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캡을 영감으로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약점을 강점과 개성으로
문화를 창조하고 체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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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어떤 사람들일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의외로 문화예술의 주체를 비장애인에 국한 지어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에 의문을 품는 시선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확인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오늘은 자신의 핸디캡을 매력으로 풀어내 문화예술을 생산하는 사람들, 가까운 이의 핸디캡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와 사유를 창조하는 사람들, 특정인 중심으로 편향된 문화를 과감히 깨뜨리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고루 선정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책을 소개할 때, 책 속 인물의 장애 유무나 장애 유형, 장애를 얻게 된 배경 등 특정 요소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화하려 노력했습니다. 장애를 의식하지 않았을 때 문화예술의 장을 만들고 소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빛나는 영감과 자극을 선사하는지 경험하면서, 장애라는 요소만으로 타인과 자신을 분류하는 선입견은 도리어 무한한 세상을 경험하는 데 큰 장벽이 된다는 사실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비욘드 핸디캡』

『비욘드 핸디캡』
이미지 출처: 북저널리즘

일상을 떠올려봅시다. 오늘 거리에서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있나요? 이 책은 반복적인 일상에서 포착한 한 장면으로부터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문화예술을 생산하는 주체는 모두 비장애인’이라는 비장애인들의 무의식적인 편견을 깨뜨려주는 도끼 같은 책입니다. 『비욘드 핸디캡』은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 하지만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엔터테이너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기 위해 생사를 담보하는 결단을 토대로 꿈을 성취해 가는 이들의 고백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의 모습’ 그 자체로 모두를 아찔하게 할 만큼 찬란히 빛납니다.

(위)지체(절단) 장애를 가진 비보이 김완혁, (아래)뇌병변장애를 가진 모델 김종욱
(위)지체(절단) 장애를 가진 비보이 김완혁, (아래)뇌병변장애를 가진 모델 김종욱. 이미지 출처: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비욘드 핸디캡』은 저자들이 꿈을 향한 여정 중에 장애 당사자로 살며 겪은 날 것 그대로의 일상도 선명히 드러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는 자명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그 누구도 ‘장애는 나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서 사고나 질병, 그리고 노화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입니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누구도 ‘그렇게 당신이 장애인이 될 것’이라고 미리 알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두에게 닥칠 일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겪었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서서히 높여가게 됩니다. ‘남의 일’에서 ‘나의 일’로 여기는 작은 인식 변화를 시작으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더 빠르고 안전하게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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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이미지 출처: 다다서재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책은 시력이 0으로 빛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전맹 미술 관람자 시라토리 겐지씨와 함께 미술 관람을 한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미술 작품을 보는 광경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저자는 두근거리는 그 새로운 경험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 색을 개념적으로 이해한다는 사람에게 그림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라토리 씨와 동행한 사람들은 한 작품을 10분, 15분씩 감상하고 각자 경험을 토대로 그림에 관해 설명해줍니다. 정확한 미술 지식이 아니라 주로 자신의 경험과 직관대로 그림을 설명하죠. 그러다 보니 같은 그림을 두고 친구들의 감상이 전혀 다른 일도 잦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이란! 전문적으로 설명하지 못해 난처해하는 사람들에게 시라토리 씨는 “정확한 작품 해설 같은 것보다 보는 사람이 받은 인상이나 추억 같은 걸 알고 싶어요.” 라고 말합니다. 전문 지식보다는 즉흥적이고 다양한 대화에 흥미를 느끼면서요.

공간을 체험하는 작품 ‘꿈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라토리와 친구들의 모습
공간을 체험하는 작품 ‘꿈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라토리와 친구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다다서재

이렇게 낯선 방법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세세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거나, 오래 들여다보다가 작품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두고 ‘내 눈의 해상도가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림은 혼자 조용히 감상하는 예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세세한 묘사를 말로 풀어내다 보니 전혀 다른 위치에서 예술을 즐기게 되더라는 것이죠. 전맹인 시라토리 씨의 사유, 그와 동행하는 저자의 솔직담백하고 천진한 혼란을 쫓다 보면 사회에 고착된 예술 감상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자세로 작품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이런 즐거운 시도를 기술하면서도 저자는 시각장애에 대한 막연한 미화, 습관적 연민 등 편견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도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는 저자와 시라토리 씨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선입견을 돌아보게 됩니다.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루한 생각을 조용히 깨뜨려 주는 시라토리 씨의 이야기와 저자의 풍요로운 사유를 통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식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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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디자인』

