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그림, 식물 세밀화. ‘보태니컬 아트(Botanical Art)’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그림은 식물학과 맥을 같이합니다. 끈기 있는 관찰과 조사에서부터 시작해 온전히 식물만을 묘사함으로써, 식물도감과 식물학 논문 등에 활용되기도 하지요. 그리는 이의 주관적인 판단은 덜어내고, 식물이 보여주는 현재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누군가의 일상에는 초록빛 온기로 가닿기도 합니다. 얇은 선과 미세한 점, 서로 다른 농도로 펼쳐진 수채화 물감이 모여 완성된 이 섬세한 그림과 더불어, 자연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읽어내는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자연을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
그러나 식물 세밀화는 언제나 식물을 기록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구체적인 특징에 집중해서 전달해야 할 정보를 보다 명확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식물 세밀화 한 장에 어떤 식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을 수도 있다. 예컨대 어느 식물의 수명 주기 전체를 세밀화 한 장으로 모두 나타낼 수 있다.
_이시크 귀너, 『자연을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
‘식물 세밀화’라는 세계를 안내하는 지침서가 있다면 이 책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을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는 A4 용지보다 조금 더 큰 크기로 이뤄져, 식물 세밀화를 샅샅이 설명합니다. 식물 세밀화가 소통의 한 방식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 식물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책상 앞에서 작업을 할 때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지, 연필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까지. 그 외에도 식물 세밀화 작업 과정 속 세세한 요소들을 짚으며 한 장의 식물 세밀화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책의 말미에서는 이 책을 덮은 후에도 식물 세밀화와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가이드도 제시합니다. 식물 세밀화가 식물을 묘사한 기록이라면, 이 책은 식물 세밀화를 묘사한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연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인류에게 필수적인 존재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류로 인해 수많은 식물들이 멸종 위기, 많은 숲들이 사라질 위험에 직면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많은 환경 문제들로 고통 받고 있다. 식물 세밀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소통하는 것이다. 식물 세밀화는 단지 평면에 놓인 시각적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수단이다.
_이시크 귀너, 『자연을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
식물 세밀화가는 식물을 직접 감각하며 이해하고, 펜과 붓으로 그 식물을 보존합니다. 이 책의 저자 이시크 귀너(Işık Güner)는 터키의 식물 세밀화가로, 식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부터 식물과 자연을 향한 저자의 애정은 더 깊어졌고, 이 책에 담긴 식물 세밀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 보태니컬 아트 협회(SBA, The Society of Botanical Artists)의 최초 한국인 정회원인 송은영 작가의 감수와 함께, 저자가 설명하는 식물 세밀화는 그 힘을 잃지 않은 채 한국인 독자를 마주합니다.
『자연을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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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책』
제 작업은 어떤 식물을 그릴지 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이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이들은 어쩌다 숲에서 도시로 오게 되었는지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식물에 관해 좀 더 알게 된 다음에, 직접 식물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서 형태를 관찰하길 반복해, 그림을 완성합니다.
_이소영, 『식물의 책』
민들레, 주목, 은행나무, 무궁화 등 『식물의 책』에 등장하는 총 42종의 식물은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설령 처음 보는 이름을 지녔다 해도, 식물 세밀화로 기록된 그 모습을 본다면 바로 머릿속에는 느낌표가 떠오를 텐데요. 바로 이 책 속 식물들이 모두 도시에서 자주 보인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풍경은 익숙해도, 그 풍경에 자그마한 식물의 존재를 그려 넣는 일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이미 도시의 틈새마다 존재하며 일상 곳곳을 함께하고 있었던 초록빛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오히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도 늘 검토하고 되돌아봐야 하고요.
_이소영, 『식물의 책』
마흔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 매 페이지는 긴 시간 누군가의 손길에 닿은 듯 색이 바래 있습니다. 때로는 손때를 탄 듯한 흔적마저 새겨져 있는데요. 이는 『식물의 책』만이 지닌 디테일한 디자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과 더불어 펼쳐지는 독서 경험에 생동감을 주는 장치이기도 하지요. 대학원에서 원예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식물 세밀화가로 활동하며 책, 칼럼, 라디오 등을 통해 식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의 식물 관찰 일기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말이에요.
『나무처럼 살아간다』
복잡다단하고 때론 혼란스럽기도 한 인간사에서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무언가 자꾸 신경을 건드린다거나, 부러진 가지 몇 개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그저 당신의 잎사귀에 와닿는 기분 좋은 햇살의 감촉을 다시 기억하고 싶다면, 삶에 남긴 타박상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영감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_리즈 마빈, 『나무처럼 살아간다』
모두를 아우르는 격언이자 구루(Guru)와 같은 존재, 나무.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지구 곳곳에 뿌리를 내린 나무 60종에서 삶의 지혜를 읽어내는 책입니다. 단풍나무, 버드나무 등 익숙한 이름부터 연필향나무, 쿡 파인트리 등 다소 생소한 이름까지. 그 서로 다른 이름처럼, 각각의 나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맥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예순 그루의 서로 다른 삶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책 너머의 독자는 일상 속 고뇌에 답이 되어 줄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이 책은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 이야기다.
_리즈 마빈, 『나무처럼 살아간다』
약 130페이지에 걸쳐 정갈하게 펼쳐진 그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러스트레이터 애니 데이비드슨(Annie Davidson)의 손끝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의 갈래는 식물 세밀화보다 식물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에 실린 그림들은 나무 한 종 한 종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서로 다른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선명히 전달됩니다.
초록 식물만이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우리의 매일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식물이 있다 해도,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삶 속에서는 그 초록빛 생명에 가닿기까지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질까요. 그 찰나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식물 세밀화는 섬세하고도 든든한 위로를 선사합니다. 사진보다 더 정밀하면서도 그림만의 온기를 지닌 이 기록은 변수로 가득한 매일에 자연의 생명력을 선사하는 귀중한 통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