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은 70년대, 창고에 모여 무작정 밴드 음악을 시작했던 개러지 록의 음악적 특징을 현대로 가져와 부활시킨 록의 흐름이었습니다. 개러지 록은 단순합니다. 일렉기타는 선명한 사운드로 동일한 리프를 반복적으로 연주합니다. 베이스와 드럼도 패턴과 멜로디에 무게를 두고 빠르게 리듬을 쌓아가고요. 때로는 냉소적인 가사를 건성건성 읊거나, 공격적으로 리듬을 쪼개며 갱스터 랩을 뱉어내기도 합니다. 러닝 타임이 3분도 채 되지 곡들도 있습니다. 쿨하고, 직선적인 음악이었죠.
귓가에 빠르고 간결하게 파고드는 개러지 록은 록의 원초적인 매력이 진하게 녹여져 있는 장르였습니다. 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리듬에 몸을 맡겨 춤을 출 수 있고, 날카로운 록 사운드에 목마른 마니아들에겐 정석과도 같은 음악이었고요. 필자가 주목한 건 부활(Revival)이란 표현입니다. 특정한 음악의 부활을 꾀했다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음악적 장르와 뿌리가 다변화 되고 있는 오늘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흥망성쇠를 통해 하나의 장르가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아봤습니다.
자유와 결속의 음악,
개러지 록
필자는 음악적인 평가에서 벗어난 느슨한 범위 안에서 ‘자유’와 ‘결속’이 밴드를 이루는 주요 키워드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밴드라는 집단에 묶여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그들의 행위가 저항이란 정신으로 모이기도,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으로 비치기도 하면서요.
여러분들이 밴드를 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아, 밴드하고 싶다.’ 정도여도 상관없습니다. 자유를 충족하는 지점이니까요. 마음에 맞는 친구 3명 정도 불러서 노래방 점수 제일 높은 애는 보컬, 손재주 좋은 친구는 베이스, 넌 음악 시간에 장구 좀 쳐봤다고 하니 드럼을 맡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모여 밴드를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는 겁니다.
4명이 모였으니 대충 장비도 챙겨서 한적한 창고에 모여 오합지졸 연주도 해보자고요.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밴드 활동에 재미도 들이고 멤버들과 사이도 돈독해지면서 ‘결속’도 충족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 없겠지만 동네 창고에서 가장 기초적인 개념의 밴드가 탄생한 겁니다. 학교 근처 클럽에서 갑자기 연락이 옵니다. “너희 밴드 한다면서. 오늘 땜빵으로 공연 30분 뛰어 볼래?”
개러지 록(Garage Rock)도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1960년 중반, 비틀스(The Beatles)의 성공에 감명받은 미국 청년들이 차고(Garage)에 모여 연습하고, 노래를 만들면서요. 번듯한 레코딩 장비도, 연습실도 없었지만, 충분히 멋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DIY(Do It Yourself) 정신으로 밴드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개러지 밴드는 기성 밴드보다 음악적으로 미성숙하고, 어렸습니다. 아마추어라고 불러도 과분한 수준의 레코딩와 연주력을 갖고 있는 밴드도 많았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부정적인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라고. 우린 밴드를 하고 있는데.’
개러지 밴드의 음악은 직선적이고, 단출합니다. 단순한 코드와 정제되지 않은 지저분한 기타 사운드가 특징이지요. 당연합니다. 밴드를 하고 싶은 어수룩한 청춘들의 음악이 개러지 록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한 아마추어 밴드. 개러지 록은 밴드의 음악성과 연주 실력 등의 조건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멋지게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부족한 실력과 음악성은 쇼맨십과 열정적인 연주로 보완하고요. 그래서 필자는 개러지 록을 청춘의 무모함을 닮은 ‘가장 젊은 로큰롤’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개러지 록은 초기에 부족한 실력은 열정으로 메꾸는 쇼맨십과 독특한 사운드로 주목을 받았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밴드 활동을 영위하기에는 그들의 음악은 너무 날 것이었거든요. 개러지 록의 DIY와 아마추어 정신은 펑크(Funk)를 비롯한 인디 음악 전체에 스며들었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개러지 록은 하나의 장르라기 보다는 밴드 정신을 넓게 일컫는 용어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 개러지 록은 펑크(Punk)에서 파생된 포스트 펑크(Post-Punk)1)라는 장르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펑크는 ‘반항과 정신’을 내포한 정신적인 층위의 장르라면, 포스트 펑크는 직선적이면서 단순한 음악 구조 안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장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펑크와 개러지 록은 궤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포스트 펑크: 포트스 펑크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상위의 개념으로, 개러지 록을 포함해 포스트 펑크 장르 그 자체와 뉴웨이브 풍의 장르도 포스트 펑크에 포함한다. 본 글은 2000년대 개러지 밴드들이 당대 포스트 펑크의 전반적인 흐름을 재현하고 해석했다 생각해 포스트 펑크와 개러지 록을 구분 짓지 않았다.
