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신생 뮤직 페스티벌 ‘2024 아시안 팝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양일간 열정적인 공연을 펼쳤는데요. 쾌적한 환경과 생소한 뮤지선 등, 기존의 행사들과 차별화되는 신선한 페스티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페스티벌이 국내 뮤직 페스티벌의 발전 방향성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도 느꼈습니다.
새로운 페스티벌의 등장
2024 아시안 팝 페스티벌
페스티벌 시장이 커가면서 새로운 뮤직 페스티벌이 하나 둘 열리고 있습니다만, 필자의 눈에 제일 먼저 띈 행사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이름도 비슷한 ‘아시안 팝 스테이지’라는 행사가 연상됐기 때문입니다. 아시안 팝 스테이지는 홍대 인디 밴드들이 모여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라이브 클럽 데이’의 특별 편으로, 아시아의 아티스트들을 초빙해 라인업을 꾸린 클럽 공연입니다. 작년과 올해 한국을 방문한 히츠지분카쿠와 대만을 대표하는 밴드 No Party For Cao Dong 등이 섰던 무대이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아시안 팝 스테이지의 연장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니(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필자의 생각처럼 ‘아시안 팝 페스티벌’은 라이브 클럽 데이로부터 출발한 페스티벌이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DMZ피스트레인을 다녀온 이후로, 신생 뮤직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였고, 그 어떤 페스티벌보다 신선한 얼굴들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개최지인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도 흥미로웠습니다. 호텔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필자가 갔던 어떤 페스티벌보다도 쾌적하고, 신선한 페스티벌이었습니다. 파라다이스 호텔의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공연장과 동선, 스태프들의 매끄러운 진행, 아티스트를 맞이하는 관객들의 관람 매너 등, 기존의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었던 환경과 문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이런 행사를 준비한 APF 기획단과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거대 자본 없이 ‘아시안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대형 페스티벌을 준비하게 된 걸까요?
자생하는 음악 신을 빚은 안목
APF 컴퍼니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기획한 APF 컴퍼니의 박정용 대표는 한국 대중 음악계에 잔뼈가 굵은 배테랑입니다. 홍대 인디신을 대표하는 공연장 벨로주를 17년 동안 운영하고 있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기도 합니다. 보석 같은 뮤지션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해 온 네이버의 ‘온스테이지’도 박정용 대표가 기획하기도 했고요. 국내 인디 음악과 대중의 연결점을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전신인 ‘아시아 팝 스테이지’도 그의 손에서 빚어졌습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총 7년 동안 기라성 같은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홍대 음악신에 초대해 왔지요. 장르도 다양했습니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팝처럼 대중적인 음악을 포함해 레게, 크로스오버뮤직, 재즈 등 비주류 장르를 다루는 뮤지션들도 소개했고요. 음악의 다양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애정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디자인 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안 팝 스테이지를 기획안 이유에 대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대답했습니다. 홍대 앞에서 ‘라이브클럽데이’라는 행사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니, 아시아의 음악가들이 내한 공연을 제안하게 된 것이라고요. 그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의 밴드, 아티스트들은 지역과 문화적인 특성에 의해 이미 서로 교류하는 상황이었고, 함께 만날 수 있는 공연이라는 형태의 접점에 목말라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접점에 ‘라이브클럽데이’가 있었을 뿐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인디 음악 신 안에서 몸을 담고, 대중과 아티스트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박정용 대표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라이브클럽데이’와 ‘벨로주’처럼,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싶다’라는 의지가 투영된 공간과 기획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결과 ‘아시안 팝 페스티벌’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버스킹과 뮤직 페스티벌
누구를 무대에 초대할 것 인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케이팝은 주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케이팝이 주요 수출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해외 시장의 규모와 수익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요. 작년부터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이 많아진 것도 케이팝의 공헌이 클 것입니다. 그에 따라 한국 음악 시장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도 높아졌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음악 시장은 다양성을 수용할 만큼, 포용력이 커졌을까요?
