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자연을 담은
안도타다오 건축 여행

건축물을 통해
건물이 아닌 자연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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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가본 적이 있나요? 제주도에 가면 보통 무얼 하나요. 맛있는 걸 먹고, 자연을 즐기고, 바다를 보며 힐링하지 않나요. 필자는 홀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제주도의 자연을 즐기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고 그 테마가 분명한 여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의 멋진 건축물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물을 모두 방문하는 건축 여행을 다녀왔어요. 우리에게는 강원도의 ’뮤지엄산‘으로 익숙한 안도 타다오는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건축물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어느 곳보다도 재미있는 자연과 식생을 가진 제주도에 안도 타다오는 무려 세 개의 건축물을 세웠어요. 그 세 건물은 바로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와 ‘유민 미술관’, 안덕면의 ‘본태 박물관’입니다. 필자의 시선으로 담은 세 건축물을 들여다보며,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즐겨볼까요.

사진 유니


섭지코지의 끝
유민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먼저 소개할 두 건물은 섭지코지에 위치한 유민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입니다. 두 건물을 각각 소개하기 전 섭지코지의 끝, 이 두 건물과 넓은 유채꽃밭으로 가는 길부터 보여드리려고 해요. 섭지코지는 제주휘닉스 리조트 그 자체라고 해도 될 만큼 리조트가 거대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유민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까지 모두 관리하는 제주휘닉스는 주차장에 내려서부터, 혹은 투숙객이 방에서 나와서부터 섭지코지의 끝자락에 닿는 순간까지 그 산책로를 섬세하게 설계해 두었습니다. 갈대 사이를 걸어 바다와 유채꽃이 보이는 언덕까지 천천히 올라가는 길, 관람객은 굽이진 길을 따라 걸으며 키보다 높은 갈대 사이에 파묻히기도 하고, 다양한 식생이 한 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를 지나기도 합니다. 필자는 건축물에 다다르는 과정에서부터 제주도의 자연을 흡수하게 되는 경험이 관람객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1) 유민 미술관

그럼 본격적으로 첫 번째 건축물, 유민 미술관에 들어가 봅시다. 본디 명상의 공간으로 지어져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 건축물은 이제 유민 미술관으로 바뀌어 유럽의 아르누보 유리공예 작품을 전시하는 목적으로 쓰이고 있어요. ‘건축물’이라고 부르면 건물이 하나인 것 같지만, 유민 미술관은 입구의 매표소부터 미술관으로 입장하는 정원과 미술관 건물 그 자체까지 여러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요.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유민 미술관은 현재 6시가 지나면 무료 야간입장이 가능한데, 해가 지는 시간대의 정원과 미술관 앞까지의 길목을 볼 수 있어 저녁 시간대에 다녀왔습니다.

본디 명상의 공간으로 설계되었던 만큼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길에 만나게 되는 정원은 독특한 여러 질감을 관람객에게 제공합니다. 왼쪽에는 동그란 프레임 안에 푸른 잔디가, 오른쪽에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뾰족한 갈대가 한가득 채워져있죠. 나머지 공간에는 제주도 본연의 현무암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요, 이 길목 하나를 걸으면서 관객은 제주도의 다양한 식생과 물성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야외 공간인 만큼 단순히 이 장면을 보는 것을 넘어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고, 정원을 터전으로 이용하는 새들까지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정원이 주는 시각, 청각, 촉각적 경험은 굉장히 다채롭습니다.

정원을 지나면 거대하지만 잔잔한 폭포 사이에 난 길이 나오고, 이 구간을 지나 미술관 입구까지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어요. 물이 흐르는 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정원을 걷는 중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이 길에 들어서는 순간 고막을 가득 채웁니다. 여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물소리 말고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특유의 명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물소리가 들리는 복도가 끝나고 미술관까지 내려가는 길은 거대한 돌담과 콘크리트 벽 사이로 걷게 되는데, 거친 돌담과 매끈한 콘크리트 사이를 걸으며 자연스레 위로 올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되죠.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원에서부터 돌담길까지 걸으며 스트레스가 풀리는 평온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소리와 질감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설계라서 그것들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생각들이 물러나는 기분이었어요.

