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과잉 시대에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실천은 쉽지 않은 한편 중요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지만, 모든 정보를 일일이 마주하며 의식을 집중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렇기에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보가 소음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하는데요. 소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에게 침묵은 고요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침묵을 잃어버린 지 오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 또 다른 전환점을 마련해 줄 만한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삶터 곳곳에 펼쳐진 침묵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한 콘텐츠 세 편입니다.
『침묵의 세계』
『침묵의 세계』에서 다루는 침묵은 단순히 말하기를 멈추는 데에서 나아가, 말하기를 내려놓는 행위로서 능동적으로 존재합니다. 저자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으로 숙성되지 않은 언어는 시끄러운 소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침묵’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인식, 사물, 사랑, 자연, 자아 등 다양한 키워드에서부터 바라보는 시간을 안내하는데요. 책이 펼치는 논의를 따라 페이지를 넘기며 마침내 침묵에 새겨진 여러 의미를 알아차리는 순간에 다다르는 것. 이 책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여정이자 이 책만이 지닌 흐름입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침묵은 언어와 대척점에 선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어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는 존재로서 자리하지요. 그간 너무나도 쉽게 규정해 왔던 침묵을, 달리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한다는 점 또한 이 책만이 지닌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매개로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이 이 책의 페이지 너머에서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침묵을 찾아서(In Pursuit of Silence)>
사회가 끊임없이 자아내는 소음 속에서 침묵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영화 <침묵을 찾아서(In Pursuit of Silence)>는 세계 곳곳의 여러 문화와 전통 속에서 침묵이 인식되는 방식을 알아보고, 그 안에서 침묵이 해내는 것을 탐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침묵이 그저 일상의 공백에 그치지 않고, 깊은 사색을 끌어내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각 인터뷰마다 삽입되어 있는 짤막한 적막, 거대한 건물 내에 밀집한 군중을 관통한 침묵이 담긴 장면, 마치 앞을 가만히 응시하는 듯 렌즈에 잔잔히 담긴 파노라마. 이 영화에 침묵의 궤적이 기록된 방식은 다양한데요. 아름다운 풍경과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관객을 침묵의 세계로 이끈 이 영화는 2016년 10회 달라스 국제 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침묵으로의 초대
-트라피스트 수도원>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침묵의 공간, 트라피스트 수도원. 다큐멘터리 <침묵으로의 초대 –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그 내부를 최초로 기록합니다. 카메라는 수도사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 안의 침묵을 진솔하게 전할 뿐입니다. 그렇게 담담히 기록된 영상은 내적 고요를 재현하는 동시에, 때로는 수도사와의 인터뷰도 전하며 침묵이라는 선택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울림을 선사하는지 보여줍니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경험은 이토록 고요한 60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500여 년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는 침묵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삶이 펼쳐져 왔습니다. 영혼의 깊이를 탐색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 다큐멘터리는 기나긴 시간에서부터 응축된 울림으로 가닿으며 고유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는 고요한 언어, 침묵. 때로는 소리 있는 말보다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존재와 함께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정리합니다. 삶을 톺아보기도 하지요. 침묵의 기록에서부터 우리가 얻게 될 실마리는 무엇일지 떠올립니다. 나아가, 그 실마리와 더불어 저마다의 삶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꾸려갈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단순한 부재의 흔적이 아닌,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경험의 장으로서 침묵을 사유하기를 제안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