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웃음을
선물하는 마르코로호

노동에서 소외됐던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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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아이템이 있으신가요? 필자에게는 매 겨울 찾게 되는 물건이 있어요. 외할머니가 직접 떠주신 목도리입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할머니가 떠준’, ‘할머니가 해준’ 같은 수식은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도 버텨 나갈 힘을 줍니다. 그 안에 정성과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이 문장을 선물하는 소품 브랜드가 있어요. 2015년에 문을 연 ‘마르코로호’입니다. 마르코로호는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매듭 악세사리와 봉제 인형 등을 판매해요. 물건을 구입하면 할머니의 손글씨가 담긴 ‘지은이 증서’도 함께 오죠.

‘아가~ 너의 일상도 항상 행복하렴’. 투박한 글씨로 적힌 한 문장에선 올 겨울 할머니가 떠주신 목도리와 같은 냄새가 나요. 마르코로호의 수익은, 할머니의 성과금으로, 그리고 노인을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됩니다. 신촌에 있는 마르코로호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신봉국 대표는 저녁 7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새해의 리뉴얼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를 ANTIEGG 기획 인터뷰 시리즈, 두 번째 주인공으로 만났습니다.

인터뷰이 신봉국 마르코로호 대표
인터뷰어 김은빈
사진 형운


발품 팔아 배우고,
가르치고, 모으다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선생’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그것도 사회적 기업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어린 시절, 누군가 제게 꿈을 물으면 “기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답했어요. 어린 마음에 막연히 ‘이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만, 일반인이 사회를 위하는 방법은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나누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내 ‘벌이’와 ‘사회적 환원’이 꼭 구분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군대에서 알았어요. 1년 정도 초등학교 교사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갔어요. 그 곳에서 읽은 수십 권의 책이 제게 영감을 줬죠. 특히, ‘탐스 슈즈’ 같은 소셜 벤처에 대한 책에 많은 관심이 갔죠. 내가 꼭 뭔가를 이뤄야지만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내 안에 흑백 논리처럼 되어 있던 꿈이 회색 지대처럼 합쳐지는 느낌이었어요.

‘할머니’라는 키워드는 어떻게 떠올리셨어요?

역시 군대에서 시작됐어요. 생활관에 한 기사가 걸렸는데, 내용이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이었죠. 그 기사를 보고 보초소에서 야간 근무를 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는 되게 잘 사는 나라인데, 이건 너무 불명예스러운 일 아닌가?’ 만약 내가 소셜 벤처를 시작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전역을 하고 2015년, 초등학교 교사직을 내려놓았어요. 퇴직금과 군인 월급을 합쳐 약 1,000만원이란 자금으로 무작정 시작했어요. 그때 한국 나이로 스물 일곱이었어요. 고향 상주 집의 고추 말리는 창고에서 동생과 함께 일을 시작했어요. 패기로웠죠.

신봉국 마르코로호 대표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이 사업화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으셨겠어요. ‘할머니’와 ‘수공예품’이란 조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처음엔 제가 초등학교 교사였다 보니, 구연동화 같은 스토리텔링 사업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형태가 없는 사업은 수익화에 어려움이 많겠더라고요.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고민했어요. 그러다 ‘손재주’라는 키워드가 생각났죠. 할머니가 ‘손수 만든’ 물건들은 늘 애틋하잖아요.

저보다 손재주가 좋았던 동생이 전국 공방을 돌아다니며 매듭 팔찌 만드는 법을 공부해왔어요. 할머니들은 상주 시청에 전화를 걸어 소개받았어요. 우리가 할머니를 위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할머니들을 모을 수 있냐고 물었죠. 그렇게 시청에서 소개해준 노인정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설득했어요. 첫 스타트는 8명의 할머니와 함께 했죠.

‘마르코로호’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도전 정신’을 뜻합니다. 정말 ‘도전 정신’ 하나로 시작된 일인데 꽤 아름다운 스타트를 끊으셨어요.

마르코로호의 도전은 저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할머니들이 새로운 일을 배우고 사회에 새롭게 발을 들이는 도전이기도 해요. 할머니들과 2~3개월 동안 제품 공예를 공부하고, 교육하고, 와디즈 펀딩을 통해 첫 판매를 개시했어요. 예상 밖으로 첫 시작부터 성공적이었어요. 1,100만원을 모금하며 초기부터 주목받았죠.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악세사리라는 애틋함, 그리고 제품을 사기만 해도 선행이 되는 구조가 통했던 것 같아요.

