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지 않는
당신의 속사정

연애 리얼리티의 범람 속
연애하지 않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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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리얼리티 예능 열풍이다. <환승연애>의 인기를 시작으로 <나는솔로>, <솔로지옥>, <돌싱글즈>, <남의 연애> 등 프로그램의 포맷도, 담아내는 연애 유형도 다양하다. 반면 현실에서 사람들은 점점 연애를 멀리하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진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과정에 감동하며 여러 명과 돌아가며 데이트하는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볼 뿐, 감정적 파도가 실제 연애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왜 이런 괴리가 발생할까? 오늘날 사람들에게 연애는 어떤 의미일까? 이번 아티클에서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은 이유를 살펴보고, 왜 실제 연애로는 이어지지 않는지 알아보자.


다채로운 감정이 오가는
연애 리얼리티들

1) <환승연애>, 누구나 엑스(ex)는 있다

<환승연애3>가 티빙 누적 유료가입기여자수 역대 1위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환승연애3>가 티빙 누적 유료가입기여자수 역대 1위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이미지 출처: 앳스타일

<환승연애>는 연인 간 금기시되었던 ‘환승’이라는 소재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지난 시즌 1,2의 흥행에 힘입어 시즌 3까지 제작되었고, 최근에 막을 내렸다. <환승연애3> 공개 12주차 만에 관련 클립 영상 누적 조회수 2억뷰를 돌파하는 등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는 대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환승연애2> 해은의 서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환승연애2> 해은의 서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이미지 출처: 환승연애 유튜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이 ‘구(ex)’ 연인이기 때문이다. 구 연인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다. 구 연인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은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보편성은 연인과 한 공간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설정이 다소 비현실적이어도 사람들이 충분히 극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든다. 이성으로 판단하면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관계의 오묘함에서 오는 역설이 ‘나도 그럴 것 같다’는 공감을 자아내는 포인트인 셈이다. 출연진이 느끼는 질투, 서운함, 상실감, 미련 등은 오롯이 시청자의 이전 연애 혹은 현재 잊지 못한 시청자의 몫이 된다.

더불어 <환승연애>엔 새로운 인연에 대한 희망도 있다. 전 연인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람과 즐겁게 데이트를 한다. 실제로 새로운 인연을 찾는 이들을 보면서 시청자도 지난 과거를 딛고 새로운 챕터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더하여, 전 연인과 다시 이별하는 것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오롯이 내 선택이다. 주체적으로 연인을 선택하는 이들을 보며 연애의 중요한 요소인 ‘성장’을 한 번 더 깨닫게 된다.

2) <솔로지옥>, 연애 리얼리티 서사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

<솔로지옥>은 여성의 수영복 착용, 남성의 상의 탈의를 부각한다.
<솔로지옥>은 여성의 수영복 착용, 남성의 상의 탈의를 부각한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솔로지옥>은 비주얼이 출중한 싱글을 섬에 가두고 누군가와 커플이 되어야 섬을 탈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솔로지옥3>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톱10’(2023년 12월 25일~31일) 차트에서 1940만 시청시간, 220만뷰(시청시간을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비영어권 7위를 기록했다. 특히 <솔로지옥>은 비슷한 해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투핫>보다 스킨십의 수위는 낮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노출을 강조하는 포맷이다.

<솔로지옥3>의 혜선은 자신의 매력을 알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캐릭터다.
<솔로지옥3>의 혜선은 자신의 매력을 알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캐릭터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이러한 노출은 출연진의 캐릭터와도 궤를 같이한다. 가장 최근작인 ‘솔로지옥3’는 주체적이고 솔직한 여성 캐릭터들이 여성들의 많은 공감을 샀다. 자신의 매력을 알고 솔직하게 자기 표현을 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남성 출연진에 ‘사이다’를 날리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은 현실 세계 여성들이 연애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연애 리얼리티에서 수동적, 소극적으로 그려졌던 여성의 모습과 달리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주관과 생각을 당당히 피력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솔로지옥>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한 이유이다.

3) <나는솔로>, 이것이 현실 연애다

<나는솔로> 모태솔로편.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봤을 뿐, 그 외의 조건은 우리와 비슷하다.
<나는솔로> 모태솔로편.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봤을 뿐, 그 외의 조건은 우리와 비슷하다.

<나는솔로>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여성, 남성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같은 테마로 묶인 여성, 남성들이 4박 5일동안 숙소에 모여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미션을 하며 서로를 탐색한다.

<나는 솔로>의 공감 포인트는 바로 진정성이다. 이 진정성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을 출연진으로 섭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출연진은 가명을 사용하지만, 자신의 나이, 직업, 이상형 등을 직접 공개하고 각자의 욕망과 감정선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출연진들이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매우 자연스럽다. 다른 연애 프로그램들은 간질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연출하는데 공을 들이지만, <나는솔로>는 음악도 거의 배제한 채 날 것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이들이 결혼 혹은 연애를 원하는 이유도 우리와 비슷하다.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마음,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 일에서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 등 우리와 비슷한 일상과 삶을 살아가며 ‘별다를’ 것 없는 로맨스를 꿈꾼다. 특히 이들은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느라 사랑을 놓치는 소시민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행복한 결실을 지켜보며 위안을 받는다.