『마이너리티 디자인』
이미지 출처: 다다서재

위 책에서는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과 그와 함께하는 이들의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면,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시각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광고인 아버지가 만드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기발한 광고를 만들어도 사랑하는 아들은 내 광고를 볼 수 없겠다는 절망에 빠져있던 저자는 아들과 소통하는 방법, 자신의 절망을 이겨낼 방법을 찾기 위해 수백 명의 장애 당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성장하셨어요?”, “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셨어요?”, “꿈은 무엇인가요?”처럼 궁금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보던 저자는 문득 깨닫습니다. 이들의 일화들이 그저 재미있고 짠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들의 생활이나 삶을 보면 독창적인 발견과 새로운 사고방식이 가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과 가족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새로운 장애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죠.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 일상에서 새로운 발견을 포착하고 독창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직업인이었던 저자는 ‘약함’이 도리어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인 재발견으로 받아들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발명의 어머니’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크리에이터로서도 시각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로서도 전환점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요.

책의 제목이자 저자가 추구하는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컨셉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저자는 마이너리티 디자인으로 ‘약함’에 깃들어있는 다양성을 주목하는 문화를 만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점은 이미 비슷한 모습으로 합의되어 있지만, 약점은 저마다 다릅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요. 약점을 불행과 절망의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고 ‘자기다운’ 개성으로 활용하는 저자의 디자인 철학을 따라가며, 우리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보이지 않아. 그 뿐!' 사와다 도모히로가 작업한 시각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 대회 포스터
‘보이지 않아. 그 뿐!’ 사와다 도모히로가 작업한 시각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 대회 포스터.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보이지 않아. 그뿐.” 2014년 일본에서 개최한 시각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가 작성한 카피입니다. 그는 이 카피를 사실 아이를 위해 쓴 카피라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디자인 철학과 그 활용 사례에 대한 이야기에도 저자가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남겨둔 메시지들이 곳곳에 녹아있어 뭉클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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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이미지 출처: (주)휴머니스트출판그룹

“휠체어 탄 여자가 인터뷰한 휠체어 탄 여자들”. 카피 그대로 휠체어를 타는 저자 김지우 작가는 자신처럼 휠체어를 타는 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신을 ‘장애 여성 청소년’이라고 덤덤하게 칭하며 그 단어에서 도리어 가능성을 찾아내 하고 싶은 일이 가득한 사랑스러운 10대 지민부터, ‘나는 언니 하긴 양심 없고 이모 정도로 호칭 정리 어떠냐?’며 웃는 엄마이자 멋진 사업가 40대 다온, 미국으로 향해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과 미국 특수교육 분야에서 활약하는 따뜻한 어른인 60대 효선까지. 동그란 바퀴를 굴리며 온 세상을 활보하는 휠체어 위 여성들의 이야기라니! 휠체어라는 단어나 장애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그들의 삶이 품은 생동감이 활자에서 넘쳐흐르는 듯합니다. 나이, 성별, 장애, 직업 등 여러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을 확장해 가는 이들의 에너지가 마구 전해집니다.

공통적으로 겪은 불편한 감각은 함께 공유하며 손을 잡고, 전혀 다른 개성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에는 활짝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각자의 영역을 확장하는 그들의 공명이 참 부럽습니다. 저자처럼 내게 울림을 주는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장애 여부를 떠나 서로에게 건네는 응원의 말이 지닌 위력을 목격하며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게 됩니다. 몇 가지 특징만 제외한다면 나도 그들과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사람이구나, 절감하면서요.

60대 언니 효선은 저자에게 이런 문장을 선물합니다. “나와 비슷해서 좋고 달라서 더욱 좋다.” 상술한 책들에 이어 이 책을 읽고 나면, 일련의 책을 통해 만난 모든 사람에게 감히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나와 비슷해서 좋고 달라서 더욱 좋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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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의 저자 김지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휠체어 위의 언니들을 소개할 때 으레 포함하곤 하는 장애의 유형이나 장애가 생긴 이유는 부연하지 않았으며, 장애라는 특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 특성이 그들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는지 말하고 싶었다고요. 그 새로운 이해 속에서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경험을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선물하길 바란다’고 밝혔는데, 소개한 다섯 권의 책 전부 이 말 그대로의 경험을 안겨준 책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읽은 책에서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타인과 나의 ‘다름’을 매 순간 의식하는 날 선 일상에서 ‘같음’을 발견하고, ‘다름’을 다시 매력과 강점으로 변모시키는 경험의 축적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활보는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진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들을 시작으로 다소 낯선 타인의 사유도 기꺼이 수용해 감각하며, 우리 사회가 지닌 지금의 한계에서 강점과 가능성이라는 원석을 포착할 수 있는 여러분의 시선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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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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