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깨우는 상상 세계로의 여행
『이아생트의 정원』

각자의 정원을 소생시키는
신비로운 귀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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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하고 소란한 삶에서 벗어나는 일탈과 휴식이 간절한 사람에게 여행을 권하며 건네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책 표지 가운데 삽입된 산의 날랜 산봉우리, 그 자락에 피어있는 꽃의 군집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자면 흩날리는 산바람 한줄기가 불어오는 듯합니다. 목가적인 풍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이아생트의 정원』입니다. 쉼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손에 꼭 쥐어주고 싶을 만큼 찬란한 자연의 풍경과 신비로운 모험이 매력적인 책,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아생트의 정원』이 품은 매력을 소개합니다.


이아생트 3부작의 종착지

이아생트의 정원
이미지 출처: 문학과지성사

『이아생트의 정원』은 작가 앙리 보스코가 저술한 ‘이아생트 3부작’의 완결작입니다. 최초 1부작 『반바지 당나귀』는 마법사 시프리앵이 잃어버린 낙원을 재건하기 위해 콩스탕탱이라는 소년을 후계자로 만들고자 하나 실패하고 소녀 이아생트를 대신 유괴해 데려가는 이야기입니다. 자연히 그 이후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 것 같은 2부작 『이아생트』는 정처 없이 헤매는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화자가 이아생트의 영적 죽음을 펼쳐놓는 미지의 작품으로 마무리되며, 완결작 『이아생트의 정원』에서 드디어 이아생트의 귀환을 다룹니다.

앞서 출간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세 작품의 일관성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죠. 주인공을 제외하면 등장인물, 사건 배경, 화자가 모두 다를뿐더러 심지어 주인공 이아생트는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타이밍에 잠시 소품처럼 등장했다가 홀연히 떠나가기까지 합니다. ‘귀환’이라 요약할 수 있는 전개지만, 사실 ‘귀환’이라는 물리적 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전작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전작과 연결되어 꼭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는 작가가 기지를 발휘해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명해 줍니다.


스스로 생동하는 글을 쓰는 작가,
앙리 보스코

작가 앙리 보스코, 이미지 출처: mauvaise nouvelle

작가 앙리 보스코는 이 책의 배경과 동일하게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언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쳤던 배경답게 작품 속에는 여러 신화나 고전 작품에서 차용한 듯한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도 합니다. 그 설정들은 몽상가다운 작가의 면모를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앙리 보스코는 “미리 정한 바대로 지은 소설”을 기피하는 소설관을 지닌 작가입니다. “소설은 써나가는 동안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 살아 있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의 소설관대로, 이 작품은 슬슬 지루해질 수도 있는 순간마다 독자가 예상하던 전개에 균열과 변동을 일으켜, 인물과 사건이 사건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에 호응하며 흘러가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작품 전체를 숨 쉬게 만들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매혹하죠. 상상 세계의 설정에서도 이게 꿈인지 실제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기밀한 장치를 심어 화자 뿐 아니라 독자까지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설정 속에, 어느 순간부터 독자는 이성과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저항 없이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섬세하게 빚은 문장과
아름다운 프로방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을 묻는다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의 향연이라 답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작가가 활자들에 마술을 부린 듯, 문장들이 살아 움직이며 독자들의 시각, 후각, 청각을 활짝 열어줍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가의 탁월한 배경 묘사 능력이 빛을 발합니다. 생생하게 여행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그 여행지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따라 순식간에 프랑스 시골 마을 한복판에 떨어집니다. 달콤한 향내 풍기는 과일이 몸집을 키우며 익어가는 과수원의 모습, 산자락 나무들을 흔들며 날아온 바람이 한 아름 품어온 들꽃 향기, 한밤중 소복소복 눈이 내려 세상을 덮어버리는 고요한 소리 등 작가는 자연의 생동하는 모습을 독자들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문장을 빚어냈습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풍경을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내는 화자는 사람의 심리까지도 예민하게 포착하는 능력자입니다. 성실하고 지혜로워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독자들이 신뢰할 만한 화자로 등장합니다. 작가는 믿을 수 있는 관찰자이자 화자를 설정해, 앞으로 펼쳐질 신비로운 이야기를 독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간단한 장치 하나를 설치한 것이죠.

화자 메장은 다정한 눈으로 동네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양치기, 가정부, 대장장이, 신부, 쓰러져가는 오랜 집에 사는 가난한 노부부까지 그는 직업의 귀천이나 부유함, 신분을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의 선한 심성, 혹은 내재하고 있는 진심을 바라봅니다. 마치 전지자처럼 면밀히 상대를 관찰해 굳이 말이나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의 의중을 알아채고, 사소한 몸짓과 반복되는 행동에 깃든 한 사람의 깊은 숙고를 헤아리기도 하죠. 그래서 후에 소개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아생트의 무감각한 영혼을 통찰해 끈기 있게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이고요.