이후로 2016년부터 스브스 뉴스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마르코로호를 소개해주셨어요. 연예인이 착용하며 팬들이 따라 구매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그때부터 슬슬 대중에게 마르코로호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노인 빈곤 문제에서
노인 소외 문제로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할머니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느끼시던가요?

할머니들을 처음 뵈었을 때는 혼나기도 많이 혼났어요. 글을 모르는 분들도 계셨는데, 저희가 교육을 종이에 프린트해서 시작했거든요. 저희 방식이 틀렸던 거죠. 지금은 교육 과정에서 한 분 씩 모두 뵙고, 배우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해소될 때까지 직접 찾아뵈며 교육을 해요.

그렇게 운영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 했던 현상이 눈에 들어왔어요.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작한 사업이니, 할머니들이 돈을 벌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번 돈을 본인들이 안 쓰시고 자꾸 저희한테 쓰시는 거예요. 직원들 간식을 늘 사오신다든지.

또, 어떤 할머니들은 쉬는 날에도 자꾸 출근을 하시는 거예요. 아, 할머니들이 단순히 돈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그러던 와중,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 멀리 떨어지시더라고요.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되려 물어오셨어요. “내 몸에서 냄새나?”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말이에요. 혹여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 호르몬으로 인해 자연스레 생기는 체취죠. 할머니 스스로 나이듦에 움츠려 들어서 생기는 일이었어요. 물론, 실제로 사회적 시선이 늘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 일들이 겹친 뒤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진짜 문제는 노인 빈곤이 아니라 노인 소외란 거예요. 할머니들은 돈을 벌려고 마르코로호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일하는 거였죠.

진짜 문제가 노인 소외라는 걸 깨달은 뒤, 마르코로호에도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아요.

맞아요. 2020년, 회사의 미션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서 노인 소외 문제 해결로 바뀌었어요. 할머니들이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제품군도 매듭 악세사리에서 봉제 인형, 뜨개 소품 등으로 확장했어요. 할머니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콘텐츠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희의 가장 큰 목표는 최대한 할머니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거였죠.

제 순수한 마음은 ‘할머니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였어요. 세월이 흐르다 보면 손이 더뎌져서 더 이상 제품을 만들 수 없게 되는 할머니도 생기는데요, 그런 할머니들께는 제품의 소소한 디자인을 맡기기도 해요. 제품이나 카드에 들어가는 문구를 써달라고 부탁드리죠.


할머니가 직접 쓴 보증서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그러고 보니, 마르코로호의 제품을 주문하면 늘 할머니의 손글씨가 담긴 카드가 함께 오더군요.

‘지은이 증서’라고 해요. 제품을 함께 만드는 할머니들을 저희는 ‘지은이’라고 부르거든요. 작은 카드에, 할머니가 직접 그린 그림과 문장을 프린트한 일종의 제품 증서죠. 할머니가 써주는 문장은 맞춤법도 틀리고, 서툴어요. 그럼에도 ‘진심이 담겼다’는 힘 하나만은 엄청나요.

‘지금 제일 빛나는 씁박꽃처름 너희도 지금 제일 조은 청춘이아’, ‘아가~ 너의 일상도 항상 행복하렴’, ‘조아허늘거하며살어라’… 이 증서만으로도 힘을 얻는다는 고객 분들이 많아요. 지은이 증서는 재구매율이 18%에 달하는 비결이기도 하죠.

할머니들이 직접 제품 개발에 관여하기도 하시나요?

2020년부터 저희 제품 이름은 모두 한글이 됐어요. 전부 할머니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 제품으로 ‘몽땡이 팔찌’가 있는데요. 원래는 철학자의 이름을 딴 ‘몽테뉴 팔찌’였어요. 이게 발음이 어려우니까 할머니들이 ‘몽땡이 몽땡이’ 하시던 걸 아예 제품 이름으로 바꿨죠.

그 외에도 ‘과일 반지’, ‘물고기 팔찌’, ‘빛결 반지’ 등 할머니들이 제품에 지어주시는 별명이 곧 제품 이름이 돼요.


소셜 벤처 기업,
경쟁 대신 공생

마르코로호
이미지 출처: 마르코로호

이야기를 들어 보니, 소셜 벤처 기업은 ‘미션이 곧 수익’이 되는 구조인 것 같네요.

