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쪽에서
만나는 책과 커피

사유하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제주도 공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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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애월과 중문 사이, 한경면이라는 동네가 있다. 제주도의 완전한 서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은 절묘하게도 모든 유명한 관광지와 조금 엇갈려 있어서, 한경면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건 기껏해야 ‘조용한 동네’, ‘한달살기하기 좋은 숙소’ 정도. 필자가 한경면에 있는 숙소를 예약한 이유는 단순했다. 숙소에 있는 고양이가 귀여웠고, 한경면이라는 동네를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었다. 유명하지 않은 만큼 조용한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대략 짐작하고 도착한 한경면은 실제로 그러했고, 필자는 혼자 조용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좋은 공간들을 여럿 찾아헤맸다. 그 공간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혼자 혹은 여럿이 제주로 떠나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사유하고 싶다면 아래의 공간들을 추천한다.


서점 ‘책은선물’

제주도 ‘책은선물’
제주도 ‘책은선물’

제주의 서쪽 끝 바다, 신창리포구 근처는 온통 돌담길로 빼곡하다. 이 동네는 지도를 봐도 학교나 마을회관 뿐. 그러나 항구에서 돌담을 따라 2분 정도만 걷다 보면 마치 카모플라쥬처럼 돌담에 숨어있는 책방 하나가 등장한다. 그 주소마저 ‘돌창고’인, 그러니까 원래는 돌창고였던 이 공간은 바깥은 창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 안에는 꼭 비밀 다락방같은 모습을 하고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법한 이 서점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알아달라고 돌담길 한복판에 작은 판넬과 깃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주소에도 ‘깃발 걸린 곳’이라 귀엽게 쓰여 있다). 공간은 넓지 않지만 책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주인장분의 책에 대한 애정과 인사이트가 깊은 곳. 꼭 우리집 책장같은 이 서점을 둘러보다 궁금한 책이 생기면 주인장께 꼭 한 번 말을 걸어보자. 그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 관심사에 맞는 다른 작가까지 추천하며 사려깊은 대화가 이어질 것이니까. 작은 공간인만큼 책 큐레이션도 독특하고 내로우한 편이라 평소 읽지 않던 장르의 책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서점이다. 아마도 처음 보는 책들이 많을 이 공간에서 제주도의 여행 중 읽을 특별한 책을 찾아보는 것은 어떤지.

제주도 ‘책은선물’

INSTAGRAM : @books.are.gift


카페 ‘3인칭관찰자시점’

제주도 ‘3인칭관찰자시점’
제주도 ‘3인칭관찰자시점’

‘책은선물’에서 1분만 걸으면 커다란 마당을 가진, 바다를 그대로 마주하고 있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이 ‘3인칭관찰자시점’으로 특이한데, 그 이름을 증명하듯 메인 공간에는 가운데 조명을 두고 영화관 의자가 동그랗게 놓여 있다. 손님은 영화관 의자에 앉아 가운데의 조명을 모닥불 보듯 관음할 수 있는 구조. 사장님께 물어보니 건축디자인을 의뢰할 당시 레퍼런스로 보냈던 많은 사진들이 대부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건축가님이 제안한 컨셉이라고. 그게 이 카페의 메인 컨셉이자 이름이 되었고 덕분에 건축적으로도 재미있는 공간이 되었다 한다. 카페는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어서 좌식 의자와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를 가진 별채가 있는데, 두 공간 모두 의자와 테이블이 편안하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는 굉장히 사려깊은 곳이라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직접 로스팅하는 원두로 커피를 제공하고 있어서 사장님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장님이 같은 원두를 차갑고 뜨겁게 모두 맛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더욱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은선물’에서 책을 사서 ‘3인칭관찰자시점’에서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면 좋은 사유의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3인칭관찰자시점’

INSTAGRAM : @3rdperson.jeju


서점 ‘책방소리소문’

제주도 ‘책방소리소문’
제주도 ‘책방소리소문’

