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를 묻는
포근한 그림책 3권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집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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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에게 집은 곧 아파트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월세, 전세, 청약, 자산, 투자, 대출 등 숫자와 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겠네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집을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정의합니다. 또한 집은 ‘가족을 구성원으로 하여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는 뜻도 있습니다. 새삼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내 집 한 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기 바쁜 이 시대에 사치스러운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대체 집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간결한 언어와 아름다운 그림으로 숫자에 가려진 집의 의미를 묻는 그림책 세 권입니다.


모두의 돌아갈 곳
『집』 , 린롄언

그림책 『집』 , 린롄언
이미지 출처: 밝은미래

아침에 집을 떠나 일터에서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담은 책입니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 처음 출발한 곳,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당연하게 생각해서 잊고 있던 집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나를 감싸주는 유일한 안식처인 집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의 화자는 출근하는 아빠를 따라가는 아이를 쫓아가는 새입니다. 하루 종일 새가 쫓아온다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부녀는 하루 종일 자신들이 타고 다닌 트럭에 새 둥지가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립니다. 부녀는 새 둥지를 나무로 옮겨줍니다. 마침내 새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폐지를 찢고 오려 붙여 만든 그림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서로 다른 질감의 종이가 겹겹이 쌓이고 투박한 그림이 더해집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집이 주는 편안함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잠만 자는 집’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는 잠만 자고 특별히 하는 게 없을 때 그렇게들 말하죠. 이 책을 읽으며 약간의 자조가 섞인 이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잠만 잘 수 있는 집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요. 집에서는 오로지 잠만 자도 됩니다. 바깥 세상의 소란에 잠시 귀를 닫고 푹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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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이와 함께하는 곳
『움직이는 집』 , 사를로트 르메르

그림책 『움직이는 집』 , 사를로트 르메르
이미지 출처: 머스트비

집에 스키를 달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는 바나비와 애벌레 로뱅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바나비는 문득 사랑하는 과수원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스키를 만들어 집에 붙이고 겨울이 되자 길을 떠납니다. 집과 함께 여행은 장점이 많습니다. 어딜 가든 그곳에 집이 있기 때문에 길 잃을 걱정이 없습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수 있었죠.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바나비에게 스키 달린 집을 끌고 다니는 건 때로 너무 버거웠고,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뱅은 이렇게 위로합니다. “어쩌면 바위는 스키 달린 집을 타고 여행하고 싶었을지 몰라. 그리고 낙하산을 탄 사람들은 하늘을 여행하다 보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울 거야.”

바나비와 로뱅은 스키 달린 집 덕분에 먼 곳까지 여행한 사실을 추억합니다. 앞으로도 서로와 스키 달린 집이 있다면 어디에 있어도 기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이 이야기는 따뜻한 색감의 그림과 어우러져 한층 더 환상적인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배경이 겨울인데도 고스란히 담긴 붓질의 흔적에는 온기가 감돕니다.

누구나 어렸을 적 나중에 커서 살고 싶은 집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겁니다. 스키 달린 집만큼 풍부한 상상을 담은 집이었겠지요. 상상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나비와 로뱅의 행복을 누리는 마음이 아닐까요? 비록 멋진 집과 함께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지 못해도 우리가 누리는 현재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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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개성과 생각이 싹트는 곳
『생각이 켜진 집』 , 리사르 마르니에, 오드 모렐

그림책 『생각이 켜진 집』 , 리사르 마르니에, 오드 모렐
이미지 출처: 책과콩나무

모두 똑같이 생긴 집으로만 이루어진 동네가 있습니다. 빨간 벽돌, 빨간 삼각형 지붕, 나무로 된 창문 두 개가 달린 집이었죠. 자로 잰 듯 완벽한 모습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약속한 것처럼 밤이 되면 창문을 닫고, 아침이 되면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집에서 밤에 창을 닫는 대신 불을 켭니다. 모두가 수군대는 사이 집 주인은 긴 여행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빈 집을 헐어버립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주인은 여행지에서 가져온 물건을 재료 삼아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특별한 새 집을 짓습니다.

초록, 파랑, 노란색으로 칠한 희한한 모양의 지붕에 풍차도 달린 괴상망측한 집이었죠. 진짜 이상한 일은 그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집을 마음대로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문을 파랗게 칠하고, 탑을 만들어 붙이고, 대나무로 벽을 장식했습니다. 마을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집은 하나도 없었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해졌습니다. 복사, 붙여 넣기 한 것처럼 같은 모양의 집으로 가득해 단조롭던 페이지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채로운 색과 형태가 더해져 감탄을 자아냅니다. 마을이 아름답게 변한 만큼 독자의 눈도 즐겁습니다.

시간이 흘러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밤에 불을 켠 집주인에게 고마워합니다. 각자의 마음대로 지은 집에서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동네는 어쩌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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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이런 책을 읽고 집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겠지요. 어른이 된 독자들에게 이 책들이 듣기에만 좋은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이 이야기와 너무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집은 우리가 고된 일을 끝내고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자 소중한 존재와 추억을 나누는 곳이자 각자의 자유로운 생각이 싹트는 곳입니다. 어른들이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아이들이 자라 실망하지 않기를, 세상에 좀 더 많은 집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김자현

김자현

그림과 글, 잡다한 취향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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