유민 미술관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바로 제주도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다는 것인데요. 콘크리트 벽 옆 자연스럽게 자리한 제주도의 전통 대문 양식 ‘정낭’이 보이시나요? 안도 타다오는 이 양식을 조화롭게 이용하고 싶었는지 콘크리트 벽 하나를 과감히 없애고 정낭을 세웠습니다. 또한 안도타다오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얇은 창문, 그러니까 슬릿 창을 돌담에 그대로 적용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주 의도적으로 돌담 사이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의 모습이 완벽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아요. 돌담과 제주도의 식생, 바다 그리고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장면에 안도 타다오 자신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를 한 장 스윽 끼워넣은 것까지. 제주도의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설계를 접목시킨 부분이 재미있는 건축물입니다.

2) 글라스하우스

유민 미술관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섭지코지의 한 꼭짓점에 세모난 건물을 여러 채 쌓아둔듯한 글라스하우스가 서 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와 곳곳의 슬릿 창, 유리 벽이 어우러져 특이한 질감을 뽐내는 이 건물은 해를 잘 받는 섭지코지의 끝자락, 태양의 정기를 받으며 정확히 지구의 동쪽이 되는 방향이라는 ‘정동향’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어요. 섭지코지와 바다가 조화를 이루듯, 해를 받아 노란빛을 띄는 노출 콘크리트와 푸른빛을 띄는 유리가 어우러지는 건물이죠. 사람들은 유민 미술관에 방문한 후, 혹은 섭지코지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 그대로 글라스하우스를 향해 걸어가 그 너머의 바다와 산책로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이나 오름이 아닌 곳에서 진득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이만한 곳이 없죠.

필자가 섭지코지의 ‘꼭짓점’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이유는 제법 명쾌합니다. 글라스하우스는 정동향을 바라보는 동시에 삼각형의 디자인을 설계 전반적으로 계속 이용해 그 방향성을 견고히 하는데요. 제주도의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뻥 뚫린 가운데 공간을 기준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섭지코지를 둘러싸고, 그 둘러싸고 있는 부분들 또한 그 자체로도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보이게 했죠. 제주도의 식생을 그대로 담은 정원은 그 산책로를 지그재그로 내면서 정원을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만들었어요. 산 모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자연에서 봤을 때 날카롭고 어색해 보일 수 있는 게 삼각형인데, 글라스하우스는 그 삼각형들을 계속 반복해 쌓아나가며 오히려 섭지코지 본연의 모습에 꼭 맞는 퍼즐을 끼워 넣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유민 미술관이 슬릿 창 너머로 성산일출봉을 보여줬다면, 글라스하우스는 건물 도입부의 거대하고 동그란 콘크리트 벽 너머로 성산일출봉을 담습니다. 방문객은 카페를 가든 산책로를 이용하든 이 곳을 지나며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 크기와 구성을 다르지만 의미는 유민 미술관의 슬릿 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제주도의 화산석. 그 너머로 보이는 성산일출봉까지. 이쯤 되면 안도 타다오가 노출 콘크리트를 어디에 세우고 싶어 하는지, 어떤 물성을 담고 싶어 하는지 어느정도 보이기 시작하죠?


한라산
본태 박물관

이번에는 제주도의 서쪽으로 넘어가 바다가 아닌 산 중턱으로 올라가 봅니다. 본태 박물관은 바다보다는 한라산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크게 눈에 들어오는 풍경 없이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커다랗게 조성된 연못과 나무들, 그와 함께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술관의 외벽입니다. 흐린 날씨 덕인지, 섭지코지의 사진과는 다르게 콘크리트는 조금 더 초록의 색을 띠고 그걸 비추는 연못도 차가운 색을 보여주죠. 노출 콘크리트의 매력은 이런 데서 옵니다.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콘크리트는 그 자연을 그대로 비추고 받아들여요. 날 좋은 섭지코지에서는 제주도 냄새가 났었는데, 이 사진에서는 오히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나요?

