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딛은 땅에서 아로새긴 미학
미술사학자 최순우

삶의 영점을 맞추고자 하는 이에게
혜곡의 기록이 전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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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이는 삶 속에서 자신만의 영점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독자분들은 어떤 답을 내리시나요? 만약 자신만의 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한 인물을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유산이 지닌 고유한 멋과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평생 고민하고 행동했던 그는 생전에 끊임없이 실천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에서부터 비롯된 안목과 통찰을 기록했지요. 그의 삶이 남긴 궤적과 기록을 들여다보며 지금의 일상 속 중심을 잡을 방법의 첫머리를 구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멋을 향한 사랑과
실천으로 직조한 심미안

이미지 출처: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호는 혜곡(兮谷), 본명은 희순(熙淳)이며 필명은 순우(淳雨)였던 미술사학자가 있습니다. 1946년 국립개성박물관에 부임한 이래로 한평생 ‘박물관인’으로 살았던 그는 혜곡 최순우(1916~1984)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 그 외에도 수많은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그가 살았던 삶의 밀도는 높았습니다. 삶터와 일터에서 켜켜이 쌓은 행동은 모두 한군데로 수렴했죠. 바로 대한민국 국가유산 곳곳에 새겨진 고유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던 1935년, 그는 미술사학자 고유섭을 만나며 우리 문화와 유물의 가치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타국이 아닌 자국의 것이 지닌 가치를 발굴하고 온전히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치며 국가유산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날이 모여 미술사학자로서의 삶의 궤적으로 완성되어 후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혜곡의 기록으로부터
나온 책 두 권

혜곡 최순우는 한국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꾸준한 실천으로 삶의 얼개를 지었습니다. 그 흔적은 그가 생전에 다양한 지면을 통해 남긴 기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그 수많은 기록은 1992년 『최순우 전집』으로 정리돼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최순우 전집』은 전부 다섯 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그 기록에서부터 추려낸 내용으로 새로운 책이 출간된 바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단순히 ‘한국 미술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어느 미술사학자의 기록에서부터 비롯된 책’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아깝습니다. 책마다 존재하는 지층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강렬한 태도가 배어 있기 때문이죠. 꾸준함으로 엮인 기록만이 지닐 수 있는 퇴적입니다.

1)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1994년에 발간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미술이라는 분야로 분류되는 여러 문화유산을 조명합니다. 회화, 건축, 공예, 불상, 탑, 토기, 도자기 등 우리의 멋이 어려있는 예술의 분야를 두루 톺아보는데요. 그와 동시에, 백여 개의 작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한국 미술의 정수를 담아냅니다. 이 책은 2008년에 개정판이 나오며 기존의 흑백 도판에 색이 입혀진 바 있습니다. 그렇게 깊이 있는 해설은 페이지 너머에 존재하는 마음을, 생생한 컬러 도판은 페이지를 살피는 눈길을 사로잡고 있죠. 마치 우리 문화의 보석함을 열어 보는 듯한 귀중한 경험으로 거듭납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구매 페이지


2)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2002년에 발간됐습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식, 자연 등 생전에 저자가 사랑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혜곡 최순우만의 섬세한 감성과 따스한 시선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국가유산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죠. 나아가, 저자의 심미안 너머에 자리한 마음을 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2016년에 저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출간된 개정판입니다. 도판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며 저자의 심미안을 잘 보여주는 세세한 표현에는 숨결이 더해졌습니다. 단, 소장처가 불분명하거나 개인 소장인 작품의 이미지는 흑백으로 실려 있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구매 페이지


모든 것이 범람하는 환경의 한가운데서, 삶터에서의 매일이 무의미한 반복으로 여겨지기 쉬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삶의 중심을 정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용한 움직임으로 치부되고는 하죠. 이러한 시대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혜곡의 삶과 기록은 또 다른 파장으로 가닿습니다.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매일에서부터 고유한 궤적이 새겨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품은 채로요. 그리고 지금도 저마다의 삶터에서 쌓이는 매일에 자기 나름의 자그마한 애정과 실천이 배어 있다면, 그 매일매일은 결국 한 송이 꽃으로, 한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리라는 희망을 건네고 있습니다. 어떠한 답의 실마리는 타인의 삶과 기록에서부터 얻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의 멋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그가 쌓아온 실천과 그 실천으로부터 피어난 통찰이 담긴 기록에서부터 우리는 흩어진 삶의 초점을 맞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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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파란 하늘처럼 청명한 힘을 글과 사진에 담고자 하는 사람.
콘텐츠가 선사하는 영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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