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가 바람에 묻어나는 계절에 인사드립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오늘 겨우내 애용하던 항수를 서랍 약간 뒤로 밀어 넣었습니다. 발삼나무와 측백나무 향이 두드러지는 쌉싸름한 향기가 봄을 맞아 변화한 거리의 냄새와 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기예보를 잘 보지 않는 저는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촉감과 기온, 그리고 냄새로 올해도 봄이 왔음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계절을 온몸에 새겨 넣기 위해 긴 도시 산책을 나섰습니다. 3월 끝자락에 나서는 오후 네 시의 산책은 2월의 산책과는 정말 다른 경험을 하게 합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아니라 선명한 태양빛이 여린 싹들을 연두색으로 비추고, 바람에는 따뜻한 흙냄새가 맴돌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져서, 이제는 맨 팔을 내놓은 모습을 봅니다. 그들을 보는 제 정수리도 햇볕으로 조금 따가운 느낌이 듭니다. 매화는 만개해서 곧 시들어갈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고, 흙바닥에 핀 이끼도 색과 향이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도시의 광고판과 높은 건물들 틈새에서도 결국 변하는 것들을 목격하고 돌아왔죠. 도시의 휘황찬란한 스펙터클 사이로 이런 변모의 과정을 바라보기 위해 제가 택하는 전략은 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서요. 그러다가 떨어진 꽃잎이나, 저 멀리 그림자가 밟히면 그때 고개를 들어 확인합니다. 이 꽃은, 이 그림자는 누구의 것일지. 여러분의 도시 산보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은 초봄의 긴 산책에서 어떤 것을 얻고 돌아오시나요?
이번 라이브러리에서는 도시를 걸으며, 몸으로 사유를 이어가는 ‘산책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직접 산책을 나서지 않더라도, 책 속 산책자들이 마주한 도시 공간을 글로 체험하며, 사유의 길을 산책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