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심판이 어디에 서 있는지 보신 적 있나요?”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혹시 심판의 동작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나요? 아마 단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필자는 지난 2월 말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축구 경기장에서 진행된 대한축구협회 심판 자격증 5급 연수 과정을 수료하고 신인심판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판으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경기규칙서(Laws of the Game)』의 이론을 학습해 평가를 받고, 실제 경기장에서 현역 심판들의 지도 아래 주심의 경기 관장 기술과 부심기 선언 요령 등을 배우며 그동안 축구 경기 뒤편에만 존재해 보이지 않았던 심판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죠.
한국인에게 축구라는 스포츠는 각별합니다. 이제는 현대사(史)가 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부터 동양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주장 자리를 꿰찬 손흥민 선수에 이르기까지 축구는 하나의 운동 종목을 넘어 팬덤을 양산하는 거대한 문화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쇼엔터테인먼트로서의 축구 이면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흩어졌음에도, 축구는 언제나 하나의 언어였으며, 그 변하지 않는 축구의 역사는 늘 우리 겨레와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축구의 법(Laws of the Game)’도 늘 하나였습니다.”
_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
특히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수천 번의 개정을 겪으며 고도화된 세분화된 이른바 ‘경기규칙(Laws of the Game)’은 축구가 세계 최대, 최고 스포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1등 공신인데요. 이 글에서는 이러한 규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필드 위의 12번째 선수 심판의 눈으로 ‘오프사이드(Offside) 규정’ 등 축구라는 스포츠가 ‘공정성’이라는 철학을 경기에서 구현하기 위해 펼쳐온 노력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축구규칙’이 아니라
‘축구법’이다
국제연합(UN)에 가입된 숫자(197개국)보다도 더 많은 나라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나요? 2024년 기준 피파 가입국은 총 211개국으로, 세계 기구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자국 국민들로 이뤄진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들고 세계 무대에 내보내겠다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지닌 에너지가 얼마나 깊고 뜨거운지 알 수 있죠. 이들 211개국에서 1년간 펼쳐지는 축구 경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호인 대회를 제외하더라도 족히 수만 개는 넘을 것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국제축구평의회는 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지구촌 가장 거대한 스포츠인 축구 경기에 적용될 ‘법칙’을 매년 심의개정해 한 권의 책자로 배포합니다. 그것이 바로 17개 조문으로 구성된 『경기규칙서』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경기규칙서의 이름이 ‘Ruls’가 아니라 ‘Laws’라는 점인데요. 이는 축구가 단순히 기계적인 규칙 적용으로 진행되는 ‘게임’의 차원을 넘어서, 마치 거대한 헌법이 한 사회를 지탱하듯이 법에 의해 작동되는 독립된 ‘세계’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코로나 이후 선수 보호 차원에서 한 경기 최대 교체선수 인원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리고, 뇌진탕이 의심되는 선수가 발생할 경우 심판은 반드시 경기를 중단시켜 선수를 교체시켜야 한다는 룰을 추가시킨 국제축구평의회의 결정은 축구를 한 사회의 일부로 바라보는 축구의 정신을 구현한 사례죠. 그리고 국내에서는 대한축구협회가 매년 개정되는 이 ‘법’을 한국어로 번역해 실제 경기에 적용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의무를 지니는데, 매년 변경되는 이 ‘법’을 가장 먼저 숙지하고 현장에서 집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심판들입니다.
5000제곱미터의
‘공인된 폭력’의 공간
혹시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지푸라기와 나무껍질로 엉기성기 만든 공의 형태를 띈 조악한 뭉치를 발로 차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나요? 축구의 발원지라고 알려진 영국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1863년 프리메이슨 테이번이라는 런던의 한 선술집에서 당시 영국의 풋볼클럽 감독들이 모여 세계 최초의 축구협회, 즉 ‘The 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며 근대 축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굴러다니는 물체를 발로 차며 여러 사람과 오직 신체의 힘만으로 놀이를 즐긴 역사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더 거슬러 올라가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무언가를 차고, 전력으로 질주하고, 누군가 몸을 부대끼며 다투는 행위는 본능에 가까웠다는 뜻인데요. 이들에게는 하키선수의 투박한 갑주도, 야구선수의 글러브도, 농구선수를 위한 골대도 필요 없었죠. 오직 단단한 두 다리와 둥근 공을 향한 투지만 있다면 게임에 참여할 있었고, 바로 이 원초적 단순함이 축구의 밑바탕에 깔린 정신일 것입니다.