1) 개러지 록의 부활
개러지 록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였습니다. 미국 인디신에서 70년대 개러지 록을 표방하고, 자신들의 색으로 해석하는 밴드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 시기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 부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포스트 펑크의 부활(Revival)을 꾀하는 운동이란 뜻인데요, 개러지 록 리바이벌이라는 이명처럼 개러지 록을 규정짓는 주요한 흐름이자, 록의 새로운 부흥기였습니다.
이 시기 개러지 밴드는 그들의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반복되는 리듬과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 원초적인 본능이 충만한 록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그때보다는 정돈된 사운드 아래 팝적인 느낌도 가미된 프로들의 음악이었고, 대중은 물론 평단의 긍정적인 반응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간결하고 반복적인 리프’와 ‘중독성 있는 리듬’이라는 공통점 아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신의 음악은 다양한 양상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고전적인 개러지 밴드 사운드를 구사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뉴웨이브 또는 댄스 록과 결합하면서 대중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는 팀도 있었습니다.
00년대는 록 음악은 메탈, 너바나의 유산인 그런지 록과 같은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록 음악에 대체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얼터너티브 록은 미래 지향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운드 적으로는 강렬할지 몰라도, 록에 진심인 마니아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함이 있었죠. 개러지 록은 밴드의 본모습을 그리워하던 마니아들에겐 그들이 사랑한 시대의 부활이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것을 원하던 젊은 록 키드들에게도 개러지 록의 쿨한 무드는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곡이 끝나고도 머릿속에 맴도는 리듬과 멜로디는 록을 잘 모르는 대중들도 접근하기 쉬웠으니까요. 또한 신이 빠르게 커져 다양한 밴드들이 등장했고, 입맛에 맞는 노래를 찾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터너티브 록을 대체하는 음악의 등장이었던 셈입니다.
재밌는 점은 70년대 개러지 밴드들은 비틀스로 대표되는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영향으로 미국 청년 위주로 탄생했으나, 00년대 개러지 밴드는 미국 출생의 밴드가 영국에서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선두 주자로 손꼽히는 뉴욕 출신의 스트록스(The Strokes)가 대표적입니다.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 [Is This It]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선 33위에 그친 반면, 영국에선 언론의 극찬과 함께 음반 차트 2위를 기록합니다.
스트록스가 불붙인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신은 인터폴(Interpol),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 리버틴즈(The Libertines), 악틱 몽키즈(Arctic Monkeys) 등의 밴드들의 데뷔 앨범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만, 2010년을 앞두고 지난 10년의 번성과 유행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크게 쇠퇴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시절 개러지 록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장르에 조금씩 편입되기 시작합니다.
2) 반복 그리고 정체
먼저 신을 이끌어가던 밴드들의 후속작들이 데뷔앨범만큼 신선하지 못했습니다. 70년대 개러지밴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곡의 진행과 구성은 음악적인 발전을 꾀하기에 어려웠지요. 개러지 록은 처음 듣자마자 빠르게 귀에 꽂히지만, 그만큼 쉽게 질리는 장르였습니다. 앨범을 거듭할수록 그런 단점은 더욱 커져만 갔고요.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였으니, 평단과 대중의 평가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신보는 데뷔 앨범의 연장선이거나, 너무 많은 변화를 반영해 포스트 펑크라고 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었죠. 그렇게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신은 빠르게 작아졌습니다.
