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웹소설을 읽는가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또 다른 세상
웹소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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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 최초로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를 조사해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를 통해 밝혀진 웹소설 이용자 수는 약 587만 명, 시장의 규모는 1조 390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웹소설을 본다고 대답한 이용자 5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매일 웹소설을 봤다’는 이용자가 34.5%로 가장 많았다. 매일 웹소설을 보는 이용자가 있다는 것은 콘텐츠 시장의 성장으로도 이어진다.

오픈서베이의 <웹툰·웹소설 트렌드 리포트 2023>를 통해 웹소설 이용자들의 유료 결제 경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유료 결제 경험이 높은 웹툰 이용자의 유료 결제 경험이 67.6%인데 반해, 웹소설 이용자의 유료 결제 경험은 85.0%에 달한다. 월평균 지출액도 17,370원으로 웹툰 이용자들의 월평균 지출액인 12,150원을 5,000원 이상 앞선다. 다시 말해 웹소설 이용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돈을 지불하고, 월평균 2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이용자들의 콘텐츠에 대한 선호와 효용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웹소설 시장이 서브컬처, 비주류를 넘어 이미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 웹소설 시장의 지속적인 양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편에서는 “그래봤자 인터넷 소설이지 않냐”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으로, K-콘텐츠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웹소설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웹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1) ‘이모티콘’ 소설의 시작

웹소설
이미지 출처: Unsplash

‘웹소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작품을 ‘웹’에 공개하고 작가가 ‘웹’으로 소비하는 소설을 ‘웹소설’로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성작가가 웹에 작성한 소설은 물론, ‘귀여니’로 대변되는 ‘인터넷 소설’까지 웹소설의 범주에 포함된다. 웹소설 명칭은 포털이 2013년 ‘웹소설’이라는 단어를 비즈니스적으로 사용하며 본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인터넷소설 작가 ‘귀여니’는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등을 연재해 조회수 800만 이상을기록하고 , 종이책만 300만 부 이상을 판매 해 ‘귀여니 신드롬’을 일으켰다. ‘귀여니’의 등장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1020 통신 문화와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인터넷 소설의 대표적인 특징인 ‘이모티콘’의 활용이다. 실제로 인터넷 소설에는 당시 10대가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하던 이모티콘, 유행어, 통신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요 독자층인 1020 또래에겐 인터넷 소설을 찾게 하는 이유가 되었지만, 일각에서 “이게 소설이냐”는 혹평을 듣게 된 것도 인터넷 소설이 이처럼 기존의 소설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평 속에서도 인터넷 소설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살아남아, 현재 웹소설 시장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2) 인터넷 소설이 웹소설에 남긴 것

이미지 출처: Unsplash

그렇다면 인터넷 소설은 현재의 웹소설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첫째, 작품 창작과 향유에 ‘인터넷’을 포함하며 새로운 독서 경험을 만들어냈다. 먼저 읽는 방식이다. 화면에 인터넷 소설을 띄우고 마우스로 드래그하며 인터넷 소설을 읽는 형태는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려 웹소설을 읽는 현재의 독서 경험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웹소설이 등장했을 때 이용자들이 큰 거부감없이 웹소설의 독서 방식을 받아들인 것은, 이와 같은 인터넷 소설의 독서 경험을 채득한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 소설은 인터넷의 비선형성·쌍방향성·멀티미디어성을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완결된 책 한 권을 읽는 기존의 독서와 달리 실시간 연재를 통해 이뤄지는 인터넷 소설은 독자가 다양한 경로로 이야기를 탐험할 수 있으며, 독자와 작가는 쪽지와 댓글, 그리고 인터넷 게시물 등으로 실시간 소통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BGM, 비디오, 이미지를 삽입해 텍스트 외의 요소로도 작품에 대한 몰입을 유도하는데, OST, 오디오 드라마 등을 발매하는 현재의 웹소설 시장과 닮았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창작과 소비가 긴밀하게 연결됐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연재되는 인터넷 소설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오픈된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소비자를 창작자로, 창작자를 또 다른 소비자로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창작자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많은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소설이 ‘양판소’의 산실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빌미가 되기도 했다. 창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수많은 작가가 출현했지만 독창적인 세계관과 작품성을 가진 판타지 소설 대신 기존의 작품 세계관을 모방하거나 아예 그대로 베낀 품질 낮은 인터넷 소설들이 대량 출간되면서 ‘이렇다할 특색과 깊은 사색 없이 정형화된 양산형 판타지 소설’ 즉, 양판소라는 비판적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a)


웹소설 편견 걷어내기

1) “웹소설에 무슨 ‘내용’이 있나요?”

웹소설 원작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미지 출처: tvN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웹소설의 경우, 원작 팬들이 “원작을 잘 살려주면 좋겠다”는 글이나 각색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원작이 더 재미없던데”, “작품성이 뭐가 있냐”는 식의 조롱어린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지금도 종종 보인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호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장르와 작품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웹소설 작가를 겸하는 이융희 문화연구자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가 화제가 될 때마다 “웹소설은 완성도가 낮다”는 편견이 꼭 따라온다고 지적하며 2018년에 겪었던 일을 공개했다. 한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할 당시,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각색의 정도가 심해 주인공의 성별부터 이야기 전반이 변경되었고,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과정에서 각색 담당자와 설전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웹소설을 대폭 수정한 이유가 ‘극적 아이러니’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들은 이융희 연구자는 기고 글을 통해 “서사적 완결성과 극적 개연성, 아이러니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웹소설의 완성도를 영화와 드라마의 완성도에 맞추는 것이 옳은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2) 미완의 콘텐츠가 가진 ‘작품성’

이미지 출처: Unsplash

수많은 이들이 웹소설의 작품성에 의문을 표한다. 웹소설의 문학적인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로 갖추는 완성도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기존 콘텐츠와의 비교를 통해 출발한다.

