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듯 자연을 기록하는
우고 론디노네

낭만적인 일기를 쓰듯
우주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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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산, 강, 바다 등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 생성, 발전하는 것을 칭합니다. 주로 우리가 쓰고 있는 자연이란 낱말은 서구의 ‘nature’를 번역하여 들여온 것으로, 중세 기독교 신학에서 비롯된 인간에 의해 정복되어야 할 것이란 관념과 17세기 과학혁명 이후의 자연주의적 관점 등이 함께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을 보는 행위를 분석적으로 비교하며, 개념을 잡아내기도, 이름을 붙이며 종을 나누는 행위로 구성하곤 합니다. 이에 대척점에 서며 숭고한 에너지를 동경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자연에서 빌려온 낭만과 인공물을 조화로이 작품 속에 담아냅니다. 작가의 이름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그가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낸 우주를 읽어보고자 합니다.


간단명료하지만
독해가 필수인 작품들

우고 론디노네
이미지 출처: 포도 뮤지엄

스위스 출신의 론디노네의 작품은 주로 돌, 나무 같은 원초적인 자연물과 상반되는 특유의 사이키델릭한 인공적인 색상으로 구성되어 대체로 쉽고 간결해 보입니다. 간결해 보이지만 그의 작품에는 자연적인 낭만, 숭고함, 재료에 깃든 에너지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시와 같이 공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는 응축된 자연의 에너지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론디노네의 작품은 시와 같아서 어느 정도의 독해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관람객이 독해를 하지 않는다면 그를 그저 ‘돌 쌓는 작가’쯤으로 치부하게 됩니다.


대지의 초월적 에너지와
시간을 품고 있는 재료

≪HUMAN NATURE≫ 전시 현장
≪HUMAN NATURE≫ 전시 현장, 이미지 출처: 우고 론디노네 공식 웹사이트

그의 작품에서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거대한 돌은 자연을 상징하며 시간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암석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그 시작을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인류가 계속 진화하고 변모했던 자연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사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돌을 작품에 주로 사용하면서 압축된 자연,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인공적인 도료로 칠해진 거대한 돌은 강렬하고 인공적인 색상, 압도적인 크기로 물질적 존재를 무언의 여백을 두며 유지하며 고고히 뽐냅니다. 그 공허한 공간 사이사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용히 침묵하며 고요하게 응시하는 방법으로 마침내 우리 스스로가 성찰할 수 있게 안내합니다.

2013년 뉴욕의 맨해튼에 설치된 ≪HUMAN NATURE≫는 주변의 높은 건물과 대조를 이루는 거대한 청석으로 고대 신상처럼 보이는 돌상 형태의 작품입니다. 각각의 돌상은 “THE FREE(2013)”, “THE SPIRITED(2013)” 등 특정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현대문명의 발전이 압축된 록펠러 플라자 앞의 돌상들은 말 그대로 자연의 원형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무수한 발전의 시간을 지닌 자연의 기록물 혹은 인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태초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는 돌처럼 맨해튼을 걷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도 인류의 시간을 담고 있음을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무수한 발전의 시간을 지닌 돌상이 고도로 발전한 낯선 도심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요.

≪Seven magic mountains≫전시 현장
≪Seven magic mountains≫전시 현장, 이미지 출처: 우고 론디노네 공식 웹사이트

이후 2016년 라스베이거스 남쪽 사막에 진행된 ≪Seven magic mountains≫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전시로 회자됩니다. 알록달록한 형광색으로 칠해진 석회암 바위로 이루어진 30피트의 높이의 7개의 작품은 각각 “BLACK BLUE YELLOW WHITE RED MOUNTAIN(2016)”, “VIOLET PINK RED ORANGE YELLOW GREEN MOUNTAIN(2016)”등 칠해진 색깔이 차례로 나열된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막 한복판에서 태양과 달, 바람과 함께 여백을 남기면서도 충만하고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합니다. 연출된 풍경 속에 존재하는 관람객은 물질을 발견하는 태도 대신 오롯이 자연 속에서 관념에 집중하며 사유하게 됩니다.

≪NUNS + MONKS≫ 전시 현장
≪NUNS + MONKS≫ 전시 현장, 이미지 출처:Ugo Rondinone 공식 웹사이트

2020년부터 시작된 연작 “nuns+monks”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r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바다의 수도승(Monk by the sea)”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본래 작은 크기의 석회암으로 제작된 조각은 작가가 스캔하고 확대하며 청동 주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암석이 가지고 있는 내밀한 특징을 포착하여, 세밀한 질감과 거대한 비율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영겁의 시간과 함께 응축하여 담아냅니다. 하나의 거대한 돌 위에 다른 색상의 작은 머리를 올린 의인화된 조각들은 신의 대리자인 수녀와 수도승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거대한 크기로 짓누르기보다는 공허한 공간 사이사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용히 침묵합니다. 여백 안에서 관람객을 환영하며, 거칠게 깎인 작품의 표면은 불안정한 독단성보다는 치유자의 풍성한 옷자락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작품 사이를 걸어다니는 관객에게 직접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그저 어떠한 동요도 없이 고요하게 응시하는 방법으로 친절한 인내를 건냅니다. 이처럼 론디노네의 작품에서 돌은 자연의 시간을 품기도, 사유의 시간을 발산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인공물인가 자연물인가

