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컴퓨팅은
세상을 바꿀까

애플 비전프로 출시로 그려보는
모바일 이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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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일 미국에서 애플 비전프로(Vision Pro)의 사전판매가 시작됐다. 3499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상 출하량의 40%에 달하는 20만대가 사전판매로 팔렸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테크 칼럼니스트 조안나 스턴(Joanna Stern)은 비전프로 24시간 체험기를 게재했고, 유명 유튜버 케이시 네이스탯(Casey Neistat)은 비전프로를 착용하고 지하철을 타거나 뉴욕 곳곳을 돌아다니는 영상을 공유했다. 반응은 극과 극이다. 미래형 인터페이스가 기대된다는 호평과 버겁게만 느껴지는 기계가 일상을 망칠 것이라는 혹평이 동시에 나온다. 가격이 비싸다는 평가에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의견. 또 아직 비전프로 상에서 소비할 콘텐츠가 많지 않다거나 용량 마저 넉넉치 않은 외장형 배터리를 소지해야 하는 조건 등은 반품 사례를 낳기도 한다. 결국 얼리어답터들만의 반짝 이슈로 그치지 않겠냐는 비관적 전망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동영상 출처: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그럼에도 이미 AR, VR 등이 부상했다 주춤한 상황에서 애플이 차별화를 강조하며 ‘확장현실’ 시장에 재차 불을 지핀 현상은 주목할만 하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소개하며 AR, VR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공간 컴퓨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한풀 꺾인 여론에도 메타, 애플 등 세계를 선두하는 테크 기업들은 저마다의 미래상을 향해 확장현실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이후 차세대 디바이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시도가 우리의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본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기술
AR, VR, MR, XR의 개념

애플이 던진 ‘공간 컴퓨팅’ 화두를 이해하기 전에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혼합현실(MR·Mixed Reality)을 짚을 필요가 있다. 모두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결합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하지만 사용 목적과 경험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을 조합하고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AR은 현실에 가상 객체를 추가하는 기술이다. 실재에 가상 정보를 겹친다. 투명한 창 너머의 현실에 디지털 정보를 덧입히거나, 카메라를 사용하여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가상 객체를 배치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현실 세계와 함께 가상 객체를 볼 수 있지만 상호 작용은 할 수 없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매개가 된다.

VR은 사용자를 현실과 분리된 가상 세계로 이동시킨다. 사용자는 VR 환경에서 360도의 입체 영상과 음향을 체험하며 자신의 존재를 가상의 일부로 인식한다. 현실과 유리된 가상의 세계관을 얼마나 몰입감 넘치게 펼쳐내는지가 기술의 관건이다. VR은 헤드셋과 컨트롤러 등의 기기를 사용하여 사용자를 가상 공간에 녹아들게 한다.

메타(Meta)
이미지 출처: 메타(Meta) 홈페이지

요즘은 VR에서 MR로 진화하고 있다. MR은 현실과 가상을 융합한다. 현실 위에 가상 요소를 얹고 영향을 주고받도록 한다. 이에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경험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현실 객체와 가상 객체를 동시에 인식하며 경계가 무너진 세계에 진입한다. 그리고 AR, VR, MR과 같이 현실의 확장성을 돕는 기술의 가장 광범위한 개념이 바로 확장현실(XR·eXtended Reality)이다.

기술은 아직 한계점을 안고 있지만, 개선 사항을 반영한 최신화 장치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원하는 대형 스크린을 허공에 띄우는 AR 글라스 엑스리얼 에어2 프로(XREAL Air 2 Pro)는 국내에서 올 1월4일부터 정식 판매됐고, 확장현실 시장에서 현재 가장 주목도가 높은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 3(Meta Quest 3)는 MR 기능을 더해 2023년 10월10일 출시됐다. 단 이들은 영상 시청 혹은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홀로렌즈는 산업용, 교육용으로 자리잡고 있다.


