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여름, 가벼워진 옷차림에 생기를 더해줄 방법을 찾고 있다면 주얼리가 제격입니다. 목걸이, 팔찌, 반지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데일리 룩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데요. 최근 매력 넘치는 주얼리 브랜드 ‘무궁화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미와 멋을 감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이 브랜드 이야기가 궁금해 백석동에 위치한 작업실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인터뷰어 김태현
인터뷰이 무궁화랑 대표 조현걸
사진 무궁화랑 제공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한국적인 요소들을 주얼리에 담아내는 브랜드 ‘무궁화랑’을 운영하는 조현걸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계신 무궁화랑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한국의 미와 멋을 반지, 목걸이, 팔찌 등의 주얼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그저 옛 것이라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고, 삶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하군요.
오히려 전 서양 문화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비보잉을 시작했거든요. 미국의 힙합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고, 자연스레 힙합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 씬에 속한 사람들이 주얼리를 많이 착용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 인디언 문양을 띠거나 다이아몬드가 크게 박혀있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더군요. 저 역시 그런 아이템을 스스럼없이 착용해오던 중 문득 왜 한국에서 힙합 하는 사람들마저 한국적인 요소의 주얼리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애초에 선택지가 없다는 걸. 그래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무궁화, 태극기, 거북선 등 한국적인 요소가 물씬 나는 주얼리가 대중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으셨나요? 당시에는 제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더 생소했을 것 같아요.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동묘를 방문한 후 자신의 SNS에 ‘동묘 아재 패션’을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실 기억하시나요? 키코 자신도 이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에 응용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저 역시 시작부터 한국적인 요소는 그 자체만으로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유행을 무작정 쫓는다든지 팔릴 것 같은 디자인을 고집하는 게 아닌 내가 언제든 자연스럽게 하고 다닐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선물 받은 사람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착용한 모습이 상상되는 제품을 기준으로 디자인해야 대중들이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했죠.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눈길이 가는 문구가 있었는데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한국의 미와 멋을 주얼리에 담아낸다’는 소개말이 인상적이더군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를 풀어쓴 말입니다. 이는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백제 궁궐 건축에 대한 평가인데요. 처음 들었을 때부터 한국의 미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제품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가령 어떤 옷이나 액세서리가 그 자체로만 놓고 봤을 땐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막상 착용해 보면 다른 아이템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혼자 튀는 경우가 있어요. 반면 무난해 보이지만 다른 아이템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제가 만드는 제품들이 후자에 가까웠으면 해요. 늘 가까이 두고 수수하고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으니까요.
‘무궁화랑’이란 이름도 콘셉트와 잘 어울려요.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고민하던 중 무궁화가 떠올랐습니다. 일본에선 벚꽃으로 브랜딩을 잘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선 무궁화를 내세워 전개하는 브랜드가 딱히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법으로 정해진 국화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삶 속에 함께 해오며 무궁화가 보여주는 끈질긴 생명력과 은은한 아름다움이 우리와 잘 맞닿아 있다는 것에 착안해 ‘무궁화랑’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뿐만 아니라 ‘무궁’과 ‘화랑’의 합성어이기도 한데요. 신라시대의 ‘화랑’정신과 저의 작품을 선보이는 ‘화랑’이 ‘무궁’하게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상품 구상부터 제작, 생산, 고객 응대까지 직접 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요.
사실 디자이너가 원본 작업만 하고 생산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브랜드들이 거의 대다수죠. 저 역시 직원을 채용하고, 공장에서 생산 작업을 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가 무신사에 입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위 랭킹에 올랐을 때인데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확장하는 건 제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셨나요?