연애 앞에 주저하는 사람들

앞서 본 것처럼 사람들은 연애 리얼리티에 열광하지만, 정작 자신의 연애는 뒷전이다. 연애 리얼리티에서 얻는 행복감이 실제 연애의 동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연애하지 않을까?

1) 사치스러운 이름 ‘연애’

연애
이미지 출처: unsplash

청년들에게 연애는 사치재다. 경제적인 면을 차치하고도, 요즘 청년들은 ‘생존’하는 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감정을 나눌 여력이 없다. 데이터 컨설팅 기업 PMI에 따르면 전국 미혼남녀 20~59세 1,174명 중 75.8%는 현재 연애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에서 스펙 쌓기 이외의 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꾸준한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조차 부담을 느끼는 지금, 누군가 만나서 돈을 쓰고 감정 소비를 해야 한다는 것에 피곤함을 느낀다. 국무조정실에서 조사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의 청년 1인가구 생활비 중 3분의 1이 식료품비와 주거비에 쓰인다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혼자가 편하다’는 말이 더욱 쓸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싶은 욕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연애 리얼리티를 통해 값싸고 간편하게 연애적 자극을 얻는다. 이는 미디어의 연애가 더욱 자극적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자는 설렘, 배신, 이별의 아픔 등 연애에서 비롯되는 모든 과정을 짧은 기간 내에, 간접적으로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연인의 환승,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명과 데이트 하는 상황, 해결하기 어려운 미션 등 이는 모두 연애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할 장치인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정주행’하고 나면 연애의 한 사이클을 돈 것과 같은 감정 소모와 동시에 만족감이 큰 이유도 이러한 이유가 크다.

2) 가벼운 것이 좋아

이미지 출처: 왓챠

혼자 지내는 자유로움과 편리함이 익숙해진 사람들은 과거처럼 연애에 무겁고 엄숙한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모호한 상태로 두고, 단지 서로 좋아하고 즐기는 사이임을 상호간에 전제한다. 즉, ‘시추에이션십(Situationship)’, 헌신과 낭만 대신 욕구와 필요 충족을 연애의 목적으로 두는 보다 가벼운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연애와 사랑에 대한 개념 변화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연애가 사랑으로 이상화되며 결혼을 연애의 종착지로 여겼으나,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되면서 연애 자체도 가벼운 감정 교류 정도로 인식되었다. <솔로지옥>, <투핫>, <템테이션아일랜드> 등에서도 이러한 사랑관, 즉 언제든지 사랑은 시각적, 육체적 자극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어떤 권리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 자아실현이 우선되는 사회이다. 개인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관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연애는 두 사람간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행위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혼자 지내는 자유로움과 편리함이 익숙해진 상태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은 불필요한 부담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시추에이션십 문화를 이끄는 Z세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하여 물리적, 심리적으로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둔 소통을 선호한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Z세대는 관계에서 지나치게 친밀해지거나 농밀한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툴레인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Z세대는 관계 자체가 발전하는 것조차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Z세대는 개인의 영역이 침해되거나 감정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부유하는 관계, 정착하지 않는 사랑, 사랑 없는 연애. 낭만적 사랑의 말로가 관찰되고 있다.

3) 연애 없이 충만한 삶

이미지 출처: unsplash

연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가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유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것 또한 자유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연애 대신 자신의 열정을 쏟을 일과 취미 활동을 찾는다. 연애에서 오는 도파민을 대체할 수많은 건강한 통로가 존재하며, 연애 외에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보람을 느낄 방법이 다양해졌다.

연애가 사라졌다고 사랑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다.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사랑은 연인간의 연애를 전제로 했다. 현재는 우정을 큰 사랑의 외연으로 보기도 하고, 반려 동물에 대한 사랑, 자기애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랑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정립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노력은 연애와는 별개로 개인의 행복에 큰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연애하지 않는 현상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랑에 대한 인식과 실천 양상 또한 달라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개인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연애 없이도 충만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행복의 방식을 찾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4) 연애, 어쩌면 위험한 유혹

데이트 폭력
이미지 출처: 국민일보

연애가 항상 행복한 경험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연애로 인해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총 1만3939명으로 2020년(8951명) 대비 55.7% 증가했다. 데이트폭력 범죄 신고 건수도 4년 동안 2만7000여건이 늘어나 7만7150건을 기록했다. 그러나 구속 수사를 받는 피의자 비율은 수년째 1~2%대에 머물고 있다. 작년 검거된 데이트폭력 가해자 1만3939명 가운데 구속 수사를 받은 인원은 310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추가적인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부담이 오롯이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다. 알보젠코리아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6개월 내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 남성 각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여성의 경우 93%가 임신 불안감을 느껴봤다고 답했다. 연애 리얼리티에 열광하는 주 시청자 성별도 여성이지만, 실제 연애는 여성에게 공포와 불안과 동행하는 선택인 셈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연애는 필수처럼 여겨졌다. 자신의 경제 사정이 ‘연애 할 만큼’ 넉넉하지 않아도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삶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나아지는 삶도 있지만, 궁핍한 삶 속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도 지금까지 많이 봐오지 않았는가. 과거와 가장 큰 차이점은 많은 사람들이 연애를 자신의 선택으로 본다는 것이다. 둘이 함께 한 발씩 딛고 서 있는 삶보다 혼자라도 오롯이 두 발로 서 있는 삶을 지향한다. 어쩌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진짜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 지금이 사회가 성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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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

해상도 높게 사랑하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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