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임영웅
팬덤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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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임영웅에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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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은 행사가 있다. 바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효도템’으로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 도전하는 자식들의 성공담, 실패담이 줄지어 올라오며 “앵콜콘 더 안 하냐”는 울부짖음으로 마무리 됐다. 실제로 가수 임영웅의 전국 투어 콘서트는 전지역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2023 임영웅 전국투어 콘서트 ‘아임 히어로(IM HERO)’ 고양 티켓은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오픈 최고 트래픽(약 160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TV조선 ‘미스터 트롯’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떠오른 임영웅의 인기는 어느새 신드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임영웅이 아이돌 그룹과 10·20대 팬이 주류를 차지하며, 멀어졌던 ‘국민 가수’의 존재감을 공고히 하며 가요계를 다변화시켰다 평가하기도 한다. 임영웅으로 대변되는 트로트 가수들의 성공과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는 ‘중장년 팬덤’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국민 가수’를 만든 중장년 팬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팬덤이 된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상암을 달군
‘영웅시대’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2023년 4월 8일, 임영웅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프로축구 K리그 시축 소식이 알려지며 하루 만에 3만 5,000여 장의 표가 팔렸다. ‘임영웅의 시축’은 기존 K리그 역대 유료 관중 기록(3만 2,057명)을 순식간에 넘어섰으며, 임영웅의 하프타임 중간 공연 소식이 추가로 알려지며 경기 당일 공식 관중은 총 4만 5,007명을 기록했다. 시축만으로도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 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임영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임영웅의 팬덤 ‘영웅시대’다.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의미의 ‘건행’이라는 임영웅의 인사말을 유행어로 만든 ‘영웅시대’는 임영웅이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폭발적인 화력과 팬덤 응집력으로만 주목 받은 것은 아니다. 영웅시대의 행보는 임영웅에게 이른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팬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K리그 시축 당시에도 영웅시대는 본인들의 공식 색상인 ‘하늘색 옷’이 원정팀의 색과 겹쳐, 하늘색 옷 입는 것을 자제하고 골대 뒤편 자리 예매를 포기하며 축구 팬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했다. 임영웅의 하프타임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이탈하거나, 관람석에서 관전하는 임영웅 대신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경기 종료 후에는 객석을 자발적으로 정리하기까지 해 스포츠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임영웅은 시축 후 자신의 팬카페에 “저는 영웅시대 덕분에 빛이 납니다. 존경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이라고 적으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5060 팬덤의 특징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임영웅을 ‘새아빠’로 지칭하는 것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엄마가 아빠처럼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는 의미인데, 이 지칭만 보더라도 임영웅 팬덤의 대다수가 중장년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중장년 여성은 이른바 ‘오팔세대’에 속한다.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를 ‘오팔세대’라 부르는데,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5060 액티브 시니어가 이에 해당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오팔 세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탄탄한 경제력과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은퇴 후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세대. 2010년 즈음 노동 시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이들은 2020년을 기점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에서 고령층(65세 이상)으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막이 오른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은 시니어 팬덤이라는 전에 없던 문화를 만들어낸 기폭제가 됐다.

이른바 ‘임영웅 효과’로 설명되는 구매력은 오팔세대 팬덤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준다. 청호나이스는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한 3년 동안 꾸준히 실적을 개선했으며, 본죽의 광고 영상은 2000만 뷰를 넘겼다. 1020 아이돌 팬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앨범 판매량과 스트리밍에서도 위협적이다. 임영웅의 정규 1집은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는데, 국내외 판매량을 총합하는 아이돌 그룹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국내에서만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임영웅 팬덤의 구매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틱톡에서 K-POP 아이돌 팬들이 “우리는 살아남았다”, “왕이 귀환한다”며 진심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임영웅 팬덤과의 ‘스트리밍 전쟁’을 염려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5060 여성들이
팬덤이 된 이유

이미지 출처: 물고기뮤직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임영웅’을 사랑하게 됐을까? 심리학자 김은주 박사는 중장년 여성들의 복합적인 심리가 팬덤에 반영되었다고 평가했다. ‘오팔세대’ 여성들은 이른바 희생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던 당시 경제 활동을 담당하는 남성과 가사와 육아에 집중하는 여성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 아무리 뛰어난 여성이라도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는 등 살림을 담당해야 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사회적 권리, 힘, 소속감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며 이른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온 뒤 남은 주름진 얼굴과 아무도 몰라주는 헌신. 그 우울과 불안 그리고 헛헛함을 마주했을 때 등장한 것이 장르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음악을 하는 스타라고 김은주 박사는 분석한다. 중요한 건 ‘트로트’가 아니라 ‘스타’라는 것이다. 시니어 팬덤이란 사회적 통념에 맞춰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욕구를 스타를 통해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냥 ‘엄마’ 말고
‘영웅시대’

이미지 출처: 시사IN, 이명익

중장년 팬덤이 주를 이루는 트로트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팬들의 모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지부’를 만들어 새로운 팬클럽 회원을 환영해 주기도 하고, 굿즈를 공유하거나 자체 모금을 통해 기부를 진행하기도 한다. ‘영웅시대’의 ‘대구별빛스터디방’ 회원들은 D.F장학회에 후원금 700만 원을 기탁했으며, 영웅시대 밴드(나눔 모임)는 새해를 맞아 59번째 쪽방촌 도시락 봉사를 진행했다. 팬클럽 활동은 물론 팬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발전과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팬들은 ‘엄마’로만 규정되던 자신의 역할이 ‘나’에 집중되는 것을 보며 자아효능감까지 얻게 된다. 자신을 ‘영웅시대’라고 밝힌 전업주부 문해진(42)씨는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서 세 아이 육아 후 찾아온 공허함을 임영웅을 통해 채웠다고 했다. 문씨는 “영웅님을 향한 내 마음을 적은 글이 ‘기부 서포트’ 현수막 문구로 사용된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나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팬클럽 ‘어게인’의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우모(55)씨 또한 송가인을 알게 된 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광주에서 서울 정모를 다녀온 후, 우씨는 가족들에게 내 이름으로 살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공연을 많이 보고 싶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후 송가인의 공연을 따라 전국을 돌고 팬덤과 함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삶의 활력까지 찾아, 우씨의 막내딸은 송가인에게 “엄마를 다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다이렉트 메시지도 보냈다.


김은주 박사는 시니어 팬덤이 자체 미디어 교육을 통해 조직적으로 스타를 지원하고, 아예 팬덤 이름으로 기부와 봉사를 하는 것을 통해 생애 첫 소속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그동안의 희생에 대한 보상까지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3단계(애정과 소속의 욕구), 4단계(존중 욕구)가 함께 충족되며, 시니어 팬덤 활동이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5단계(자아실현)로 이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잇값을 못한다며 중장년 팬덤을 여전히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 그런 시선 속에서도 팬들은 묵묵히 또 다른 서포터즈 활동을 준비한다. 가수를 통해, 팬덤에 속해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위로를 받은 팬들이 가수는 물론 서로를 지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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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좋아하는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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