한경면에서 바다쪽이 아닌, 한라산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저지오름’, ‘마중오름’ 등 수많은 오름들 사이 소문난 책방이 하나 있다. 바로 ‘책방소리소문’이 그 서점인데, 이곳은 놀랍게도 해외의 책 시리즈 ‘죽기 전에 가봐야 할 ____ 150개’ 시리즈 중 서점 시리즈에 수록된 곳이다. 서점의 입구, 그 짧은 복도에는 위의 사진처럼 해당 책이 놓여져 있고, 귀엽게도 ‘책방소리소문’이 등장하는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보통의 독립서점을 생각한다면 규모가 제법 큰 곳인데, 그래서인지 큰 독립서점보다는 작은 대형서점같은 느낌을 풍기는 독특한 곳이다. 베스트셀러부터 아동 서적, 철학, 예술 등 독립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별 분류도 볼 수 있는 와중 처음 보는 책들까지 있어서 책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니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 소리소문(小里小文)은 ‘작은 마을의 작은 글’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이름에 부응하듯 이 책방은 작은 글들을 이 작은 마을에 한데모아 커다란 문화가 모이는 책방을 만든 듯하다. 잠시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주기적으로 플리마켓 등의 행사도 한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제주도 ‘책방소리소문’

INSTAGRAM : @sorisomoonbooks


‘고산의낮 고산의밤’

제주도 '고산의낮 고산의밤'
제주도 '고산의낮 고산의밤'

처음에 소개한 신창항에서 조금 더 내려와 차귀도로 건너갈 수 있는 차귀도포구 즈음에 오면 고산초등학교와 고산우체국을 중심으로 여러 가게가 모인 작은 번화가가 하나 있다. 사진관, 카페, 술집, 빈티지샵 등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이 모인 이 거리는 ‘고산로’인데, 이 한가운데 술집, 카페, 도서관이 모두 섞인 특이한 형태의 공간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바로 ‘고산의 낮, 고산의 밤’. 1인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는 이 공간은 1층에 위스키 바를 두고, 위층에는 칸막이로 공간을 나누어 혼자만을 위한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빌려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가득 찬 작은 책장과 방명록, 조명 하나, 그리고 내 몸 하나 편히 뉘일 수 있는 소파로 알차게 꾸며진 이 한 칸은 예약한 시간 동안 오롯이 나만의 것. 예약한 시간에 방문하면 간단한 안내사항과 함께 술 세트 혹은 커피 세트가 제공되고, 빌린 시간동안 이용자는 음료와 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책은 들고 가도, 여기에 있는 것을 읽어도 되며 음악 또한 혼자 이어폰을 껴도, 제공되는 헤드셋을 껴도, 혹은 그냥 공간 전체에 울려퍼지는 다른 칸 사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어도 된다. 마치 비행기 1등석에 앉은 것처럼 혼자 누워 있으면 주문한 것을 옆에 세팅해주시는데, 커피가 보온병에 담겨 오는 것이 또 하나의 작은 행복이다. 긴 이용시간동안 커피 식을 걱정 없이 책과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 일행과 같이 와도 따로 다른 방에 들어가야 하기에 여행 중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공간이다.

제주도 '고산의낮 고산의밤'

INSTAGRAM : @day_of_gosan


제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자연’, ‘힐링’, ‘고즈넉함’ 이런 조용한 단어들이었던 것 같은데, 제주도에 재미있는 것들이 워낙 많이 생기면서 종종 서울 못지않게 부산스러운 이미지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었는지 굳이굳이 찾아 떠나게 된 제주시 한경면에는 정확히 필자가 꿈꾸던 류의, 사유하기 좋은 공간들이 가득했다. ‘이 동네에 이것 말고는 딱히 갈 곳은 없지만, 여기만 가도 좋아.’ 이것이 딱 필자가 원하던 종류의 고즈넉함이었는데, 순전히 여기를 가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거나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 하루를 다 써도 아깝지 않을 공간들을 많이 발견하고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한 마음이다. 제주도에서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들르며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중간중간 이런 곳들을 ‘굳이’ 들러 시간을 천천히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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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더 밖으로 넓어지기 위해 더 안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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