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균형식을 위한
재료가 되어 줄 책 3권

타인의 문화와 역사를 다정하고
살뜰하게 살피는 새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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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유난히 편식에 엄격합니다. 점심 식사 메뉴로 덜 매운 떡볶이를 선택하거나 돈가스에 케첩 소스를 뿌리며 스스로를 ‘초딩 입맛’이라고 끌어내리기도 하죠. 이렇게 엄격한 편식의 잣대도 문화로 확장되면 쉽게 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에게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의 역사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역사는 낯설게 느껴지죠. 그렇기에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존재함에도 비주류 아시아권의 문화와 이야기는 간과되며 종종 우리의 편협한 잣대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초딩 입맛’으로 순댓국을 먹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사뭇 귀여워 보이지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조금은 쓸쓸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깝고도 낯선 나라 사람들의 세계로 다가가기 위하여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소설을 소개합니다.


『말리의 일곱 개의 달』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이미지 출처: 인플루엔셜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가 죽은 자들의 대기실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곱 개의 달이 뜨고 지기 전까지 망각의 빛으로 들어가야만 다음 생을 살 수 있죠. 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말리를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계에 머물게 합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서 유령이 되어 만난 이들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진실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알듯했던 진실은 손가락 사이를 자꾸만 빠져나가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인 주인공의 정체성은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입니다. 말리의 직업은 사진작가이자 도박꾼이며 문화적 정체성은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혼혈이죠. 그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인지 말리는 건조하면서 신랄하게 스리랑카의 상황을 풍자합니다. 스리랑카와 우리나라의 역사는 놀랍도록 비슷한데요. 두 나라 모두 침략, 전쟁, 독재 그리고  부패된 정권을 겪었죠. 우리나라가 정치적 이념에 의해 남북으로 나누어졌다면, 스리랑카의 분쟁은 다른 뿌리를 가진 민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리랑카는 인구의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이고 나머지 인구는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영국은 식민 지배 시절 타밀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고, 식민 지배가 끝나자 싱할라족이 집권하며 갈등이 시작되죠. 1983년 타밀족 무장단체인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이 정부군을 급습하여 13명의 군인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군인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인파가 폭도로 돌변하여 타밀족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며 5,638명이 희생되고 내전이 시작되죠.

작가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추리라는 도구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시니컬한 유머와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로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2022년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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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루』
이미지 출처: 문학과지성사

드넓은 바다에서 작은 배 하나에 나의 목숨을 맡긴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요? 킴 투이의 『루』에서 잠시나마 그 감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루』는 자전적 소설로 10세 때 가족과 함께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났던 자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죠. 보트피플은 베트남 내전 역사의 어두운 일면입니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직후 정치적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나뉜 베트남은 미국의 본격적인 남베트남 지원을 시작으로 전쟁을 겪게되죠. 결국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숙청 대상이 된 남베트남의 주류층은 배를 타고 위험한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 책은 주인공 ‘얀 띤’의 시점에서 뼈아픈 역사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전합니다. 주인공은 프랑스와 미국의 그늘 아래 안주한 대가로 얻어낸 풍요로운 베트남의 모습과 치열한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의 모습을 함께 그리는데요. 작가는 역사책에 분명하게 기록된 전쟁뿐만 아니라 침묵 속에 감춰진 이들을 조명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이들을 대신해 베트남을 짊어진 여성들의 삶과 뉴욕 브롱스를 배회하는 혼혈아들의 삶까지 고르게 비춥니다.

전쟁과 같은 무거운 주제의 소설과 『루』가 다른 점은 바로 ‘평온함’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베트남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캐나다 사이에서 새로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죠. 새해에 새로운 지평선을 바라보는 힘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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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이미지 출처: 오월의봄

에카 쿠르니아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자카르타의 한 서점에서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최초 맨부커상 후보에 든 작가라는 손글씨 팻말과 함께 그의 작품인 『호랑이 남자』가 매대에 잔뜩 쌓여있었죠. 새로운 이야기꾼을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호랑이 남자』보다 덜 알려졌지만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는 작가가 스물일곱 살에 쓴 첫 번째 장편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데위 아유는 네덜란드계 혼혈인으로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인물입니다. 데위 아유는 전쟁의 피해자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여성이기도 하죠. 소설에는 주인공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게릴라 군인, 깡패 그리고 공산주의자와 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합니다.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식민 지배와 군부 독재로 얼룩져있죠. 네덜란드 식민 지배 시절 독립운동가였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비동맹 중립외교를 내세워 미국의 눈엣가시가 됩니다. 당시 합법 정당이던 공산당은 수카르노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습니다. 1965년 10월 1일 인도네시아 장군 6명과 장교 1명이 납치 후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자 군부 실력자 수하르토 육군참모차장이 배후로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지목합니다. 이 사건으로 1965년 대학살이 시작되게 됩니다. 정확한 집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학살로 공산당원으로 의심받아 희생당한 수는 3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죠. 대학살을 이끈 수하르토는 32년간 군부독재로 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에카 쿠르니아완이 풀어내는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읽으며 필자는 천명관의 『고래』를 떠올렸습니다. 천명관이 『고래』에서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을 자처했다면 에카 쿠르니아완은 인도네시아 그림자 연극을 관장하는 ‘달랑’ 역할을 휼륭하게 소화해 내죠. 작가는 그림자 연극을 보는 것처럼 소설에 입장한 관객의 눈 앞에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거나 천명관의 고래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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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보다 다짐의 힘이 더욱 세지는 새해입니다. 필자는 지난해와 거진 다를 바 없는 새해 소망 한편에 ‘문화를 다양하게 섭취하기’라고 적어보았습니다. 쉽게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아 가까운 타인의 문화와 역사를 무심히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비죽 고개를 내밀어 속상할 때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다짐의 시간이니까요. 부디 새해에는 미숙할지언정 성실하게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다정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봅니다. 혹여 같은 다짐을 하시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새해 읽을 책 리스트에 위 소설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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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리

모두가 빠짐 없이 오늘치 취향을 누리도록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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