한단 말이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그림을 장난한다. 그림은 내 노리개다. 내가 성장하면 노리개도 바꾸어지겠지. 나는 내 노리개를 처치할 창고를 지으련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술은 취하고 그저 기쁘기만 했다. … 앞으로 몇 폭의 그림을 그리다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는 약 190cm에 달하는 큰 키의 거구였음에도 평생 가만히 서서 작업했습니다. 그림 작업은 심신 수련이자 고행이나 다름없었죠. 특히 파리, 뉴욕에서 작업하며 조국을 떠나온 외로움과 싸우고, 타협 없이 정직한 예술가로서 감내해야 했던 자기 불신을 이겨내 탄생한 점화는 숭고한 작품세계의 극치입니다. 그림에 그리움을 켜켜이 쌓으며 더 선명히, 더 간결히 다듬어 탄생한 작품들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들을 차용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조형의 미, 가장 독창적인 자신만의 색채까지 모두 고고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의 예술이 어디까지 정진했는가?’ 자꾸만 돌아보았던 김환기의 진솔한 기록들을 보면, 그가 찍어간 점 하나하나가 눈물처럼, 혹은 그가 견뎌낸 세월의 숫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추상적인 점, 선, 면에 마치 영혼에 깃들어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하죠.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리가 할 일은 좋은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잖소.”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새 화포 앞에 선다. 새 화포 앞에 서면 그냥 그림이 시작되어진다. 제작하며 생각하는 생각이 결국 그림을 만들게 된다. … 새와 달과 산을 십수 년 그려 왔으나 아직도 이런 것을 더 그리고 싶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안목과 정신은 예술로부터
암흑 같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지낸 서울은 폐허와 다름없었습니다. 환기, 향안 가족도 전쟁 피난을 다니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처지였죠. 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이 잿더미에 덮여있을지언정 선진국의 예술 수준에 뒤처지지 않도록 돈, 시간, 체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공부에 몸을 불살랐죠. 김환기는 냉철히 우리 나라의 현주소를 파악하면서도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어떤 진보와 개선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폐허에서 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는 이 중요한 기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향해 달려갈지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예술을 토대로 길러진다고 믿었습니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현대에 살면서 비행기를 타고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고 들어야만 문화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 우리 문명인을 진심으로 매혹할 수 있는 예술이란 대상의 작품 그 속에서 무엇인가 높은 예지를 인식하고 또한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닐까.”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지성이란 무엇일까요. 지성은 인간에게 내재한 생명과 창조력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언어, 논리만 풍부하다고 해서 지성 있는 인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김환기는 지성은 홀로 발휘될 수 없으며, 우리 시대적, 사회적 한계와 맞부딪치며 이뤄내는 이해와 실천으로 빛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저항 정신’은 곧 현실을 극복하는 정신, 내일로 향하는 정신처럼 명랑한 것이었죠.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였던 그는 학생들이 지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습니다. 아름다운 교정이 예술 생산의 전당이 되어 이 나라를 변모해 갈 미래를 상상하는 그의 일기에는 생기와 설렘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지성은 홀로 초월하여 홀로 먼지를 털고 앉아 깨끗할 수가 없다. 우리의 지성은 전통의 위엄과 역사의 생명에 근원을 두고 시대적, 사회적 현재에 맞부딪쳐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성을 지닌 것이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재미나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옹색치 않은 시설도 마련해 주고 싶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찬연히 빛나는
예술을 알아보는 눈
“나는 곧잘 아내를 상대로 인생론, 미술론을 편다. … 나는 생활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아내의 비판을 정직하게 듣는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향안은 단지 김환기의 아내이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김환기 화백이 마음껏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터를 닦아주고 끌어주는 매니저이자 그 못지않은 심미안을 지녀 인생론과 예술론에 관한 담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였죠. 누구보다 든든하게 김환기의 그림 세계를 받쳐준 킹메이커 역할을 해내며 동시에 자기 발전을 이뤄낸 명석한 지성인이었습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예술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낭만 예술가 환기 옆에는 현실에 발을 딛고 냉정한 조언과 비판, 다정한 사리 분별로 가정생활과 그림 작업을 받쳐주는 향안이 있었습니다.
“네 엄마의 희생적인 노력과 협조가 아니고서는 나는 잠시도 편히 붓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며, 또한 일부에서도 인정을 못 받았을 것이다. 정말 나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심정으로 붓을 들어왔고 네 엄마도 또한 이런 정신력으로 오늘까지 밀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늦도록 제 공부를 하고 있다. … 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내 아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여성들은 모두 이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너희들 또한 엄마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미술 전공도, 화가도 아니었던 김향안은 미술가의 아내로서, 그와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동행자로서, 그저 한 명의 지성인으로서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진화시켰습니다. 환기는 그런 향안의 안목과 지혜를 전적으로 존중했고,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견해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생각을 서로의 생각으로 통합해 냈습니다.
