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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는
취향 종말을 의미하는가

타자의 플레이리스트는 취향을
확장시키는가 한정시키는가
Edited by

“요즘 무슨 음악 들어?”라는 질문에 필자는 특정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의 이름을 댔다. 구독자 50만 명이 넘은 유명 인플루언서였다. 어느새 나의 음악 취향은 나만의 믹스테이프가 아닌 타자의 선곡 리스트로 대변되었다.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제시하는 취향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 구독을 해지하고 지인에게 ‘플레이리스트가 취향을 한정시키는 것 같지 않냐’며 물었다. 대답은 가지각색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기 위해 듣는다거나, 음악을 직접 찾아 듣기 귀찮아서 이용한다거나. 굳이 음악을 디깅하지 않아도 취향을 넓히기 쉬운 시대에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지 않는 건 옳은 선택일까?


플레이리스트의 등장과
음악 매개자

플레이리스트
이미지 출처: Unsplash

현대 음악 감상 세계에서는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 음악 매개자(mediator)의 존재가 주목받고 있다. 음악을 만드는 데 직접 관여하는 뮤지션이나 음반사, 유통사는 아니지만 음악을 직접 큐레이션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역사는 인터넷 발달 이전부터 소규모 지역 기반으로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친숙한 매개자는 TV나 라디오 등 매체에서 활동하는 DJ부터라고 볼 수 있다. DJ(Disc Jockey)는 말 그대로 ‘음반을 지키는 기수’라는 의미로, 전문성을 가진 소수가 직접 음악을 선곡하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오늘날에는 음원 플랫폼과 개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누구나 전 세계 음악을 쉽게 접하며 직접 음악을 큐레이팅하는 DJ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음원 플랫폼에서는 음반 산업에 숨은 각종 뇌물 수수와 사재기, ‘스밍, 총공’ 문화라 일컫는 일부 팬들의 차트 개입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실시간 인기 차트가 쇠퇴했고, SNS를 통해 개인의 음악 취향은 더욱 세분화되었다. 이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하는 음악 매개자의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사회학자 이상길은 온라인 문화 매개 활동에 대해,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작자와 수용자 공중 사이의 상징적 중개 작업,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번역, 변형 혹은 생산 활동이라 정의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번역가를 통해 외서를 읽고 외화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타자의 플레이리스트 또한 자연스러운 문화 상품으로 볼 수 있겠다.


편리성이 초래한
의존적 청취

essential 유튜브 채널
이미지 출처: essential 유튜브 채널

다수의 개인 큐레이터가 생산하는 플레이리스트는 원하는 키워드만 입력해도 쉽고 빠르게 음악 취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플레이리스트 역시 음원만큼이나 쉽고 빠르게 소비되는 문화 상품이 되었으며, 음악 시장에서 큐레이터의 권력이 막강해졌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주목받는 소수의 플레이리스트가 대중의 음악 취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의 힘을 알아본 기업들은 일찍이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개설하거나 광고 상품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예로, 음원 플랫폼 ‘벅스’는 2019년부터 ‘에센셜(essential)’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운영하며 다양한 업체의 오프라인 공간 및 스마트 기기와 협업하며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크고 작은 브랜드의 광고 매체가 되어주기도 한다. 주목받는 문화 상품에 소비자가 몰리고 기업이 따라붙어 자본이 뒤엉킨 플레이리스트의 상품성이 극대화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음원차트에서 직접 노래를 골라 듣는 비중이 줄어든 대신, 취향이나 기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비중은 느는 추세라고 하니, 음악 감상자는 점차 적극성을 잃은 채 수동적인 음악 취향을 갖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 아닐까. 플레이리스트를 애용하는 오늘날의 음악 감상자들은 재생과 정지, 그리고 다시 재생할 뿐이다. 그리고 개별적인 음악을 고르는 과정이 생략된 의존적 청취 활동은 음악 상품에 쉽게 노출되고 취향이 한정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머신 리스닝과 큐레이션을
통한 취향의 확장