웹소설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독자가 보는 대표적인 미완의 콘텐츠다. 기존 소설, 영화 등은 기본적으로 완결된 콘텐츠라 독자가 숨겨진 복선, 캐릭터의 서서와 갈등을 한 번에 인지하고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웹소설은 다르다. 미완의 연재물을 편당 결제하며 이용한다. 한 편당 분량은 5,000자를 넘지 않기 때문에 독서 시간도 최대 5분을 넘기지 않는다. 여타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향유 시간이 월등히 짧고, 여러 실태 조사에서 웹소설 이용자들이 평균적으로 8개의 웹소설을 본다고 답한 것과 엮어 생각하면 각 웹소설의 모든 서사 구조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웹소설 창작자들은 이용자가 다음 편을 결제하며 완결까지 잘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한 회 한 회가 중요해지다 보니 작품 후반부에 극적인 아이러니를 삽입할 수 있는 기존의 콘텐츠 문법을 따라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각 회차에 집중해야 하는 웹소설 장르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웹소설의 작품성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왜 웹소설을 보는가

1) 개인의 욕망과 취향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

이미지 출처: Unsplash

오픈서베이의 <웹툰·웹소설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웹소설 이용자들은 웹소설 작품 선택할 때 소재/키워드/스토리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게 고려한다고 대답했다. 장르는 작품 선택의 2위를 차지했으며, 재미있게 본 다른 작품과의 유사성도 5위를 차지했다. 이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소재나 키워드, 재미있게 본 작품과의 유사성을 어떻게 확인할까? 바로 ‘해시태그’를 활용한다.

해시태그는 웹소설의 대표적인 문법 중 하나로, 작품을 세분화해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SNS에서 해시태그는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과 연결하는 장치가 되는데, 자신의 선호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는 웹소설 이용자들에게 알맞은 문법이다. 같은 장르라고 해도 다 같은 형태가 아니다. 장르는 점차 더 세분화 되고 있다. 로맨스 장르도 시대물 장르가 있고 현대 로맨스 장르가 있다. 남자주인공의 후회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과 ‘악녀’ 캐릭터의 활용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 등, 이용자들의 취향도 세부 장르에 따라 갈린다. 이때 해시태그가 소재와 취향을 파악하는 방식이 된다. 자신의 욕망과 취향을 잘 몰랐던 이용자들도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개념화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추후 다른 작품을 선택하는 또 다른 기준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렇게 웹소설은 초개인화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과 취향을 찾고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된 것이다.

2) 동시대 욕망까지 담아내는 이야기

네이버 시리즈
이미지 출처: 네이버 시리즈

웹소설은 개인의 욕망뿐 아니라 동시대의 욕망까지 담아낸다. 웹소설 작가이자 연구가인 손정원은 “웹소설은 한국 사회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장르다”라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여성향 장르인 ‘로맨스’ 장르는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장르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완벽한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수동적인 로맨스 형태에서 강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거나 악녀를 재해석하고, 여자 캐릭터 간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하는 등 변한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들의 새로운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 소설 동호회를 시작으로 성장한 한국의 판타지 장르는 IMF 시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드래곤라자>의 이영도,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 등 대표적인 작가들이 이 시기에 대거 등장했는데, IMF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도피에 대한 욕구를 판타지 장르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웹소설 시장의 성장에도 동시대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된 한국의 소비자들은 점점 더 가벼운 콘텐츠를 선호하게 됐다. 웹소설은 긴 문장과 모호한 표현 대신 직관적이고 짧은 문장으로 이용자가 깊은 고민을 하지 않게 돕는다.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볼 수 있는 웹소설 향유 형태 또한 복잡한 향유 과정을 삭제하고 축약해, 이용자와 사회가 기대하는 가벼움을 적극 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웹소설 편견을 넘어
작품에 주목할 때

네이버 시리즈
이미지 출처: 네이버 시리즈

2019년 공개된 <네이버 시리즈에서 인생작을 만나다>는 수애, 김윤석, 변요한, 이제훈 등의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네이버 대표 웹소설을 재연했다. 광고는 공개 5개월 만에 공식 유튜브 채널 총조회수 860만회 이상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해당 광고를 기획한 네이버웹툰의 마케팅팀은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웹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웹소설은 작품성과 관계없는 인터넷 소설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고, 웹소설의 작품성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광고가 공개된 후 “오글거리거나 유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배우의 입으로 들으니 영화 대사 같다”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이처럼 ‘웹소설’이라는 장르의 편견은 걷어내고 작품의 본질에 집중하면, 웹소설의 전혀 다른 얼굴까지 만나볼 수 있다.


2022년 SF어워드에서 연산호 작가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가 웹소설 대상을 받았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21세기 말 3,000m 아래 세워진 국제 해저 기지를 배경으로 하는 재난물이다. 재난물 웹소설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수많은 이들이 자극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재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인간다움’에 집중한 소설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타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주인공들을 통해 사회가 잊어가는 협력과 공존을 쉼 없이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회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내는 소설을 ‘웹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납작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딱 하나. 지금 이 순간도 웹소설은 수많은 편견 속에서도 누군가에겐 인생작으로 읽힐 순간을 기대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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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좋아하는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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