유민 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가 자연 한가운데 텅- 하고 놓인 건물 같았다면, 본태 박물관은 산 중턱 나무들 사이에 꽁꽁 숨어 소중한 것들을 콘크리트 벽으로 겹겹이 둘러싼 모양새예요. 콘크리트 벽을 따른 박물관 관람로가 직각으로 툭툭 꺾여 있는데, 그렇게 방향 전환이 될 때마다 다르게 겹쳐 보이는 콘크리트 벽들과 작품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 재미있는 곳입니다. 전시관은 여러 건물로 나뉘어 있어 중간중간 밖을 거닐게 되는데, 그때마다 보이는 야외 설치 작품도 좋지만 박물관 외벽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세 개의 건축물 중 본태 박물관만이 가진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콘크리트 벽 사이에 끼워져있는 기와집 담장이에요. 제주도의 특성인 화산암 돌담과 정낭을 이용한 앞선 두 건물과는 달리, 본태 박물관은 한국의 전통 기와집 양식을 그대로 따다 조금 더 깔끔하고 미니멀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또 안도 타다오 그답게 관람객이 꾸준히 물을 만날 수 있도록 했어요. 담장을 따라 걸으며 흐르는 물과 그에 비치는 건물을 감상하고, 유민 미술관과 동일한 방식으로 흘러내리는 까만 폭포로 물소리를 내어 관람객이 명상하는 기분을 내도록 해주죠.

여러 개의 전시관 중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전시관은 바로 현대미술품을 전시 중인 2관이었는데요, 콘크리트와 기둥만 보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전시관은 사실 바닥이 한국의 아파트처럼 마감되어 있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관람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말만 신고 따뜻한 바닥을 밟으며 현대미술품을 관람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이 새로웠어요. 특히나 계단을 맨발로 올라가는 일, 그리고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작은 방을 맨발로 지나는 일은 필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잡념 없이 미술품들을 관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른쪽의 방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명상의 방’이라는 작은 공간으로, 방과 방을 건너가는 사이 뜬금없이 머리 위 뚫려있는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게 되어있는데요. 박물관과 미술관은 전시품을 주인공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 곁을 거니는 사람의 감각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설계였습니다.

이제는 콘크리트 틈 사이로 보이는 자연물이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죠. 앞서 섭지코지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을 프레임에 담았다면 여기서는 복도 사이로 산방산을 담았습니다. 1층에서는 박물관 그 자체를 제외하면 보이는 것이 잘 없는 위치인데, 관람로를 높게 올려 귀신같이 산방산이 담기는 장면을 만들어냈어요. 그뿐만 아니라 이 시점에서 산방산을 바라봤을 때 산방산 아래로 다양한 색이 깔릴 수 있도록 색색의 자갈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식물을 그대로 심은 섭지코지의 건축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주도의 식생을 연출했네요.


필자는 여러 여행지 중 제주도만큼 특이하고 개성 강한 지역적 특징을 가진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제주도를 가면 자연을 위주로 즐기게 되지만, 안도 타다오만큼 진심으로 건축물에 자연을 녹여낸 설계라면 자연을 그대로 즐기는 여행보다도 더 깊게 자연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출 콘크리트는 그 자체로 강하고 거친 듯하지만 사실은 그 어떤 재료보다도 빛과 물, 바람을 그대로 투영하는 물성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를 이용해 제주도와 한국의 특성을 투영하려는 안도 타다오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게 바로 이 세 건축물이고요. 제주도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단순히 산행하거나 드라이브하는 일을 반복한 적이 있다면, 이 세 건물을 방문해 건축물과 자연, 미술품까지 모두 즐기는 건축 투어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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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더 밖으로 넓어지기 위해 더 안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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