애플이 외치는 공간 컴퓨팅

동영상 출처: 애플(Apple)

애플은 ‘공간 컴퓨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 용어는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 출신 사이먼 그린월드(Simon Greenwold)가 2003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 기계가 사람, 사물 등 실제 물체와 공간을 디지털화해 그 움직임을 참조하고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공간 컴퓨팅 장치에는 일반적으로 RGB 카메라, 깊이 카메라, 3D 추적기, 관성 측정 장치 또는 기타 센서가 포함되어 있어 사람과 일상적인 상호 작용 중에 손, 팔, 눈, 다리, 입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추적한다. 인공지능(AI), 카메라 센서,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사물 인터넷(IoT) 등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면서 실용화가 가능해졌다.

실제 비전프로는 아이트래킹과 핸드제스처 기능을 장착해 시선과 손동작만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할 수 있다. 외부 카메라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찍어서 사용자의 눈에 보여주는 패스스루 기능도 공간 컴퓨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물론 메타의 MR 기술이 포섭하는 기능도 있지만 메타의 전략적 방점은 공간 컴퓨팅에 찍혀 있지는 않았다.

결국 공간 컴퓨팅은 디지털 데이터와 실재의 자연스러운 연결성을 추구한다. 즉, 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과 가상 그 자체인 ‘메타버스’ 사이의 점을 연결하여 현실과 디지털 사이의 일상적 가교 역할을 한다는 해석이 있다.a)

앞서 ‘지금까지의 확장현실 기술은 전문 산업 분야가 아니라면 대중에게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지만 애플은 확장현실을 생활 전반에 밀착시킬 야심을 드러낸다.


확장현실을 적용한
상상적 시나리오

애플 공간 컴퓨팅
이미지 출처: 애플(Apple) 홈페이지
애플 공간 컴퓨팅
이미지 출처: 애플(Apple) 홈페이지

그렇다면 공간 컴퓨팅 패러다임이 과연 모바일을 대체할 혁명이 될 수 있을까? 애플이 제기한 기술의 안착이 당장 성공할지 가늠하기에는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진화의 큰 방향성을 살피고 미래의 모습을 예견해보는 일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신체의 확장이라는 양상을 그려본다. 컴퓨터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전이되며 우리는 두 발의 자유를 얻었다. 기기의 개인화, 소형화는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킹을 누리는 이동성을 보장했다. 여기서 나아가 키보드와 마우스, 화면을 터치하는 손가락으로부터 해방되는 환경은 두 팔에도 자유를 선사한다. 신체의 활동성이 더 커짐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범주가 넓어질 수 있다. 그만큼 현실과 디지털 정보를 보고 듣는 와중에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선에 의해 처리되는 정보들이 늘어나는 확장성 역시 물리적 접촉의 경험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공간의 확장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공간 컴퓨팅은 기본적으로 물리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레이어, 층위를 만들며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이런 층간 형태 속에서 여러가지 일의 처리 공정을 한꺼번에 관장하는 일이 수월해진다. 여러 유형의 센서에서 데이터를 결합해 사용자 경험을 간소화하는 것 역시 ‘동시다발적 지각’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공간의 확장은 선형적인 정보 습득이 익숙한 체계에서 비선형적 사고로의 전환을 자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체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점은 경험이 서로 중첩된다는 상상. 디지털 행위 주체의 폭넓은 신체 자유도와 공간의 동시적 넘나듦은 ‘중첩된 경험관’을 가진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기술은 생활 양식의 전환을 불현듯 가져오기도, 반대로 특정 인식이 전에 없던 기술 개발의 욕구를 부르기도 한다. 요즘 기업이 몰두하는 제3세대 컴퓨터라는 화두는 확실히 확장현실에 대한 기술 개발 경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파도에 저항없이 휩쓸리게 된다. 거대한 방향성 만큼은, 디지털 체계의 작동 원리를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과 일치시키려는 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지향점을 이해한 대응은 갑자기 닥쳐오는 파도도 능숙하게 탈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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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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