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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NTIEGG 유진입니다.

흙냄새가 바람에 묻어나는 계절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오늘 겨우내 애용하던 항수를 서랍 약간 뒤로 밀어 넣었습니다. 발삼나무와 측백나무 향이 두드러지는 쌉싸름한 향기가 봄을 맞아 변화한 거리의 냄새와 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기예보를 잘 보지 않는 저는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촉감과 기온, 그리고 냄새로 올해도 봄이 왔음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온몸에 새겨 넣기 위해 긴 도시 산책을 나섰습니다. 3월 끝자락에 나서는 오후 네 시의 산책은 2월의 산책과는 정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아니라 선명한 태양빛이 여린 싹들을 연두색으로 비추고, 바람에는 따뜻한 흙냄새가 맴돌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져서, 이제는 맨 팔을 내놓은 모습을 봅니다. 그들을 보는 제 정수리도 햇볕으로 조금 따가운 느낌이 듭니다. 매화는 만개해서 곧 시들어갈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고, 흙바닥에 핀 이끼도 색과 향이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도시의 광고판과 높은 건물들 틈새에서도 결국 변하는 것들을 목격하고 돌아왔죠. 도시의 휘황찬란한 스펙터클 사이로 이런 변모의 과정을 바라보기 위해 제가 택하는 전략은 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서요. 그러다가 떨어진 꽃잎이나, 저 멀리 그림자가 밟히면 그때 고개를 들어 확인합니다. 이 꽃은, 이 그림자는 누구의 것일지. 여러분의 도시 산보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은 초봄의 긴 산책에서 어떤 것을 얻고 돌아오시나요?

이번 라이브러리에서는 도시를 걸으며, 몸으로 사유를 이어가는 ‘산책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직접 산책을 나서지 않더라도, 책 속 산책자들이 마주한 도시 공간을 글로 체험하며, 사유의 길을 산책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를 걸으며
창조적 원천을 찾는 여성들
저자인 로런 엘킨은 근대의 도시 산보자를 뜻하는 ‘플라뇌르(Flâneur)’가 남성형 명사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등의 여성 예술가가 ‘플라뇌즈(Flâneuse, 플라뇌르의 여성형)로서 도시를 어떻게 산책해 왔는가를 조망합니다. 그는 여성 예술가들이 도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되어 왔음에도, 도시와 도시 걷기를 창조의 원천으로 삼아 도시 산책의 의미 자체를 바꿔왔음을 밝힙니다.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
산책자의
원형을 찾아서
‘산책자’라는 개념과 발터 벤야민은 떼놓기 힘든 비평가입니다. 20세기 도시를 걸으며 사유하는 ‘산책자’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을 벤야민은 자신의 다양한 저술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런 벤야민의 저작들을 ‘도시산책자’라는 키워드로 묶어낸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는 벤야민의 산책자 개념을 탐구하는데 좋은 시작점이 되어줍니다.
스펙타클의 사회
도시 산책은 스펙타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멤버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기 드보르는 상품 물신의 가장 발달한 형태가 바로 도시 스펙타클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도시 스펙타클이 어떻게 은밀한 방식으로 개인을 원자화하고 소외시키는지를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9개의 장과 221개의 테제로 진술합니다. 『스펙타클의 사회』은 일견 이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시가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반영하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그의 선구적인 통찰을 복기함으로 우리는 도시에 삼켜지지 않고 도시를 산책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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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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