이 점에서 축구는 전쟁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오직 인간의 신체 능력에만 의존한 순수한 스포츠이기에 과도한 힘의 사용으로 인한 부상과 출혈 사태는 시도 때도 없이 벌어졌죠. 소림사 스님들로 구성된 오합지졸 축구팀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소림축구>에서 그들이 연습 상대로 처음 만난 어느 아마추어팀이 경기 전까지만 해도 선량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인사를 하다가,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스타킹 양말 안쪽에서 각종 공구를와 쇠망치를 꺼내 무자비하게 반칙을 범하는 모습은 코미디라는 외피를 둘러쌌을 뿐 축구가 얼마나 거칠고 폭력적인 운동인지를 잘 알려주죠.
실제로 유럽 근대 사회에서 축구는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 혹은 지역 간의 분쟁을 전쟁을 대신해 해소하는 최소한의 ‘공인된 폭력’의 공간으로 기능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현대 축구에서 필드 위 선수들은 온몸이 부서질 각오로 공을 향해 질주하고 몸의 격투를 피하지 않고 있죠. 그래서 오직 축구만이 야구나 배구, 농구와는 달리 이런 과격한 현장을 통제하고 중재할 심판이 필드 안에 직접 들어가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호흡하며 함께 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세로 100미터, 세로 50미터의 무려 5000제곱미터의 거대한 필드 위의 폭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심판의 개입이 축구의 흐름을 끊고 보는 즐거움을 방해한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22명의 선수면 충분한데 굳이 12번째 선수가 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이슈가 바로 ‘오프사이드 논란’입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뛰는 선수에게 기회를
축구 팬들은 물론이고 심판들에게도 가장 어렵고 난해한 영역이 바로 오프사이드 파울 판정입니다. 수십 년간 TV로 축구 중계를 열심히 시청한 사람들도 부심이 깃발을 들어 골을 무료 선언하고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의아한 표정을 짓죠. 우리가 경기에서 목격하는 ‘오프사이드 파울’ 규정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1925년에 완전히 새롭게 재정립된 버전입니다.
우선 이 복잡한 제도가 도입된 이유를 살펴보죠. 오프사이드 파울은 공격팀에서 같은 팀 공격자에게 패스를 하는 순간, 해당 패스를 받은 공격자가 상대편 골라인 기준으로 최종 두 번째 선수보다 앞서 있을 때 발생합니다. 말로만 설명하면 어렵습니다. 규칙서에선 “공격하는 선수가 공 그리고 최종 두 번째 상대 선수 모두보다 상대 팀 골라인에 더 가까이 있을 때”라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 원리는 이것입니다. ‘공격을 하는 순간, 즉 앞으로 패스가 나아가는 순간, 공격팀과 수비팀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존재하고, 동등한 선에서 출발할 것.’
만약 축구에서 이 규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축구 실력과 상관없이 키가 크고 피지컬이 강력한 선수를 뽑아 최전방에 박아두고 뒤에서 앞을 향해 멀리 공을 차는 이른바 ‘뻥 축구’가 횡행했을 겁니다. 굳이 어렵고 복잡하게 수비진을 붕괴시키거나 빠른 드리볼로 수비 틈을 빠져나갈 필요 없이, 타고난 신체 능력을 지닌 소수 인원에게만 공을 몰아줘 골을 만들어내는 매우 단순한 플레이가 반복이 되었겠죠. 그랬다면 축구 경기가 지금처럼 긴박하게 흘러갔을까요? 게다가 이러한 상황은 ‘가장 열심히 뛰고, 가장 빠르게 뛰는 선수에게 더 많이 기회를 줘야 한다’는 축구의 정신과도 맞지 않죠.
