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함께 마음도 잔뜩 위축되기 쉬운 계절에는 포크 음악이 생각납니다. 소박한 편성으로도 진실한 자기 고백과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죠. 긴 호흡으로 하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에는 앨범을 통째로 듣는 경험이 제격인데요. 그래서 이번 아티클에서는 포크 뮤지션들과 그들의 앨범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다
시와 [다녀왔습니다]
먼저, 시와의 [다녀왔습니다]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홍대의 바 이름에서 활동명을 가져온 시와는 포크 싱어송라이터로서 15년 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해 왔는데요. 그는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음악을 하는 가수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나무의 말’과 같은 노래가 보여주듯, 간결한 노랫말과 포근한 음색이 시와만의 매력이에요.
[다녀왔습니다]는 ‘나다움’에 관한 질문을 중심으로 시와가 떠났던 하나의 긴 여정을 그리고 있어요. 문득 남을 의식하느라 자기를 잊은 것은 아닌지 묻게 된 시와는 방황의 과정에서 배운 것들로 9개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특별하게도 실물 앨범이 발매된 후, 두 달에 한 번씩 온라인 음원이 차례대로 공개되어 청중들은 음악을 마치 연작 소설처럼 감상할 수 있었죠.
시와의 ‘나를 찾는 여행’은 이전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기대 섞인 외침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리의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두리번거리고(’두리번거리다’), 훌륭한 책과 꿈속을 들여다보아도(’나를 찾으려 했던 건’)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죠. 먼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여전히 모르겠어요’) 호소는 그가 맞이한 예상 밖의 혼란을 설명해 줍니다. 오랜 방황은 완전히 다른 결론으로 그를 이끌어가는데요.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한 것처럼, 시와는 정답처럼 ‘진짜 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상태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제야 그는 여행을 마치고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죠. 만약 자기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면, 시와가 먼저 떠난 여행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다정한 관찰자의 고백
정밀아 [리버사이드]
다음으로 소개할 앨범은 지난 11월 발매된 정밀아의 정규 4집입니다. 정밀아는 ‘꽃’, ‘낭만의 밤’, ‘서울역에서 출발’과 같은 노래들에서 드러나듯이 차분하고도 명랑한 면모가 특히 돋보이는 뮤지션인데요. 3집 [청파소나타]로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그가 정규 4집 [리버사이드]로 돌아왔어요. 1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정밀아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타인과 세계의 안녕을 꿈꿉니다.
이 앨범은 지금 정밀아가 살고 있는 공간, ‘한강’으로부터 출발해요. 3집 [청파소나타]가 청파동을 배경으로 했다면 [리버사이드]는 한강을 매일 같이 보고 걸으며 마주한 풍경을 담았죠. 그는 일상에서 경험한 소소한 순간들을 전달하는 동시에, 보다 거대한 슬픔을 헤아려보는 경험 속으로 청자를 초대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양한 비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앨범을 제작한 것은, 마포대교 한가운데서 보았던 국화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아픔 많은 세상이지만, 정밀아는 증오나 체념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현실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직접 목격한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 노래하죠. 앨범과 동명인 타이틀곡 ‘리버사이드’는 한강에서 바라본 쓸쓸한 세상에 대한 증언이고, ‘좋은아침 배드민턴 클럽’은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친구들에게 묻는 다정한 안부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특히 공간감을 강조한 그는 특정 현장의 소리를 들려주거나 아무 노래를 하지 않기도 하는데요. 가령, ‘운다’에서 그는 전쟁과 시위, 추모 집회에서의 소리를 들려주며 함께 울고, ‘한강 엘레지’에서는 성당과 마포대교에서 녹음한 소리를 가사 없는 연주곡에 삽입해 그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현했어요. 이처럼 정밀아의 음악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껴안고자 합니다.
다시 ‘우리’를 꿈꾸는 마음
강아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마지막으로 강아솔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들어보시기를 추천해요. 정규 앨범으로 5년 만에 찾아온 강아솔은 ‘그대에게’, ‘나의 대답’ 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로, 다양한 드라마 OST 작업으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위로를 건네는 그의 음악은 주로 고독과 슬픔, 욕망과 사랑을 다뤄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는 제목처럼 강아솔이 오랜 기간 혼자만의 시공간 속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온 여정을 그린 앨범이에요. 7곡의 노래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불완전한 사랑이 준 아픔으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킨 화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죠.
앨범 곳곳에는 강아솔이 자기 내면을 치열하게 성찰한 흔적이 남겨져 있습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려다 자기를 잃어버린 경험을,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와 ‘헤어지지 말아요’는 사랑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안과 슬픔을 선연히 그리죠. 하지만 그는 허무로 향하지 않고 사랑만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립니다. ‘사랑이 믿어지던 시간들을 기억’하고(’사랑을 하고 있어’),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게’ 한다는 것을(’사랑은’) 노래하는 강아솔의 목소리는 점차 단단해집니다. 노래의 여운을 더 오래 느끼고 싶다면, 6명의 작가(최진영, 신해욱, 한정원, 김 현, 안희연, 안미옥)가 쓴 에세이와 양경언 평론가의 해설로 구성된 동명의 책을 읽기를 권해요.
천천히 곱씹기 좋은 노랫말과 선율을 가진 음악의 가치는 여전합니다. 오늘 소개한 세 명의 뮤지션들은 각자의 정직한 고백을 들려주며 우리는 과연 어떤 여정 속에 있는지 다정하게 되묻습니다. 그리고 위로합니다. 누구나 사랑에 실망할 수 있고, 나답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울 수 있다고요. 가벼운 웃음으로 도망치는 날도 필요하지만, 한 번쯤은 이들의 노래를 빌려 묻어두었던 걱정과 고민을 꺼내어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