이건 순전히 제 성격 탓인데요. 같은 금액을 내고 누구는 제가 직접 세공한 제품을 받았는데, 누구는 공장에서 찍어 낸 제품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이 내키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채널을 축소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일일이 다 만들어 퀄리티 컨트롤하는 게 제품을 구매해 주셨던 분들과 앞으로 구매해 주실 분들과의 신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가던 동네 작은 맛집이 있는데요.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나 방문하고 있어요. 나중에 제 자녀가 생기면 함께 가고 싶고요. 저도 무궁화랑으로 이어진 고객들과 이런 관계이고 싶습니다. 작지만 무궁히 이어질 수 있는.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아닌 신상품을 할인하는 정책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나요?
맞습니다. 최근 패션계에서는 점점 이월 상품 할인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1~2년 지나서야 재고 할인을 하던 게 이제는 한두 달만 지나도 세일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죠.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빠르게 제값 주고 사는 사람은 손해 본다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그래서 무궁화랑은 처음 출시된 제품을 할인하기로 했어요. 정가로 산 사람이 생긴 뒤로는 할인하지 않고,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죠.
저 역시 대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문화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든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 파이가 작더라도 내 작품을 구매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간혹 지나치게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된 주얼리가 출시 초기에 한참 동안 팔리지 않다가도 몇 년 뒤 갑자기 주문이 우르르 들어오는 경우를 몇 번 겪어보니 모든 건 다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시류와 타협하기보단 하루하루 오늘 작업에 충실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정성을 쏟으면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진심이 통하한다고 생각해요.
우여곡절 끝에 궤도에 오른 요즘. 대형 패션 유튜브 채널에 소개되기도 하고, 유명 래퍼들의 착용샷이 올라오는 걸 보며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한국의 크롬하츠’, ‘한국의 고로스’라고 회자되는 것을 보며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제 그간 노력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했고요. 물론 비교할 걸 비교하라는 식의 안 좋은 의견도 있었지만 무궁화랑과 크롬하츠, 고로스의 차이는 결국 딱 하나라고 생각해요. 바로 ‘역사’. 여태껏 해왔듯 제가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 나아간다면 그분들도 알아줄 거라 생각합니다.
전통 디자인 요소 중 무궁화를 제외한 어느 것에 애착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리고 어떤 레퍼런스를 참조하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깃털 무늬의 ‘시치미’를 좋아해요. 시치미는 본래 고려 시대에 성행했던 매사냥에서 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의 꽁지나 발목에 걸어두던 매 주인의 이름표를 뜻하는데요.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할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요소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단청무늬와 문살무늬도 빼놓을 순 없겠네요. 루이뷔통이나 고야드에서 차용하는 모노그램 패턴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박물관이나 궁궐에 가서 직접 다양한 문화재와 건축물을 보며 한국적인 디자인 요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 만든 주얼리를 래퍼들이 했을 때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요.
최근 눈여겨보는 브랜드가 있나요?
브랜드라기보단 ‘일편심’이란 유튜브 채널을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과거 몸에 지니고 다니던 칼을 ‘장도’라고 하죠. 은으로 만든 ‘은장도’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일편심’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3대째 장도를 만드는 국가무형문화재 장도장 이수자의 채널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칼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요. 영상 중에는 장도를 만드는 작업 과정이 담긴 것도 있는데요,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담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귀감이 되더군요.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요즘 세대와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하반기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 2년 만에야 새 제품을 선보이게 되었어요. 현재 주문량을 생산하기도 빠듯한데, 신상 룩북 작업이나 홈페이지 상세 페이지 작업등 추가적인 업무를 할 엄두가 안났기 때문이죠. 그래도 올 하반기에는 홈페이지 리뉴얼과 함께 좋은 아이템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또한 좀 더 일상에서 자주 사용가능하면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아낼수 있는 생활용품을 제작해볼 계획도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 결국 ‘무궁화랑’을 사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WEBSITE : 무궁화랑
INSTAGRAM : @mugoonghwarang
‘무궁화랑’은 한국적인 요소를 주얼리에 담아내는 것을 넘어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현걸 대표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수준 높은 퀄리티뿐만 아니라 진심 어린 열정마저 느껴지는데요. 앞으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지속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