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다짐을 하셨나요? 그리고,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 다짐을 하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아마도 새로 산 다이어리에 그 다짐을 적는 것이었을 테죠. 작년 한 해 동안 구깃구깃해진 마음을 다시 새것처럼 펴보면서요. 이렇듯 모든 다짐은 기록에서 시작됩니다. 필자는 여러분에게 올 한 해 원하는 일은 모두 이뤄내길 바란다는 말 대신, 새로운 영감이 될 만한 글로 응원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바로, 꾸준한 반복과 기록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응시하게 만드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여러분의 삶이 예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의 힘이 돋보이는 예술가 3인을 소개합니다.
매일 살아있음을 기록하다
온 카와라
매일 당연하게 반복하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하지만 그럼으로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게 하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면 우리는 매일 일어나고,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결과론적 의미보다는 그 행위 자체에 방점을 찍는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해 온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의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On kawara)입니다. 그가 한 거의 모든 프로젝트는 반복과 기록이라고 설명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들로 쪼개고 기록했습니다. ‘일어났다, 만났다, 갔다, 그리고 살아있다.’라고 말이죠. 그중 “오늘 연작 (Today series)”은 캔버스 위에 오직 오늘 날짜만을 그리는 프로젝트입니다. 1966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작고한 2014년까지 지속했으며, 그 캔버스가 무려 2,000개가 넘습니다. 날짜 표기는 당일에 머문 국가의 표기법을 따랐으며, 캔버스 뒷면에는 현지 당일 신문을 잘라 붙였습니다. 게다가 작업이 자정까지 끝나지 않으면 무조건 폐기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특수한 현재성에 대한 작가의 집착을 엿볼 수 있습니다.
“I GOT UP”은 매일 아침 일어난 시간을 찍은 엽서 두 장을 지인들에게 부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역시 머물고 있는 도시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지요.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이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이외에도 작가는 2009년 1월부터 트위터에 “I AM STILL ALIVE #art”라는 문장을 날마다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트윗은 예약 기능을 통해 그가 죽은 이후 2018년까지도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하루 동안 자기가 다닌 여정을 지도에 표시하여 아카이빙하기도 하고 “I Went”,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I Met”.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새로운 자신과 외부 세계를 마주하며,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한 이 부지런한 행위들은 그만큼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아니었을까요.
일상의 조각을 수집하다
Sasa[44]
여러분의 작년 한 해의 단어는 무엇이었나요? 영화는요?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은요? 연말에 ‘올해의 OO’이라는 테마별 키워드를 꼽는 회고를 많이들 하셨을텐데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한 해 동안 라면 몇 봉지를 드셨나요? 출퇴근하면서 교통카드는 몇 번을 찍으셨나요? 몇 명의 사람들과 몇 건의 카카오톡을 주고받으셨나요? 은행에 가서 몇 명의 대기인을 기다리셨나요? 이런 객관적 수치들이 과연 당신의 한해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조각들을 수집하듯이 매년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무려 40여 년간 수집과 기록으로 아주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인 아카이빙을 하는 Sasa[44]입니다. 그래픽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과 협업하여 매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차 보고서>라는 작업을 가시화합니다. 작가가 평소 일상에서 소비하거나 배출하는 물건을 기록하고 보여줍니다. 이 자료들은 쌓이고 쌓일수록 더욱 단단한 예술적 힘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모든 순간마다 의미를 찾고, 이름을 붙이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보다 덜 유의미해 보이는 습관적인 행위들로 촘촘히 차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삶이 마음의 방향을 따라 올바르게 순항하고 있다면 더더욱,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다니고, 잘 말하고, 잘 만나고, 잘 살아내는 행위들의 합이 곧 균열없이 잘 메꿔진 삶을 대변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소비하고 배출한 물질들의 지표가 여러분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직접 의미를 부여하고 정의한 단어들보다 더 정확하게 말이죠.
오늘 아침 당신의 표정은
피터 펀치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당신의 하루가 어제와 같음 또는 다름을 느낄 수 있나요? 혹은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내리라 결심하곤 하시나요? 우리에게는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날 기회가 주어집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무섭도록 습관의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작심삼일이란 지극히 인간적인 결말인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능을 거슬러야만 하니까요.
새로운 결심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작업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피터 펀치(Peter Funch)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매일 아침 1시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촬영하였습니다. <42nd and Vanderbilt>라는 프로젝트입니다. 그의 카메라에는 주로 바쁜 발걸음으로 출근길을 향하는 뉴요커들이 포착되었죠. 매일 수백 명, 10년간 수만 명의 사람들을 마주쳤을 텐데요. 작가는 그간의 작업물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10년 동안 동일 인물이 꾸준히 등장하기도 하며, 1~2년 만에 혹은 9년 만에 재등장하기도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같은 표정, 같은 자세,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장 10년에 걸친 사진들을 쭉 보다 보면, 이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출근길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가겠노라 다짐해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스마트폰이나 들여다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타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이겠지요.
사실 이 프로젝트에는 일상의 경이로움보다는 스스로 기계 부품이 되어 산업화된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21세기판 ‘모던 타임즈’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어쩐지 필자에게는 공허하고 허무한 도시의 모습보다는 수많은 점 속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개인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매일 같은 점만 찍고 있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매일 내가 어느 곳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면, 바로 내 삶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가 된 것이니까요.
여러분에게는 올해 365개의 수집함이 주어졌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올해의 이야기로 각각의 상자를 채울 준비가 되셨나요? 다짐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목표로 향하는 과정들을 쉽고 단순한 사실들로 기록해 보세요. 매 순간 새롭고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꾸준함을 전제로 한 기록은 무수히 축적된 삶 속에서 자연스레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니까요.
반복은 태도이자 진정성입니다. 그리고 기록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행위입니다. 내일 다시 태어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록은 내일 다시 태어날 나에게 남겨두는 오늘 나의 유언입니다. 어제의 유언을 가슴에 새기며 작은 반복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