영국 펑크의 재림이라 평가를 받았던 리버틴즈는 한창 빠르게 성장할 타이밍을 놓친 케이스였습니다. 데뷔앨범 [Up The Bracket]으로 스트록스에 대항하는 영국 개러지 밴드로 주목받았지만, 프론트맨 피트 도허티의 마약 스캔들, 또 다른 프론트맨 칼 바렛과의 불화 끝에 발매한 2집 [The Libertines]를 끝으로 신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세월이 꽤 지나 재결합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데뷔 초기의 강렬한 사운드에서는 멀어졌고 전성기에서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뒤였죠.
댄스 개러지 록 밴드 프란츠 퍼디난드는 ‘Take Me Out’, ‘This Fire’로 대표 되는 댄서블한 음악성을 유지하면서 자국인 스코틀랜드에선 국가를 대표하는 밴드로 불리며 롱런하고 있습니다만, 앨범 단위로 큰 발전을 보여주지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런던 출신의 블록 파티(Bloc Party)도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 잠잠해지던 2008년을 기점으로 활동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색깔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록의 쇠퇴기
록이 메인스트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던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음악의 트렌드는 점점 열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외부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RnB나 힙합 등의 장르가 차트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팬층이 많았던 밴드 음악은 주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DIY, 인디 정신으로 밴드를 꾸려 나가기에는 록 음악 자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밴드들은 점점 대중들에게 잊혀 갔습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도 음악적인 노선을 바꿔 포괄적인 범위의 인디 록으로 편입되거나, 소수 마니아의 지지를 받으며 명맥을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악틱몽키즈는 스트록스 이후로 가장 주목 받았던 개러지 밴드였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2집은 데뷔 앨범만큼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고, 리바이벌의 붐도 사그라들던 시기였기에 3집 이후로는 싸이키델릭, RnB 쪽으로 음악적인 노선을 바꿉니다. 3집에선 급변한 스타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진 못했으나, 앨범을 거듭할수록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신 출신 중에선 드물게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대형 밴드로 거듭났습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개러지 밴드들이 있었습니다. 아도이(ADOY)의 보컬 오주환이 속해있던 이스턴 사이드킥이 대표적입니다. 데뷔 앨범 [The First]은 당대 유행하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문법에 충실하면서, 한국어의 말맛을 잘 살린 동양 개러지 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스턴 사이드킥도 2집을 마지막으로 공식 해체를 하게 되면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마지막으로 록에서 ‘운동’이나 ‘메인스트림’이라 부를만한 거대한 흐름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록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특정 장르나 음악에서 어떠한 변화나 흐름을 만들어내기엔 전 세계적으로 ‘트렌드’라고 콕 짚어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더욱 모호해지고 있으니까요. 지난 10년간, 다른 장르와 적극적인 매시업으로 1위 자리를 굳건히 하던 힙합도 점점 주류에서 벗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리바이벌(Revival)은 부활시킬 장르와 명확한 대상, 시간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효한 행위일지 모릅니다. 해당 장르를 접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니까요.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 등의 아티스트들의 신보들이 팝 펑크 리바이벌이라 불리며 대중의 환영을 받았던 것처럼, 어떤 특정한 시기의 음악이나 문화는 지금 시대의 트렌드가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갈증을 채워주기도 합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이 의도했건 안 했건, 밴드의 가장 기본 요건인 ‘자유’와 ‘결속’을 중요시했던 시대의 음악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록이 사랑받았던 이유인 야성미를 다시금 곱씹어 볼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이지요. 자신들의 시발점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은 어떤 분야 건 방향성을 다시 잡는 데 유효한 행위입니다.
다만, 리바이벌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큰 흐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재발견과 재해석이 반복되어야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다시 찾아 톺아볼 수 있는 유산으로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음악과 문화, 패션을 막론하고 사용됐던 ‘레트로’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유행으로만 자리 잡을 겁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렌드에 파묻혀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