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은 처음에는 흔히 말하는 ‘씨네필’들을 위한 작은 관에서 상영되었지만, 그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관객 수가 늘어나면서 큰 관에서 상영하고 심지어는 매진까지 시키는 영화가 됐습니다. 애초에 그 장르부터 생소한 ‘장편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는 마치 귀엽기만 할 것처럼 우리를 극장으로 불렀지만 그 안에 ‘인연’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디테일로 가득한, 어른들을 위한 영화였죠.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극장 내에 아이들이 많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게 어쩌면 이 영화의 매력이랄까요. 필자는 당신이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큰 위로를 받아 올 수 있도록 영화 <로봇 드림>의 포인트를 짚어 왔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로이 살아가던 ‘도그’가 직접 조립한 ‘로봇’과 함께 생활하며 겪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담았습니다. 도그와 로봇은 손을 잡고 뉴욕의 곳곳을 활보하며 둘도 없는 단짝이 되지만, 함께 쌓는 행복한 기억은 너무 짧게 지나가는데요. 오히려 이별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타인과의 사랑과 이별. 그 모든 과정을 이 영화는 굉장히 짧고 명료하게 담고 있어요. 이토록 가슴 아픈 내용을 우리에게 따뜻하게 건네는 이 영화에는 그 스토리 외에도 다양한 매력이 있습니다.
80년대의 뉴욕을 담은 애니메이션
이 영화는 80년대의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합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많지만, 애니메이션 중 뉴욕을 이토록 생경하게 담은 영화가 또 있을까요. <로봇 드림>은 카메라로 찍은 게 아닌, 그림으로 구현한 영화이기에 어떤 도시와 닮으려면 그 의도가 분명해야만 하는데, 뉴욕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경험이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이 좋은 영화입니다. 집을 나와 맨해튼 거리 한복판을 걸어 다닐 때 보이는 표지판들과 상점들, 지하철의 시민들.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 앉아 물멍을 때리며 음식을 먹는 흔한 뉴욕커들의 일상. 이 모든 디테일은 동물들이 주인공이고 개가 로봇을 사는 말도 안 되는 세계관에 묘한 현실감을 더해 줍니다. 이는 비록 만화지만 관객들에게 당신의 인생,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겠다는 일종의 신호가 아닐까요?
수많은 디테일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데, 저 멀리 ‘쌍둥이 빌딩’이라고 불리던 전 세계무역센터가 서 있죠.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당연히 등장하는 게 맞지 않나 싶지만, 9.11테러 이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에서는 쌍둥이 빌딩을 다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그럼에도 <로봇 드림>은 아주 의도적으로 옥상이나 전망대에서 쌍둥이 빌딩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쌍둥이 빌딩은 건물의 실루엣만 봐도 가슴이 찡해질 정도로 뉴욕의 이별과 아픔을 상징하기에, 어쩌면 관객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이별’에 대한 위로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뉴욕이라는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가장 외로운 도시이고, 가장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는 도시이자 가장 많은 실패와 설움을 겪는 도시인데요. 이런 도시에 대한 디테일에는 영화와 그 배경에 대한 감독의 진득한 애정이 묻어나네요.
Do you remember?
영화의 초반, 로봇과 처음으로 센트럴 파크에 방문한 도그는 스케이트를 신고 로봇과 함께 춤을 출 생각으로 노래를 하나 틉니다. 그 노래는 바로 누구나 들으면 익숙할 ‘Earth, Wind and Fire’의 노래 <September>. 둘은 이 노래를 틀어 두고 마치 수년은 손발을 맞춰 본 사람들처럼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 주변으로는 센트럴파크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마냥 흥겹고 신나는 장면이 전개됩니다. 노래는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펑키하고 신나지만 사실 그 가사를 제대로 들어보면 지난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애처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September’는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해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어 영화 내내 흐르는 테마곡이 됩니다. 신나는 분위기 속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가사의 내용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듯하네요.
무언극을 가득 채우는 재즈
<로봇 드림>은 사실 대사가 없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대사만 없을 뿐 세상의 소리와 배경음악이 있기에 무성 영화는 아니지만, 아마 무언극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 영화를 중요하게 이끄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경음악입니다. 위에서 말한 주제곡 ‘September’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사가 없는 노래로 이루어진 사운드트랙은 스페인의 음악감독 ‘엘폰소 빌라론가’가 맡았습니다. 슬픈 피아노곡부터 힘차게 달리는 듯한 드럼 베이스의 곡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하나의 재즈 앨범이었어요. 사운드트랙 앨범을 듣다 보면 꼭 영화 <라라랜드>가 생각나기도 해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이별을 지나 새로운 행복을 찾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미 <라라랜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지만, 음악 또한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도그가 썰매를 타고 위험한 산길을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긴박한 스네어와 드럼 소리가 가득한 재즈가 흐르고, 위 사진에서 보이는 로봇의 꿈 장면에서는 탭댄스 소리를 배경으로 활기찬 재즈가 흐르는데요. 그 연출이 관객들 입장에서는 더욱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위의 장면은 고전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오마주한 장면이라고 하는데요.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의 오마주 장면이 등장하니 잘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그 형태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사랑이었다
이 영화의 소개글이나 리뷰를 보다 보면 ‘우정’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등장하는데요, 필자는 이 둘의 관계를 우정에 국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봇 드림>에는 사람,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종이 등장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가 동물이거나 로봇(혹은 눈사람)이고 그 어디에도 인종과 성별이 존재하지 않죠. 그래서 관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관계들을 두고 많은 것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로봇과 도그는 연인이고, 가족이며, 친구 혹은 정말 로봇과 주인의 관계일 수 있겠죠. 관객들 사이에서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그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가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사이이든 서로를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연인 말고도 많은 존재들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게 되는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런 모든 존재와 그 모든 이별에 대해 다루고 위로하고자 강아지와 로봇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져온 것일지도 몰라요.
이별의 완성은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일에서 시작된다고들 합니다. 영화 내내 우리는 도그와 로봇의 재회를 꿈꾸고 희망하며 끝없는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지만, 차츰 이 두 캐릭터의 재회보다도 행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응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관객이 두 캐릭터의 행복만을 바라는 상태가 되었을 즈음 영화는 둘이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캐릭터 스스로 재회할 기회를 저버리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우리는 너무 큰 위로를 받아요. 언제나 잃은 관계, 잃은 사랑에 대해 아쉬워하는 게 인간이지만 새로운 행복과 사랑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 또한 인간인지라, <로봇 드림>의 결말은 우리가 이별한 과거 그리고 행복할 미래 모두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별을 했나요? 이별 이후에 어떤 행복을 찾았나요? 우리는 또 어떤 이별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