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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존재와 건축

시대를 받치고 후대를 감싸는
고요하고도 복된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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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살아온 공간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안에는 고유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텐데요. 조선 왕조의 사당으로서 한 시대의 명운을 함께해 온 장소, 종묘(宗廟). 과연 종묘만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기에 그러할까요? 종묘가 만들어 온 이야기,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죽음과 삶
종묘가 존재하는 이유

종묘
이미지 출처: Unsplash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를 비롯해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종묘. 조선 건국 이후, 종묘에는 왕실의 수많은 맹세와 다짐이 새겨져 왔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을 기리는 제사인 ‘종묘 제례’도 이뤄지고 있는데요. 떠난 이들을 기리며 봉행되지만, 그저 슬프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외려 경사스러운 예식을 뜻하는 ‘길례(吉禮)’라고 불릴 만큼 성대하고도 기쁜 행사로 치뤄지고 있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자리한 공간으로서 망자에게는 존중과 안식을, 생자에게는 또렷한 결심을 선사하며 종묘는 존재해 왔습니다.

종묘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하며 중국에서 생겨난 제도이기에 여러 시대, 여러 곳에 존재해 왔습니다. 남북국시대 및 통일신라의 유교적 종묘제 ‘신라 오묘(新羅 五廟)’, 중국 명·청 왕조의 종묘 ‘태묘’, 베트남 응우엔 왕조의 종묘 ‘세묘’ 등과 같이 조선 왕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 종묘가 남아 있는데요. 조선 왕조의 종묘는 건물과 제례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귀합니다. 이러한 점에서부터 종묘와 종묘 제례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종묘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

종묘로 들어서는 순간, 도시 속 요동쳤던 소음은 종묘에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사이로 빨려 들어가며 잠잠해집니다. 종묘의 숲은 사당에서 모시는 이들을 위한 곳으로, 외부 공간과의 분리를 위해 조성되었는데요. 갈참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는 이 숲은 지금까지 제 모습을 이어오며, 지친 현대인에게 초록빛 휴식을 전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종묘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공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지요.

엄숙한 애도와 충만한 현존의 장소, 종묘. 조선 왕조의 몰락과 함께 종묘는 잠시 세상과 단절됩니다. 하지만 종묘 제례가 재현되었던 1971년을 기점으로 해서 조선 이후의 시대에 제 모습을 다시 드러냈지요. 망자의 안식처로 탄생한 후, 생자를 위한 평안의 숲을 이루며 지금도 잔잔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은 종묘에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무엇을 새기며 현존해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유기체
종묘 건축만의 이야기

종묘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사와 함께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모해 왔습니다. 현재 마주하는 종묘는 창건 당시의 모습과는 다소 다릅니다. 종묘가 현재의 모습과 동일한 규모를 갖춘 것은 19세기 초였는데요. 1394년에 터를 잡고 이듬해 창건됐을 때부터 여러 번의 증축을 거쳤고, 1835년부터 1년 간 이뤄진 증축을 마지막으로 종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접하는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종묘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자 큰 공덕을 인정받은 왕과 그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공간인 ‘정전(正殿)’의 변화는 이러한 기나긴 역사 속 변화를 또렷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7칸으로 시작해 19칸까지 늘어나며, 마침내 건물의 좌우 길이는 100미터를 훌쩍 넘기기에 이르렀지요.

종묘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포털

약 다섯 세기 동안 종묘 속 공간이 변해 온 과정 속에서도 종묘는 엄숙하면서도 단순하고 절제된 미학을 유지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정전을 받치는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수명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한편, ‘정전’이라는 하나의 건물로서 합일되어 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종묘의 건축은 긴 세월에 걸쳐 몇 차례 증축을 거쳤음에도 위화감 대신 엄숙한 안정감을 품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모두가 수평을 이루게 되는, 그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치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합니다.


도록 『종묘』
바래지 않을 동반자

도록 『종묘』
이미지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종묘는 사당으로서 특별한 목적을 지닌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각 공간 내부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도 있지요. 하지만 일반 관람객으로서 접할 수 있는 종묘는 제한적입니다. 2014년에 진행된 국립고궁박물관 주최 특별전 『종묘』의 전시 안내 도록은 그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3백여 페이지에 걸쳐 종묘의 역사와 건축뿐 아니라 종묘 제기, 종묘 제례악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기 때문이지요. 전시는 이미 종료되었지만, 전시가 기록된 이 도록 곳곳에는 변치 않을 이야기와 자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도록의 물성을 느끼며 감상할 수도 있고, 국립고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파일을 열람할 수도 있습니다. 종묘를 자세히 이해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콘텐츠가 편안하고도 특별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종묘』 도록 상세 페이지
『종묘』 도록 구매 페이지


종묘에 들어선 바람은 신이 다니는 길 ‘신로(神路)’ 위를 지납니다. 왕도 함부로 밟지 않았던 그 길을 따라, 정전의 세 문 중 남쪽에 자리하며 오직 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신문(神門)으로 들어갑니다. 반듯하게 뻗은 검은 돌길을 따라가다가 정전 건물에 다다른 바람은, 좌우로 길게 난 회랑을 거닐며 지나온 시간을 음미합니다. 고이 잠든 이들의 신위(神位)를 스쳐 지나가며 옛 시대의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현세를 부유하던 바람은 마침내 나뭇잎 소리의 잔잔한 여음과 공기의 시원한 여운을 남기고 종묘를 뒤로합니다. 나무는 나뭇가지를 살랑이며, 떠나는 이를 향해 손을 흔들 뿐입니다.

한 왕조의 족보와도 같은 공간에서부터 시작돼 도심 속 쉼을 선사하는 숲의 공간이 되기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묘가 간직해 온 이야기는 여러 계기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종묘만이 지닌 푸른 휴식을 온몸으로 감각하면서, 지난 시간으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마음에 떠올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종묘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인 체험이 아닐까요. 종묘에서의 시간을 독자분들만의 체험으로 내면화하길 소망하며 글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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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파란 하늘처럼 청명한 힘을 글과 사진에 담고자 하는 사람.
콘텐츠가 선사하는 영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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