“남편이 화가인데 아내가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가정생활은 다소 절름발이 격이 되지 않을까. 부부란 서로의 호흡을 공감하는 데서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인 줄로 안다. 자기가 전공한 것이 미술이 아니라도 미술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미술에 대한 기본 공부를 해보는 것은 남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려니와 자기 자신의 정신 생활을 또한 그 만큼 폭넓게 하는 길이 될 거다.”
_김향안,『월하의 마음』
“자연 나는 문학 서적보다는 미술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고 문학적 산문보다는 미술사나 미술평을 더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내조의 뜻이란 또 다른 곳에 있을 거다. 화가로 하여금 되도록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하며 창작의 의욕을 자극시켜야 하며 에너지를 보충해주어야 할 거다. 그러나 감정의 지나친 유출을 방지해야 하며 에너지의 과잉을 견제해야 하고 또 기고만장하려 드는 기분주의를 적당히 조절해야 할 거다. 현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적당히 바가지도 긁어야 하며 가정 경제를 이리저리 안에서 둘러쳐야 하지만 가끔 책임을 깨우쳐 줘야 한다.”
_김향안,『월하의 마음』
김향안의 ‘심미’는 감탄스러울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전란이라는 혼란한 시대에도 고미술을 좋아해 우리 민족의 얼과 생활을 담아낸 항아리, 그릇을 귀히 보관하는 심미안을 지녔습니다. 그녀는 서양 유행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명성에 집착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경제 발전에 급급한 분위기를 답답해하기도 했죠.
“예술가는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히 보지 않는다. 형태와 빛깔, 구름이 주는 시정(詩情)을 예민하게 받는다.”
_김향안, 『월하의 마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어디를 향해서 저렇게들 뛰고 있는 것일까?”
_김향안, 『월하의 마음』
예술 선진국을 먼발치에서 부러워하며 현실을 비관하며 앉아있기란 쉽습니다. 하지만 김향안은 의욕을 현실로 바꿔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쟁과 독재로 살벌하던 그 시대에도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내 파리와 뉴욕을 향합니다. ‘나의 예술 경지는 어디까지 왔을까?’ 자문하며 불안해하던 남편이 언제든 눈을 세계로 돌려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터를 닦으러 가겠다면서요.
“도대체 내 예술이 어디(세계수준)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가봐!”
“어떻게?”
“내가 먼저 나가 볼게.”
나는 다음날 불란서 영사관을 찾아갔다. 파리에 가고 싶다니까 그냥 비자 같은 것을 여권도 만들기 전에 내주었다.
_김향안, 『월하의 마음』
그렇게 향한 파리에서는 일상의 파편 하나 놓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 깃든 철학, 문화, 민족성을 무시무시하게 빨아들입니다. 이 눈부신 문화를 한국에는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방안을 모색하는 두 사람의 기록을 보면 왜 이 두 사람이 운명 공동체가 되어 평생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됩니다. 품은 뜻도, 간절한 의지도 너무 똑같기 때문이죠. 이렇듯 현실적이면서도 뛰어난 실행력을 지닌 강인하고 지혜로운 김향안 덕분에 김환기는 고독과 불안을 잠재워주는 아내의 차분한 사랑으로 예술에 정진하다가도 때론 확신을 바탕으로 한 평온한 사색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어제 전체를 둘러보고 내 그림 앞에 가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 예술도 의미가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아름다운 세계다.”
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드디어 뉴욕에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극찬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김환기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그는 갑작스레 사망합니다. 하지만 김향안의 행보는 멈추지 않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눈 있는 사람은 내 그림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던 남편의 말대로, 많은 사람이 알아볼 수 있도록 향안은 환기의 그림을 세계로 알리며 바른 곳에 세웁니다. 그렇게 환기재단과 미술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덕분에 왜곡되지 않은 화가의 정신세계는 그대로, 오늘날까지 우리가 만나볼 수 있도록 유지되고 있죠.
“미술관. 어쨌든 문을 열게 되었다. 완전히 무에서 시작한 미술관. ”나는 뭐 죽어서 묻히는 것은 아무데서 묻혀도 괜찮아!“ 그러나 ‘내 작품은 내 나라에, 서울에, 보내고 싶은’ 그 마음을 알기에 집을 짓고 이사가는 기분으로 미술관을 시작했다.”
_김향안,『월하의 마음』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믿고 존경한 마음은 두 사람이 이 세상을 뜬 후에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김환기의 그림에서 비단 가시적인 요소들만 기억하기에는 아쉽습니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긴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과 뜨거운 지성을 마음 깊이 느끼며 꿈, 사랑, 미래, 소명 같은 무형의 영감까지 한 아름 안은 새해를 보내시길, 전심을 다 해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