인디 밴드가 장르적 포용성의 절대적인 지표라고는 할 순 없습니다만, 음악 시장의 유동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요소입니다. 국내 뮤직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신선한 밴드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오랜 시간 신을 지켜온 크라잉넛, 김창완 밴드와 같은 밴드는 물론, 한로로, 해서웨이처럼 젊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밴드도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주류 해외 아티스트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접점은 줄어든 것도 맞습니다. 오히려 페스티벌 2세대라고 불린, 지산 록페스티벌, 안산 벨리 록 페스티벌 시절이 장르적 다양성 측면에선 더욱 넓었고요.
사실 비주류 아티스트, 그것도 해외 뮤지션을 페스티벌에 세우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입니다. 페스티벌에서 ‘집객 능력’은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팬덤이 두터운 아티스트일수록,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최 측 입장에선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없습니다. 뮤직 페스티벌이 꼭 ‘생소한 아티스트를 소개’ 해야 한다는 이유도 없고요. 레저나 문화 활동으로 봤을 때, 평균적인 만족도가 높은 페스티벌이 성공적인 페스티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한국은 언제나 수출하고 밖으로 보내는 데에 관심이 있었어요.”
_APF 컴퍼니 박정용 대표, 디자인 플러스 인터뷰 中
박정용 대표의 말을 곱씹으며 뮤직 페스티벌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버스킹과 뮤직 페스티벌은 얼마나 다를까요? 상설 무대에 특정한 뮤지션을 세우고,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무대 앞으로 모여 공연을 봅니다. 그렇다면,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주최사의 안목과 그걸 즐기는 관객들의 열린 태도가 맞닿을 때, 뮤직 페스티벌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 아닐까요. 뮤직 페스티벌은 넓은 의미에서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된 아티스트 쇼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페스티벌 중,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서서 노래할 수 있는 무대는 충분한지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페스티벌을 즐기는 젊은 세대
어떻게 그들을 끌어들일 것인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페스티벌이란, 명확한 기준 아래 선별된 아티스트들이 호기심 많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기존의 페스티벌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박정용 대표는 디자인 플러스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이 끝나고 나서 공연 신을 바라보고 즐기는 관객들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는데요. 페스티벌과 공연 그리고 인디펜던트 문화를 즐기는 세대와 음악을 접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음악을 접하고, 즐기는 근본적인 방식이 변했습니다. 음악 플랫폼의 다변화로,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고, 국내외 인디 음악과 리스너들의 간접적인 터치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해외 인디 밴드들을 찾기 위해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 속을 기꺼이 헤맵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그 이름에 걸맞은 아티스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일본,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음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지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트 팝 그룹 WEDNESDAY CAMPANELLA와 인도의 싱어송라이터 이샤나 사라스바티, 멜로우한 사운드의 중국 난징의 Schoolgirl byebye. 디지털 음원이나 유튜브로만 접하던 아시아 각지의 아티스트들이 국내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장르의 다양성도 근래 어떤 페스티벌보다 다양했습니다. DMZ 피스트레인에서 무대를 말 그대로 찢어놨다던 일렉트로닉 뮤지션 키라라, 포크송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로 이루어진 김오키 새턴발라드 등 주목해야 할 장르 아티스트들의 라이브도 볼 수 있는 풍성한 페스티벌이었습니다.
페스티벌의 물리적인 문턱을 낮추다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APF 기획단은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의 니즈를 만족할 만한 페스티벌 장소 선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록밴드의 강렬한 사운드를 충족시켜야 하고, 인기 있는 아티스트의 팬덤을 수용할 수 있는 럽은 공간이어야 하며, 장르 아티스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라이브 환경이 받쳐줘야 하는 곳이어야 했죠. 게다가 위치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파라다이스 시티는 APF 기획단이 필요로 하는 요소가 모두 갖추어진 곳이었습니다. 인천공항 인근에 위치해 있어 교통도 편리했고, 야외 잔디와 라이브 스테이지도 구비하고 있었죠. APF 기획단의 취지에 공감한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은 호텔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페스티벌을 구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두 집단이 만나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아시안 팝 페스티벌’를 전혀 새로운 페스티벌로 만들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죠.