공통적으로 우고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공과 자연,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이지만 독자들은 의아할 것 같습니다. 우고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금방이라도 흙냄새가 날 것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작품이 자연을 이야기한다는 작가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고가 자연을 변하지 않도록 기록한 방식은 주로 자연물을 청동이나 알루미늄 등으로 주조한 후 인공적인 도료들로 채색하는 것이였습니다. 살아있는 자연의 생명을 앗아 박제하기보다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히 간직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인공이란 상반되는 개념이 조화롭게 작품에 녹아들어 재료에 깃든 에너지를 끌어모으거나, 가뿐하게 뒤바꿔 ‘공명’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EVERY TIME THE SUN COMES UP≫ 전시 현장
≪EVERY TIME THE SUN COMES UP≫ 전시 현장, 이미지 출처:Ugo Rondinone 공식 웹사이트

2016년 프랑스 파리의 방돔(Vendôm)에서 선보인 ≪EVERY TIME THE SUN COMES UP≫는 작가가 자연을 압축적으로 기록한 대표적인 전시 중 하나입니다. 전설이나 신화에 나올 것만 같은 알루미늄으로 주조된 순백색의 나무는 더이상 흙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물이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자연의 시간을 압축한 작품이라는 점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부모가 뿌리내렸던 이탈리아 시골 땅 올리브나무를 순백색의 알루미늄 조각으로 주조하는 과정을 통해 나무의 변화를 광활한 시간의 흐름으로 압축해 조각에 담아둡니다. 평화와 불멸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 수천년 동안 비바람과 먼지, 햇빛을 견디며 만들어진 구불거리는 형태를 관객은 시적인 형태로 고요히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죠.

우고 론디노네 ,“THE SUN”, 2017
우고 론디노네 ,“THE SUN”, 2017

또한 태양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작품인 “The Sun”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기도 한 태양의 존재를 직접 수집한 나뭇가지들을 엮어 청동으로 주조하여 금박을 입힌 정적인 형태로 고정한 작품입니다. 이를 통해 일상에 존재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인류의 상상 속에 자리한 신화성을 첨가하여 숭고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둡니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을 숭고의 대상으로 여기는 낭만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연적 낭만과 인위적 개념을 조화롭게하는 자신만의 기법을 통해 예술적인 메세지를 만들어냅니다.

≪BURN TO SHINE≫ 전시 현장
≪BURN TO SHINE≫ 전시 현장, 이미지 출처: 우고 론디노네 공식 웹사이트

재료가 원초적이지 않아 보이더라도 그의 작품은 일관된 태도를 지닙니다. 이번 뮤지엄 산에 매티턱 회화와 함께 놓인 11점의 유리로 만들어진 푸른 말 조각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매일 떠오르고 지는 해와 달을 보고 그린 수채화 12점이 벽에 띠처럼 걸렸고, 전시장 가운데엔 유리로 만들어진 말 조각이 놓여있습니다. 이 말조각들에는 “켈트해”, “에게해”, “황해”등 바다의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유리라는 재료는 원초적으로 자연에서 따 왔다고 보기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자연을 기록하는 낭만적인 화가라는 점을 알고있다면, 금세 알아차릴 것입니다. 유리의 주재료는 흙이라는 것을요. 흙을 불이라는 원소로 가열하며 이때 불이 연소하기 위해서는 공기라는 원소가 또한 필요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로 말조각의 상부와 하부에 서로 다른 색을 입혀 바다의 수평선을 기록합니다. 즉, 작가는 자연을 구성하는 4원소의 결합체인 유리로 된 말조각으로 자연의 전체적인 순환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WEBSITE : 우고 론디노네
INSTAGRAM : @ugorondinone0


돌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기운을 믿는 론디노네는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물에 환상적인 색을 입힘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킵니다. 인공의 옷을 입은 자연물과 함께 한 그 시간만큼은 예술과 본인에 대한 성찰이 가능했던 시간이 되는 듯합니다. 예술을 바라보는 것이 지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행위라기 보다는 그 자체를 경험하고 오롯히 관념하며 예술에 한 발자국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듯합니다. 여전히 활발하게 자연을 일기 쓰듯 기록하는 작가 우고 론디노네가 보는 낭만적이고 숭고한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주가 될지 궁금합니다.


Picture of 김진희

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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