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온
광주비엔날레의 시작

광주의 정체성을 담고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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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아트페어의 성행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면, 호황기를 맞았던 국내 미술시장의 열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트페어는 넓게 뚫린 공간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작품을 구경하는 맛이 있죠. 이같이 미술품을 한 데 모아 전시하는 행사를 미술 축제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미술 축제에서는 미술관, 갤러리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으로 작품을 마주할 수 있죠. 크기가 큰 작품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규모가 큰 전시가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비엔날레 역시 대형 전시의 형태로 화이트큐브에서 경험할 수 있느 느낌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 인도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비엔날레와 부산 비엔날레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비엔날레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비엔날레라는 형태, 단위로 전달하는 전시와 작품의 메시지는 어떤 내용인지,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톺아보고자 합니다.


한국 미술, 세계를 향해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이미지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입니다. 잘 알려진 베니스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등 모두 격년으로 열리는 대규모 전시 행사죠. 국내에는 광주 비엔날레와 부산 비엔날레가 대표적입니다. 1980년대는 비엔날레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비엔날레들이 개최되며 국제 대규모 전시가 성행했죠.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 WEBZINE ACC

우리나라 최초의 비엔날레는 바로 광주 비엔날레입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1995년 시작해 올해 30주년을 맞게 되죠. 1995년에는 한국 미술계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입니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1980년대부터 국제 전시가 활발해진 세계 미술 동향에 발맞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광주 비엔날레 개최였습니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이를 개최하고, 해외 미술과 국내 미술이 교류하는 장을 직접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한편, 1990년대에는 정부 역시 ‘세계화’ 이슈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냉전체제가 막을 내린 뒤, 문민정부는 세계 경제 질서 속 우리나라의 입지를 모색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세계화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것이죠.a) 이러한 시기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비엔날레가, 광주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광주의 정체성을 담다

비엔날레는 각국의 문화교류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개최국과 개최 도시의 문화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단순히 한 대형 전시의 제목이라기보다는 당시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지니고자 하는 문화적 위상과 한국 미술계의 현황 또는 방향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제1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제1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이미지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제1회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the borders)”입니다. ‘국가, 민족, 이념, 종교 등을 초월하여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세계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미술전시에서 이같은 주제를 내걺으로써 예술을 통한 화합, 치유의 가능성과 희망적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 포함했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광주라는 지역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와도 연결됩니다.

광주 비엔날레 창설 취지문은 ‘광주의 민주적 시민 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건강한 민족 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 시대 세계화의 일원이자 문화생산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비엔날레를 통해 광주를 국제적인 예술 중심지로 만들 뿐만 아니라 광주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고자 하죠. 문화예술을 통해 광주민주화항쟁의 상처를 치유하며 지역성을 내포하고자 하였으나,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의도에 비해 뚜렷한 지역 정체성을 관철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b) 하지만, 이후 비엔날레에서는 차츰 전시와 지역성 간 연계성을 보다 향상하며 광주 민주정신을 선명하게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30년 전과 오늘

광주 비엔날레 재단은 창설 30주년을 맞아 베니스에서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별전은 광주 비엔날레의 역사뿐만 아니라 광주라는 지역이 지니고 있는 시민정신까지 알리고 있죠. 이곳에서 30년 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인 백남준의 ‘고인돌(1995)’과 크초(Kch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1995)’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 “고인돌”, 1995, 이미지 출처: 남도일보
크초, “잊어버리기 위하여(To Forget)”, 1995, 이미지 출처: 남도일보

‘고인돌’은 TV, 장독, 돌 오브제를 설치해 ‘고인돌’이라는 제목을 지음으로써 광주민주화항쟁 희생자를 기리는 직관적인 작품입니다.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쿠바에서 보트로 탈출하는 난민 공동체의 삶을 표현한 작품이죠. 작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는, 보트를 타고 떠나야 하는 ‘보트 피플’들이 타던 뗏목, 타이어, 낡은 배 등을 활용해 난민들의 위태로운 삶을 형상화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우리는 타국으로 떠나야 합니다. 베니스에서 이 작품들이 건네는 메시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30년 전 작품들이 지닌 의미가, ‘경계를 넘어’라는 비엔날레의 주제가 오늘날도 유효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30년 전 미술이 던지던 질문에 얼마나 명쾌한 답을, 선명한 해결책을 내줄 수 있을까요.


WEBSITE : 광주비엔날레


2024년 9월에 열리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모두의 울림”을 주제로 설정하였으며, NCT위시를 홍보대사로 위촉해 홍보에 열을 가하고 있습니다. 9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광주, 부산과 함께 ‘대한민국 미술 축제’를 개최하며 K-미술을 전 세계에 알린다고 합니다. 30년 전, 한국 미술 세계화의 첫걸음을 내딛고자 시작한 광주 비엔날레는 이제 한국 미술계의 큰 기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어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광주에서 만나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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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비

막연히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예술을 나누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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