뮤직 페스티벌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행사입니다. 야외 스테이지는 날씨의 변수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정된 부지 내에 관객들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스테이지 주변은 늘 인산인해를 이루죠. 피크닉 존을 사수하기 위해 오픈 런을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름의 낮 공연은 더위와 싸워야 하고, 갑작스러운 비에도 대비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시안 팝 페스티벌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의 인프라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페스티벌 야외 공연장은 파라다이스 시티 야외 잔디에 조성되었는데요, 페스티벌 내방객에게 로비를 개방하여 호텔 내부를 지나 야외 잔디밭으로 걸어갈 수 있게끔 동선을 짰습니다. 덕분에 첫날 비가 쏟아졌을 때도, 방문객들이 비를 피할 장소를 안전하게 찾을 수 있었죠.
실내 공연장인 CITY STAGE는 야외 공연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더위를 피하기도 용이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음향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밴드 사운드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요. 한여름 뮤직 페스티벌을 즐기는 관객들의 ‘쨍쨍 내리쬐는 해를 피해 실내로 숨어들어 에어컨을 쐴 수 있는 페스티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바람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두 개의 스테이지 외에도 RUBIK STAGE와 CHROMA STAGE도 있었습니다. 두 스테이지 모두 파라다이스시티의 음악 공연 공간으로, 전자는 전문 라이브 뮤직 라운지이고 후자는 DJ클럽 스테이지입니다. 실내 공연의 특화된 포크 싱어송라이터나 멜로우한 사운드의 밴드들의 음악은 RUBIK STAGE에서, 디제이들의 공연은 CHROMA STAGE에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장르의 특성을 고려한 스테이지 배치와 파라다이스시티의 완성도 높은 공간이 어우러져 여타 다른 페스티벌에서 경험하기 힘든 몰입도 높은 공연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프라 측면에서 제일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음식입니다. 페스티벌에서 푸드 코트에서 사 먹는 재미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매 끼를 호텔 푸드 코드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아시안 팝 페스티벌만이 가진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밥은 중요하잖아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공연 시장의 매출 금액은 영화계 매출을 처음으로 앞섰습니다. 대중음악 공연건수는 전년 대비 18% 정도 상승했다고 하니, 뮤직 페스티벌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뮤직 페스티벌의 매력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음악을 매개로 나이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야외에 모여 한 마음이 되어 노래 부를 수 있는 비일상의 공간이니까요. 전체 라이브 산업에서 뮤직 페스티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으나, 많은 음악 팬들이 페스티벌을 찾아 나서고, 관계자들이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페스티벌을 즐기던 고정 관객층들 위로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문가 못지않게 해외 아티스트들에 눈이 밝습니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대중의 취향과 얼마큼 유리되어 있는지도 잘 압니다. 그렇다면, 고정 관객층이 향유하고 있던 페스티벌들은 신세대의 니즈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을까요?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유심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낯선 이름들 사이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아티스트의 이름이 보입니다. 마이 앤트 메리, 브로콜리 너마저, 김창완 밴드. 페스티벌을 오래 즐긴 이들이라면 반갑게 달려가 뛰놀 수 있는 뮤지션들입니다. 뮤직 페스티벌은 특정한 팬덤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나 뛰놀 수 있는, 서로를 환대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여야 합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은 국내 대중음악신에 대한 기획자들의 진지한 고찰과 기존 페스티벌 부지와 차별화된 베뉴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홍대신에서 자생하며 크고 작은 라이브 공연을 주관하고, 관심 어린 시선으로 아티스트를 살펴본 APF 기획단의 안목과 기획력 위로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라는 전혀 새로운 페스티벌이 이후 열린 크고 작은 페스티벌의 완성도를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 디자인플러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APF 컴퍼니 박정용 대표와 나눈 대화, 김혜원 기자
- ALPS, ‘한국 음악 페스티벌은 다시 성장하고 있는가?’, ALPS 김미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