플레이리스트
이미지 출처: Unsplash

물론 플레이리스트를 통한 방대한 양의 음악 데이터는 음악을 더욱 넓게 경험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음악 감상자가 타자의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미뤄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평소 듣지 않았던 장르의 음악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감미로운 발라드를 즐겨 듣던 사람이 낯선 재즈 음악을 들어보고 싶을 때, 검색창에 입력할 수 있는 아티스트나 앨범이 얼마나 될까. 이때 감상자는 ‘재즈 플레이리스트’라는 키워드로 재즈에 일가견이 있는 큐레이터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접하며 새로운 음악 세계를 받아들이고 취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미지의 음악 세계에 손쉽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시대를 만든 건 타자의 플레이리스트 덕분이다.

플레이리스트는 타자가 만들어 놓은 특정 분위기를 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파리의 밤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면 서울 한복판의 빌딩에서 야근을 하다가도 이국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파리와 어울리는 음악을 일일이 선곡해 듣는 번거로운 일을 대신 해주는 큐레이터를 통해 특정 장소, 날씨,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2014년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는 머신 러닝을 이용해 음악을 분석하는 기술을 가진 회사 ‘에코네스트’를 인수하며 머신 리스닝 기술 도입을 가속화했다. 머신 리스닝은 수많은 정보와 음악을 결합한 기술로, AI를 통한 알고리즘 추천에 적용된다. 덕분에 오늘날 별도의 노력 없이도 취향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쉼 없이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타자에 의한 플레이리스트와 더불어 기술 발전을 통한 AI 큐레이션 또한 방대한 양의 음악 데이터를 제공한다. 시스템이 제공한 음악 데이터 역시 개인의 취향이 될 수 있으며, 음악 취향을 마음껏 넓힐 수 있는 음악 감상 시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플레이리스트라는
공간에서의 청취 태도

주크박스
이미지 출처: Unsplash

1930년대 미국의 다이닝이나 바에 들어서기 시작한 주크박스는 동전을 넣어 내장된 음악 중 하나를 재생하는 기계 장치다.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하는 플레이리스트인 셈이다. 누군가 주크박스에서 음악을 재생시키면 술집에 머무르던 손님들이 다 함께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게 된다. 오늘날의 플레이리스트는 주크박스에 비해 사적인 취향이 담긴 음악 다락방과 같다. 큐레이터의 의도로 제작된 썸네일, 소개 문구, 선곡 리스트가 특정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음악 감상자는 그들이 구축한 가상 세계에 초대받아 입장하게 되는데, 이 세계에서 음악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는 감상자에게 달렸다.

『애착의 사회학: 음악 애호가와 마약 중독자』에서 앙투안 에니옹은 음악을 마약에 비유하며 ‘능동적 수동성’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넋이 나가는 신체 반응(수동적 경험)을 위해 준비하고 행동(능동성)하는 과정이 마치 음악을 찾아 듣는 태도와 같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 음악 시장에서 권력자로 부상하는 음악 매개자, 즉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소비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며, 이를 통해 취향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그들의 청취 태도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댓글을 종종 확인한다. 큐레이터의 선곡 의도나 원곡을 만든 창작자에 대한 의견, 그리고 같은 음악에 얽힌 서로 다른 추억, 취향을 나누는 일종의 살롱 문화가 펼쳐진다. 플레이리스트 댓글창에서 형성된 음악적 담론은 결국 창작자도, 음반사도, 큐레이터도 아닌 감상자들이 만들어 가는 모습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 시대에 예술적 결과물은 원본으로부터 자립성을 지니며 누구나에 의해 자유롭게 가공되고 결합될 수 있다. 전 세계 음원을 합의되지 않은 사적인 기준으로 묶은 플레이리스트만큼이나 음악 감상자는 타자의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유희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플레이리스트가 절대적으로 음악 취향을 좌우한다기보단, 이를 어떻게 즐기고 소비할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상조

상조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걸 조합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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