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얼굴에서
내가 보이는 이유

‘가짜 얼굴’ 기술이 부른
얼굴에 대한 고찰
Edited by
달리박물관(The Dali Museum)이 되살린 살바도르 달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을 말하는 딥페이크(Deep Fake)는 얼굴이나 목소리를 매우 사실적으로 조작해 특정인의 복제 이미지를 생산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위치한 달리박물관(The Dali Museum)에서는 2019년 스페인의 유명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딥페이크 기술로 부활시켜 관람객들 앞에 등장시켰다. 달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관람객들과 대화하고 자신의 작품과 생각을 소개했는데, 이는 닮은 체형을 가진 배우가 연기한 ‘얼굴’에 인공지능이 달리의 생전 인터뷰와 기록 영상 수백 개를 학습한 ‘표정’을 딥페이크 합성한 것이다. 2021년 네덜란드의 디지털 아티스트인 루드 반 엠펠은 반 고흐 사진을 공개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자화상은 있어도 사진은 남기지 않았던 반 고흐의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반 고흐 닮은꼴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특징을 모아 딥페이크 사진을 완성시킨 덕이다.

이처럼 딥페이크는 예술계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최근 가짜 동영상, 정치적 조작, 금융 사기 등에 이용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유명 인사들은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기술을 악용한 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중이다. 일반인들마저 피해 대상이 된다는 뉴스는 광범위한 불안을 키우기도. 딥페이크에 대응하는 판별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겠지만 얼굴이 자기 자신을 인증하기에 눈에 띄게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얼굴이 자신을 증명한다’는 전적인 신뢰가 무의미해질지 생각하던 끝에 과연 얼굴에 대한 믿음은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이며, 얼굴이란 대체 무엇인지 근원적인 고민에 빠진다.


얼굴 깊이 보기

딥페이크
이미지 출처: Unsplash

얼굴의 사전적 정의는 1)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 2) 머리 앞면의 전체적 윤곽이나 생김새다. 종합하자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이라는 감각 기능이 집약된 머리의 일부이면서, 생김새로 인해 단순한 신체 기관을 넘어서는 상징이 된다. 이처럼 상징성이 있는 얼굴을 머리와는 다르게 인식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표정에 있다. 표정은 입, 뺨 혹은 눈꺼풀 등 한 데 모인 기관들의 본래 신체적 목적과는 무관하다.

얼굴은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의사소통 시 소리는 많은 경우 얼굴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가령 일상에서 주어와 술어 없는 특정 사물을 가리키는 외마디는 발화자의 얼굴을 살핌으로써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얼굴이, 표정이 의사소통을 완성하는 단적인 사례는 이모티콘 또는 이모지의 활용을 들 수도 있다.

이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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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이모지는 디지털 매체의 문자 기반 커뮤니케이션에서 감정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는 강력한 도구다. 특히 기쁨, 슬픔, 놀람 등 표정을 반영한 ‘현대의 상형문자’들은 텍스트만으로는 전달하기 모호한 감정을 전한다. 표정이라는 비언어적 요소를 추가해 의사소통의 명확성을 증가시키고 메시지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강화하고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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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굴이 행하는 소통에는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강력한 기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모티콘, 이모지를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암묵적인 원칙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실 얼굴과 표정은 이미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걸맞은 의미를 표출하기 위해 지어진다. 나아가 얼굴의 쓰임은 타인과의 관계망으로 형성된 사회를 전제한다.

형체는 없지만 강력히 주입되는 원칙이 비슷한 얼굴을 낳는다.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 저마다 부여받은 직위나 특정한 본분을 지키는 얼굴도 마찬가지로 설명된다. 물론 명령받은 얼굴로 밝혀지기 어려운 수많은 얼굴들도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방향이 전제군주의 얼굴로 소급된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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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호의 범위를 벗어나 서로 다른 주체들이 마주보기를 통해서 얼굴이 동일시되고 공명하는 방식도 있다.

사랑에 휩싸이는 얼굴, 국가 대항 경기의 현장에서 서로 같은 것을 느끼고 열광적인 분위기에 휘말리는 얼굴 등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드러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단 다른 이들 간의 공명하는 얼굴은 또 다른 사회질서와 기호를 강화하도록 이어지기도 한다.


신체 밖 얼굴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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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유하는 얼굴들은 무의식적이다. 개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얼굴과 표정을 받아들이고 반복하고 전달한다. 인간의 신체 밖에서 얼굴이 되는 무엇도 있다. 사회적 무의식이 만들어낸 권위에 따라 ‘얼굴이 아닐지라도’ 얼굴이 될 수 있다. 옷차림, 건물, 경치 같은 풍경도 얼굴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경찰복이나 의사 가운, 유니폼 혹은 국가적 묘역의 상징탑 등을 대할 때 일정한 의식이 형성된다.

그리고 사회는 권장되는 얼굴의 척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적절한 기호 혹은 적절한 공명을 포함하는, 사회가 권장하는 얼굴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얼굴의 이상적 모델은 양극의 얼굴 사이에 있는 다양한 얼굴들을 척도가 되는 얼굴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위계를 부여한다. 이는 생김새 자체로서의 미적 위계는 물론이고 사회가 용인하는 표정의 범주에서도 따져볼 문제다. 표준이 되는 얼굴을 두고 형성되는 질서는 외부를 허용하지 않고 모든 얼굴을 그 내부로 포섭한다.

사실 딥페이크가 부정적인 형태로 교묘하게 침투하는 것도, ‘척도가 되는 얼굴’이 끊임없이 학습시키는 적합성과 위계가 우리를 현혹하기 때문이 아닐까. 섹슈얼의 아이콘, 정치적 아이콘, 부의 아이콘들의 형용 이미지(섹시한,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지며 카리스마 있는, 신뢰감 있는 등으로 표현되는 ‘~다운 얼굴’)를 이용하는 것은 각기 다른 의미로 이상화된 얼굴에 길들여진 관념에 기댄 심리를 흔들고 만다.


얼굴을 벗어나기
맥락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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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공유한 얼굴과 표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더 중요해진다. 얼굴은 권위의 부름에 응한 욕망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얼굴이 세우는 질서는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고도 했으나 그럴수록 일탈이 필요하다. 척도화된 얼굴과 그 얼굴이 당연하게 의미하는 삶의 방향과 멀어졌는지를 따져볼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또 새롭게 보고, 의심해 보고, 질문해 보는 과정에서 우리가 특정 얼굴을 열망하고 표정을 짓는 맥락을 이해해 본다. 마주한 표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저항의 몸짓이 보다 생기있는 얼굴의 다양성을 되찾아줄 것이다. 어떤 대상이 지닌 얼굴의 상징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딥페이크 시대의 현명한 대응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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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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