누군가는 ‘살 곳이 못 된다’고 쉽게 말하는 지루한 시골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고 소박한 동네 사람들에 대한 화자의 시선을 충실하게 따라가 봅시다. 어느 순간 평온함 그 자체인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작품 속 배경에 동화되어 무장 해제된 채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꿈처럼 몽환적인 소녀
이아생트의 이야기

이미지 출처: Unsplash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 사는 화자 메장. 저 멀리 산 위 외딴 농가 보리솔에는 충직하고 순수한 게리통 노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나무와 조약돌에까지 주어진 모든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선한 두 사람이 사는 이곳은 신비한 상상 속 세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성탄절 밤, 한 소녀가 그들의 집에 버려집니다. 이름은 펠리시엔. 마치 영혼이 없는 듯 텅 빈 회색 눈과 자의가 없어 보이는 수동적인 움직임, 활기는커녕 생명의 빛도 감지하기 어려운 에너지를 간신히 지닌 아이입니다. 말도, 웃음도, 호기심도 없는 아이에게 있는 것이라곤 희미한 생명의 기운뿐이지만, 게리통 부부는 사랑으로 펠리시엔을 돌봅니다.

게리통 씨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이는 화자의 집에 맡겨집니다. 화자 메장과 가정부 시도니는 낯설고 이질적인 이 존재를 기꺼이 맞아들이며 진심으로 보살피죠. 아이에게서 포착되는 미세한 영혼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관심 덕분에 펠리시엔의 내면은 차츰 윤곽을 갖춰 갑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사로운 돌봄에도 여전히, 소녀는 언제일지 모를 시기를 기다리는 듯 미완의 존재처럼 영혼 없이 살아갑니다.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면서요.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 소녀는 신비롭습니다. 한밤중 들판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거대한 뱀에 이끌려 춤을 춘다거나, 알 수 없는 마법에 걸린 듯 말을 하지 못하고, 자의식을 내보이려 하는 순간이면 무언가에 억눌린 사람처럼 저항할 수 없는 잠에 빠져듭니다. 이 신비로운 아이는 어쩌다 버려진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텅 빈 존재가 된 것일까요?

펠리시엔으로 불리던 소녀의 진짜 이름은 ‘이아생트’. 동물, 식물, 사람까지 홀리는 마법을 부려 본인이 바라던 천국 같은 정원을 만들려 했던 마법사 시프리앵에게 납치당한 아이였습니다. 본래 이름도 영혼도 잃어버린 채 본래 세상으로 귀환하게 된 것이었죠. 이아생트의 진정한 귀환이 완성되기까지의 여정과 굳은 영혼이 균열을 일으키며 깨어나는 순간의 감격을 담은 이야기가 바로 『이아생트의 정원』입니다.


『이아생트의 정원』을 읽은 후 남은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내 정원을 가꾸고 있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죠.

이아생트가 본연의 자신을 찾아 ‘진정한 귀환’을 시작하는 장면에는 비로소 이아생트가 자신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게 되는 듯한 암시가 녹아있습니다. 정원이 곧 자신의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 지점에서, 나는 책 속의 사람들처럼 성실하고 순수하게 정원을 가꾸고 있는 사람인지, 영혼을 빼앗긴 채 남의 정원을 가꾸며 연명하는 무명의 피조물인지, 아니면 탐욕스럽게 내 정원을 위해 다른 것을 속이고 있는 마법사 같은 사람인지 문득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작가가 원하는 방향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대단한 마법을 부릴 수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천국 같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 한 소녀를 납치하기까지 한 악역, 마법사 시프리앵의 열의가 남달라 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줏대와 꿈을 위해서가 아닌 공산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는 마법사 시프리앵의 의지는 굉장히 생동감 있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는 자신의 정원을 마음껏 키워 내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주체적인 인물이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는 이야기 속에서도 이야기로만 등장한 인물이지만, 그의 욕망은 어떤 욕망도 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우리의 관성에 긍정적인 균열을 선물해줍니다.

올해는 꼭 『이아생트의 정원』 속 프랑스 시골 마을처럼 평화로운 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내 삶의 현주소를 차분히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혹 저도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해 나 자신의 정원을 가꾸지 못하고 있다면, 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영혼을 깨워줄 사람을 기다리기보다는 강인하게 스스로를 깨워보자는 다짐도 함께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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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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