이런 오프사이드 규정 덕분에 수비수들은 골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장신 공격수나 몸싸움을 잘하는 상대팀 선수에 구애 받지 않고 라인을 갖춰 하프라인 넘어서까지 전진할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쓰루패스, 컷백, 전진패스 등 다양한 축구 전술을 연마해 축구 경기력의 고도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만의 짜릿하고 통쾌한 공격 전술과 전율을 일으키는 조직 축구의 모든 것이 이 오프사이드 규정 덕분에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말하자면 오프사이드 규정은 ‘공놀이’와 ‘축구 경기’를 구분하는 가장 단단한 경계선인 셈입니다.
관대한 눈으로
축구 경기 즐기기
심판은 바로 이 오프사이드 규정을 관리하고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닙니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규정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오프사이드 위치에 서 있던 공격수가 공을 받지 않았더라도, 상대팀 수비수를 ‘방해’하거나 공격 플레이에 ‘개입’했거나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서 ‘이득’을 얻었다면, 볼을 터치와는 상관없이 그 역시 파울입니다.
만약 공격자의 전진패스가 수비수 발을 맞고 앞으로 굴절되어 흘러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서 있던 공격자에게 간다면? 이 경우는 파울일까요, 정상 플레이일까요? 이 경우는 수비자의 의도에 따라 판정이 달라집니다. 공격자의 패스를 차단하려다 발에 맞아 의도와는 달리 공격자에게 전달됐다면 오프사이드고, 공격자 패스를 차단함과 동시에 논스톱으로 같은 팀 수비수에게 공을 전하려던 것이 턴오버되었다면 정당한 공격으로 간주합니다.
힘과 스피드 등 인간의 원초적 능력을 기반으로 수행되는 대표적 스포츠가 바로 축구지만, 이 오프사이드 전략만큼은 고도의 지적 능력과 전술 이해도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수비수들은 이 오프사이드 규정을 이용해 이른바 ‘트랩’을 만들어 상대방의 공격을 무효화시키곤 합니다. 그리고 공격수들은 또 이런 수비수의 트랩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로 공격을 전개해 심판의 눈을 속이죠. 이처럼 까다로운 단서조항과 고도화된 축구 전략으로 인해 심판의 오프사이드 판정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 결과 심판의 선언 역시 늘 논란을 일으켜왔습니다.
실제로 필자의 자격증 취득 후 수차례 진행된 신인심판 훈련에서 신인심판들이 가장 어려워한 부분이 바로 이 오프사이드 판정이었습니다. 팬들의 응원과 코치진의 고함이 뒤섞인 현장에서 공격팀의 결정적 골 득점 찬스 순간, 과감히 부심 깃발을 들어 오프사이드를 선언함으로써 경기를 중단시키기란 어지간한 멘탈을 지니지 않은 이상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심판은 판정을 해야 하죠. 그것이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오프사이드 규정의 이러한 복잡한 사연을 알고 나면 앞으로는 응원하는 팀의 골을 무효화하는 심판의 오프사이드 판정을 조금은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심판의 오심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정확한 오프사이드 판정은 곧 해당 축구 경기의 결과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축구 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에, 국제 축구계는 오래전부터 VAR 기술 도입을 추진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축구 심판은 이 기술력을 통해 99% 이상의 높은 정확도로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경기는 선수들이 축구 규칙과 심판을 존중함으로써 심판이 필요 없는 경기다.”
_익명의 축구 팬
축구 심판의 세계는 아이러니컬합니다. 그들은 축구라는 한 국가의 법전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규칙서’를 들고 필드 위를 뛰어다니며 그 법을 시행하기 위해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실제 필드 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규칙서로만 해석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유하기에 심판들은 늘 그때그때의 개별적 주관으로 사건을 판단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의 모든 판정이 늘 옳거나 합리적일 수 없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심판의 오심 역시 경기의 한 일부’인 것이죠. 이처럼 심판은 불완전함을 필연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축구라는 시합에서 그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눈으로 축구를 관람할 수 있다면 스포츠 너머에 놓인 축구의 철학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 『23-24 경기규칙서』
- 풋볼리즘, 조금은 깊은 오프사이드 이야기,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