그 말이 맞아요. 단시간의 매출을 좇는 소셜 벤처 기업은, 분명 탈이 나 되어 있어요. 힘들어도 더 길게, 더 오래 미션을 간직해야 그게 성과로도 결실을 맺죠. 사회적 기업의 책임은 돈이 아니라 미션에 있어요.

마냥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에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측면이죠. 소셜 벤처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가 전부나 마찬가지예요. 한때, 한 톱스타가 저희 제품을 사용해 한꺼번에 몇백만원 단위의 주문이 들어온 적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할머니들의 일손이 한계가 있잖아요. 대표로서 갈림길에 섰죠. 직원들을 시켜서라도 제품을 만들어서 주문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가능한 양만 소화하고 나머지 주문은 스톱해야 하는가.

제 선택은 한 순간의 이익을 포기하고 주문을 셧다운하는 거였어요. 돈 벌겠다고 거짓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순간, 마르코로호는 더 이상 마르코로호가 아니게 되는 거니까요.

마르코로호의 브랜드 확장도 눈에 띄어요. 본사 ‘알브이핀’의 이름 아래, ‘크래프트링크’와 ‘FROB’ 역시 운영하고 계시죠.

우선, 크래프트링크는 남미 여성들이 만든 매듭 팔찌를 판매하는 브랜드예요. 2020년 인수했죠. 저희가 매듭 악세사리를 이미 다루고 있다는 점과, 여성의 자립을 돕는다는 점에서 연결점이 있었어요. 지금은 남미 원주민들과의 협업에서 나아가, 국내 양육 비혼모들과도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FROB’은 2019년 시작한 소셜 벤처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이 사업은 사실 작정하고 만든 건 아니에요. 마르코로호를 시작한 2015년만 해도 상주에서 D2C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드물었고, 저희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업자 분들이 많았어요. 그게 지금은 사업화된 거죠.

FROB은 로컬 기업 혹은 사회적 기업의 의뢰만 받아요. 뜻은 너무 좋은데, 브랜딩에는 서투른 대표님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저희는 그 분들의 뜻이 더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브랜딩과 마케팅을 돕는 거죠. ‘돕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에, 고객사의 재무 상황에 따라 금액도 천차만별로 달라져요.

오랜 시간 할머니들과 함께 하시면서 많은 추억이 쌓였을 것 같아요.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들을 만나 봬러 가기 전에, 오늘은 인스타그램 하는 법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객 분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많이 남겨주시니까, 직접 보시라고요.

그런데 얘기를 꺼내니까, 할머니들이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이미 인스타그램 보고 있어!” 알고 보니, 할머니가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주 분들이 벌써 다 알려드렸던 거죠. 그래서 마르코로호 할머니들은 다 인스타그램을 하세요. 그걸 보고 알았어요. 일할 기회와 공간만 있다면, 할머니들도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걸요.

다른 하나는, 안타까운 일이에요. 마르코로호도 이제 10년차 브랜드예요. 세월이 많이 쌓였죠. 얼마 전, 한 할머니께서 위독하셨던 적이 있어요. 중환자실을 오다가다 하셨죠. 지금은 다행히 회복하셨지만,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저 역시 한 번도 할머니들과의 이별을 생각해 본 적 없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슬슬 그 이후의 시간도 염두에 둬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할머니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한, 독거노인 우유배달 사업에 기존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투자하고 있어요.


마르코로호의 고객층은 90% 이상이 만 19세~23세의 여성이라고 합니다. 의외였어요.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취지는, 오히려 중년층 여성에게 통할 거라고 짐작했거든요. 신 대표 역시 이 이유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마, 할머니와 손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의 유대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신봉국 대표는 “2025년이 되면 한국이 초고령 사회가 된다. 전체 인구 중 20%가 65세 이상이 된다”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앞으로의 노인 문제는 훨씬 넓어지고, 깊어질 거라고요.

마르코로호는 다가오는 초고령 사회에, 더 많은 할머니들이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가 되고자 합니다. 노인 문제는 더 이상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앞서 말했듯, ‘마르코로호’의 뜻은 ‘도전 정신’이에요. 다만, 마르코로호는 이제 단순한 도전 정신이 아닌, ‘할머니의 행복한 일상을 위해 도전한다’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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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빈

글 쓰고 돈 쓰고 놀러다니는 오타쿠.
콘텐츠의 본질은 휴머니티라고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꿈은 예술의 진입장벽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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