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영화관
서로를 탐하는 예술

영상 미술과
영화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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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가 일상화되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진 미디어 아트의 연관 키워드는 영상, 조명,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맵핑, 미디어 파사드 등이다. 이는 상업적 뉴미디어 아트,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영역에 가까운데, 사실 미디어 아트는 보다 큰 범주를 포괄한다. 기술 발전의 흐름에 따라 미술이 대중매체를 포섭하면서 발전한 분야다. 사진, 비디오, 영화, 방송, 디지털, 게임, 가상현실 등 기술을 이용해 특정 매체와 예술 간 작용을 탐구한다. 결합하는 매체가 다양한 만큼 갈래도 많다. 미디어 아트의 종류는 꾸준히 생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에 대한 정의는 아직 뚜렷하게 내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미디어 아트의 많은 부분을 영상 미술이 책임지는 현상 속에서 고개를 드는 의문이 있다. 미술관으로 가야 할 작품과 영화관으로 가야 할 작품은 따로 있는 것인가? 미술관에서 상영되는 영상작업과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공유하거나 구분되는 지점이 뒤섞여 생긴 혼돈은 오히려 경계를 지우고 있다. 결국에는 영상 미술과 영화의 상호 영향성이 커지진 않을까? 서로 다른 예술 사이 경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영상을 표현하는
구성적 차원

<열병의 방>, 이미지 출처: 옵/신 페스티벌 2023
<열병의 방>, 이미지 출처: 옵/신 페스티벌 2023 공식 웹사이트, Kick the Machine Films

어떤 목적성을 위해 기술이 예술에 활용되는가에 대해 따져보면 영상 미술과 영화의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상 미술은 비디오, 사운드, 디지털 기술, 인터랙티브 설치 등을 통해 영상매체 자체의 특성을 부각하며 예술적 아이디어를 극대화한다. 이에 비해 영화는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위해 기술적 진보를 수단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영화적인 것은 서사성이 필연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미디어 아트의 한 종류인 비디오 아트가 등장했을 당시 이미 전통적 미술로서의 개념과 대비되는 시간적, 서사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내포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한편 영화는 반드시 스토리텔링만을 위한 예술로 제한할 수는 없기에 선을 분간하는 일이 더욱 모호해진다. 각종 대안 영화의 ‘서사를 벗어난 가치’에 관해서는 앞서 “스포주의를 주의하기”라는 아티클을 통해 다룬 바 있다.

미술인가, 영화인가, 심지어 연극인가 범주를 정의하기 어려운 무경계적 영상의 사례로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병의 방>이 있다. 2015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캄캄한 방으로 안내받은 관객들이 산발적으로 퍼져 앉아 파편적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하고 시간이 흘러 두 개로 나뉘는 스크린을 통해 분열된 시선의 감각을 마주하도록 한다. 극이 끝나면 스크린이 사라지고 뒤에 있던 막이 올라가며 이내 관객의 위치는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위치의 전복성을 강화하는 장치는 객석에 있는 프로젝터로부터 뻗어오는 강한 빛이다. 미술인 듯, 관객이 참여하는 연극인 듯 아리송함을 남기는 가운데 ‘이 작품은 여전히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견해와 ‘확장 영화’라는 말을 남긴 감독의 증언은 구분을 더 흐릿하게 한다. 또 2022년에 열린 민병훈 감독의 미디어 아트 개인전 ≪영원과 하루≫에서는 실제 속도보다 6배 느리게 찍은 영상으로 느슨한 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영화의 연장선에서 비롯했지만 작품은 분명 미술관에 걸렸다.

<매니페스토>
<매니페스토>, 이미지 출처: IMDb

비선형적 내러티브와 비연속적인 시청각 구조로 실험적 영상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홍지현 작가는 “실험 영화도 영화관과 미술관을 오가는 경우가 있는데, 대상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상영 무대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덧붙여 “두 영역에 걸쳐있거나 넘나드는 것도 있는 반면 화면 바깥의 요소들이나 상영되는 물리적 매체(TV나 컴퓨터)의 특성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작품은 비교적 명확하게 영상 미술로 분류되는 듯하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율리안 로제펠트의 <매니페스토>는 다채널 영상 설치 작업으로 미술관에서 선보인 이후 영화로 편집되어 나온 작품이라고 귀띔하기도.

