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찾아온 도시는 어둠이 내려앉지만, 그 속에서 더욱 선명히 자신을 드러냅니다. 도시들의 야경이 매력적인 이유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인해 저마다의 형태가 낮보다도 더욱 또렷해지기 때문이겠죠. 지금, 서울과 부산에서 전시로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불빛으로 이루어지는 도시의 밤을 표현하는 작가 두 명을 소개합니다.
뉴욕의 설렘과 낭만이 가득한
윤협의 도시 야경
서브컬처를 동경하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비디오테이프, 잡지, 사진 등을 수집하는, 그리고 도시를 돌고 포착하는. 모두 윤협 작가를 소개하는 수식어들입니다. 그는 어릴 적 그래피티, 힙합, 스케이트보드 등의 비주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 스트리트 브랜드들과의 협업 등으로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던 작가는 2010년 뉴욕으로 이주하고 뉴욕의 모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뉴욕은 작가가 본격적으로 ‘이방인’으로 존재하게 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작가가 그린 여러 도시 중에서도 ‘뉴욕’이라는 장소는 더욱 특별한 장소로 해석되죠.
윤협 작가의 작품 속에는 이방인의 시선이 바라보는 뉴욕의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여행 중에 감상하는 야경이 설렘과 기대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작가의 작품 속 야경은 로맨틱하고 화려합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특성과 이미지 때문에 설렘이 배가되는 효과도 있겠죠. 이렇게 도시를 밝히는 조명은, 해가 졌지만 바삐 움직이는 도시와 그 속의 도시인들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조금 떨어져서 보는 작가의 야경은 이 거리감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가로 16m의 사이즈를 자랑하는 대형 파노라마 작품 “뉴욕의 밤(Night in New York)”은 맨해튼에서 뉴저지까지의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전거를 타며 본 도시 야경을 길게 늘어놓으며 자신의 여정에 조용히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관람객은 “뉴욕의 밤” 앞을 천천히 거닐며 마치 지금, 저 멀리 펼쳐진 뉴욕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저 멀리 늘어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담은 그림에서는 고요함과 동시에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큰 화면이 주는 위압감과 동시에 뉴욕이라는 도시의 존재가 지닌 무게가 시각화되었기 때문이죠.
작가는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를 즐겨 타면서 본 도시의 야경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윤협 작가의 도시들은 도시의 한복판을 내달리는 듯한 경쾌함도 느껴집니다. 또, 선과 점으로 빛을 표현하는 기법은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점묘법 같기도 한 그의 독창적인 화법은 도시의 야경을 낭만적으로 담아내는데, 일정한 두께의 선과 점이 반복되기 때문에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죠. 복잡한 도시의 모습을 단순화했지만, 다채로운 색의 빛을 형형색색으로 표현해 도시의 자유로움 또한 드러냅니다. 고층 빌딩의 창에서 새어 나오는 환한 불빛들, 꺼질 줄 모르는 네온사인 간판들, 어두운 길거리 곳곳을 밝히는 가로등, 모두가 섞여서 환한 도시를 완성합니다.
윤협 작가는 “해가 질 때까지(Until the Sun Goes Down)”, “서울 시티(Seoul City)”, 그리고 현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담은 “기사의 관점(A Knight’s Perspective)” 등으로 서울의 야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2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시 ≪윤협 : 녹턴시티≫에서는 해운대의 밤과 파리의 밤을 담은 작품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각 도시의 야경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윤협 : 녹턴시티≫
위치: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롯데뮤지엄
전시 기간: 2월 24일 ~ 5월 26일
비 내리는 일상 속 고요함
고다현의 도시 야경
‘도시’라는 장소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기는, 또는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 고다현 작가는 비 내리는 날 도시의 특별함에 주목합니다. 조금 쌀쌀해지는 공기, 촉촉하게 젖어가는 아스팔트, 높은 습도로 살짝은 포근해지는 느낌. ‘토독토독’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기도 하고, 젖은 아스팔트 위를 걷는 발걸음을 따라 ‘찰박찰박’ 물웅덩이도 튀곤 하죠. 이렇게 비 내리는 날, 버스나 차 안에서, 또는 실내에서 창밖의 비 오는 풍경을 볼 때, 창에 맺힌 빗방울을 유심히 관찰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고다현 작가는 창에 맺힌 물방울을 통해 바라보는 도시 야경을 캔버스 위에 재현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의 빛, 자동차의 라이트, 신호등의 빛 등 도시를 수놓는 빛들이 창문에 맺힌 빗방울에 투영됩니다. 물방울 하나하나를 유심하게 관찰한 작가는 각각의 방울이 다른 색을 띠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방울의 위치, 이를 보는 시선의 각도 등에 따라서 투과되는 빛이 다르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방울 방울에 집중하는 순간, 빗방울에 투과되는 빛들은 카메라의 초점이 맞지 않는 순간처럼 퍼져 동그랗고 흐릿한 모양이 됩니다. 작가는 이를 ‘비 내리는 날 도시 풍경’으로 포착하고 화면에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고다현 작가의 도시 풍경은 흐릿한 원들이 가득합니다. 각각의 원들은 고유의 색이 있지만, 근처의 원과 겹치며 새로운 색으로 변하기도 하며, 작은 동그라미들이 모여 도시의 밤 풍경을 완성하는 것이죠.
눈이 약한 작가에게 비 오는 날의 분위기는 매우 특별했는데, 비 오는 날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조금은 쌀쌀한 날씨 등이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다현 작가의 작품 속 도시는 ‘작가만이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이 느끼는 비 오는 날 도시의 느낌,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전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화려한 도시의 순간을 담아낸 그림이지만,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더욱 돋보이게 됩니다.
고다현 작가의 풍경화는 더욱 추상적인 형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네온사인의 불빛이 퍼져 깜박이는 것 같은 원들이 깊은 원근감도 없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죠. 이렇게 작품 속에서 도시는 추상적인 형태로 완성되지만, 이는 고다현 작가가 누구보다도 또렷하고 명확하게 도시를 바라보고 있기에 완성할 수 있는 풍경화입니다. 도시의 화려한 밤이 작은 빛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처럼, 작가는 물방울들의 집합체로 도시 풍경을 구성하는 것이죠.
비 내리는 날의 습도나 분위기, 공기의 밀도에 집중하는 작품세계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밖의 풍경으로 수도 없이 접했던, 익숙한 매일의 순간이죠. 다만, 이를 달리 보는 작가의 시선이 우리에게 새로운 도시 야경을 보여주는 것이며, 초점이 맞지 않는 듯한 독특한 화면 속에서 우리는 일상 속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Godahyeon≫
위치: 부산 중구 중앙대로 2 롯데백화점광복점 아쿠아몰 2층, artypik
전시 기간: 3월 5일 ~ 4월 5일
깜깜한 밤, 해가 사라진 도시를 밝히는 것은 모두 인공의 빛입니다. 도시의 야경은 설렘을 가져다 주기도, 익숙함 속의 포근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묘한 따스함이나 차분함, 화려함 속의 활기 등 다양한 느낌을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도시의 밤을 사랑하곤 하죠. 이번 봄, 두 작가가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을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