그밖에 미술관에만 걸리는 영화적 설치 작품과 극장용 영화를 별도로 제작한 것으로 주목할 인물들에는 샹탈 아커만, 크리스 마르케 등도 있다. 이들은 실험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영화를 제작하며 미술관과 영화관을 모두 경유하곤 했다. 유추하건대 미디어 아트, 특히 영상 미술과 영화는 유동적일지라도 접점을 가지며 존재한다.


영상이 펼쳐지는
공간과 산업적 차원

영상이 펼쳐지는 공간과 산업적 차원
이미지 출처: Unsplash

구성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도 영상 미술과 영화가 서로에게 수렴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 예술은 정적인 결과물로서 심리적 상호 소통이 우선적인 데 반해, 영상 미술은 대중매체를 이용함으로써 심리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상호작용도 일으킨다. 물질의 개입은 참여와 몰입을 유도한다. 그리고 미술관 너머 공공장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되며, 공간 자체가 작품 일부로 녹아들기도 해 프레임 사이를 유영하는 관람성을 도드라지게 한다.

시크릿 시네마
이미지 출처: 시크릿 시네마 공식 인스타그램

이렇듯 개방성이 있는 영상 미술의 수용 방식과는 다르게 한자리에 앉아 수동적으로 영상을 거두어들여야만 하는 영화관의 표준적 원칙은, ‘서로에게 수렴한다는 말’을 모순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관의 기능은 다변화하고 있으며 영화적 경험의 공간이 꼭 극장일 이유도 없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시크릿 시네마(Secret Cinema)는 참여와 몰입을 가능케 하는 영화 산업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시크릿 시네마라는 이름에 충실하며 상영 영화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이벤트 무대를 어딘가에 재현한다. 참여 티켓을 산 이들은 초대장을 받고 요청된 드레스코드를 지켜 비밀 장소로 향한다. 영화 ‘관객’은 ‘체험객’이 된다.

본격적인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 아니라도 최근 영화관은 관객의 능동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며 흥을 발산하고 다른 관객과도 관계를 맺는 싱어롱관이 생긴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보는 이의 지각을 다층적으로 활성화하는 비관습적 영화 상영 방식은 현시대에만 국한된 산물은 아니라는 기록도 있다. 반대로 공연 실황을 그대로 감상하거나 세계 곳곳의 유명 미술관과 작품 및 예술사를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영화관은 어떤 기능을 한다고 해석해야 할지 질문을 남긴다.


모호해지는 경계성

국경 저편에
국경 저편에, 이미지 출처: 샹탈 아커만 재단 홈페이지

영화는 태생적으로 회화, 연극, 문학, 음악 등의 자취를 포함했고 역설적으로 그로부터 독립할 여지를 찾으며 고유성을 발견했다. 영화는 장엄한 걸작이나 예술적 결과를 인용하면서도 기술을 흡수하며 이웃한 예술의 영향력 바깥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 과정은 매체 기술을 활용하는 미술에 역방향으로 침투하고 이로 인해 빚어진 결과가 다시 영화에 변형을 가하는 중첩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미술관과 영화관 어디에나 속하고, 혹은 어디에나 속하지 않는 대상은 대안적, 실험적이라는 특질로 두루뭉술하게 묶인다.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아 남겨진 것들을 거둔 ‘탈장르이자 복합장르 예술’은 영화가 그러했듯 여러 예술의 흔적 위에 세워진 독자적 예술이 될 수 있을지 바라보게 된다.


최신의 예술 경향은 예술가와 비예술가가 변화하는 주변 세계와 소통하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틀림없다. 발전한 기술이 예술에 도입되면서 현대 예술가들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전에 없던 현실을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술 간 경계성이 옅어지고 낯선 예술 형태가 등장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자리 잡고 있고 어떻게 호응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일은 세계와 나의 관계를 파악하는 시도다. 꾸준한 시도가 만들어내는 잔물결은 예술을, 삶을 자극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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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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