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인 듯 공포 아닌
피서 영화 3편

호러 초심자가 소재에 속아
외면했다면 주목해야 할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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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공포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이라는 말도 있죠. 공포와 마주하는 순간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단 이맘때면 공포심을 건드리는 영화를 의도적으로 찾아나서기도 합니다. 더위를 식혀주는 서늘함의 쾌감에 빠져서일까요. 스크린 너머의 일은 실제 당면한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즐길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철만 되면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장르’와 어떤 이유로든 좀처럼 가까워지기 어려운 분들도 많을 거예요. 굳이 두려움에 맞설 필요는 없지만 좀비, 흡혈귀, 유령 소재는 무조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편견 탓에 놓치기에는 아쉬운 작품 만큼은 접해보시기를. 호러 장르를 지배하는 요소가 등장하지만 초심자에게도 장벽 없는 작품 세 편을 꼽아봤습니다.


좀비의 웃기는 재주
<새벽의 황당한 저주>, 2004

<새벽의 황당한 저주>, 2004
이미지 출처: IMDb

호러 영화의 하위 장르인 좀비물은 1930년대부터 등장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를 말하는 좀비의 초기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는데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좀비의 특징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좀비 장르의 또다른 뿌리로 평가받는 <새벽의 저주>(1978) 역시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했습니다. 좀비보다 더 좀비같은 모양을 한 인간 무리 사이에서 등장하는 숀과 에드는 마찬가지로 권태로운 일상 한가운데 있습니다. 마지못해 사는 듯한 이들은 별별 시련에도 무기력하게 대응할 뿐입니다. 그런데 공격성도, 민첩성도 없이 어딘가 모자란 좀비의 출현은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이미지 출처: IMDb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음악과 장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웃음을 자아내 독특합니다. 숀과 에드의 활동성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에서 청각적, 시각적 리듬감 역시 폭발하고 짜릿함에 보는 이도 각성하고야 맙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공식 트레일러

뱀파이어의 눈에 비친 인간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이미지 출처: IMDb

뱀파이어는 대개 인간에 굶주린 충동성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속 뱀파이어는 다르네요. 음악이나 문학, 예술에 심취해 고고함을 유지하는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는 절제가 퍽 익숙합니다. 최대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순혈을 공급하는 공급책에 기대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하는 태도가 증명합니다.

다만 수세기에 걸쳐 인간사를 꿰뚫고 살아온 이들의 관점에서 인간은 얕잡아볼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아담은 그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염증으로 가득차 있죠. 그러므로 세상에 기대없는 절망에 빠져있을 때, 이브의 여동생은 전혀 다른 성향으로 아담과 이브의 일상에 난입하며 본능을 자극합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이미지 출처: IMDb

이에 갈수록 선명해지는 사실은 인간을 경멸하지만 영양분이 되는 인간이 없으면 역설적이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뱀파이어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 역사 속 과학자, 작가와 음악가, 예술인은 죽음 앞에 스러진 ‘고작 인간’에 불과하지만 남겨진 이론과 명작의 위대함은 오히려 강조되는 역설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결국 제목 마저 배반하게 되는 모순은 뱀파이어보단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비춰지는군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공식 트레일러

유령이 부유하는 이유
<고스트 스토리>, 2017

<고스트 스토리>, 2017
이미지 출처: IMDb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에도 세기가 있다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공포심은 가장 강한 세기가 아닐까 합니다. 초자연적 현상에 가슴을 졸이는 경험을 하며 인간은 육신을 떠난 영혼을 생각하곤 하죠. 대체로 그 양상은 인간을 해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고스트 스토리>는 그저 ‘평범한 유령’의 이야기입니다. 유령판 인간극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일부가 되어주던 연인 C와 M은 더이상 같은 차원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C와 홀로 남은 M입니다. <고스트 스토리>는 화면비, 장면이 전환되는 호흡에서부터 자연스러운 인간의 시선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내내 이질감을 견뎌야 합니다. 주춤대며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육체를 잃은 영혼은 사랑하는 이의 곁에, 기억이 묻은 장소에 어떻게 머무르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자면 잊혀지고 싶지 않은 염원은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여문다는 걸 엿볼 수도 있습니다.

<고스트 스토리> 공식 트레일러

호러 장르, 고어 장르 영화들은 악몽을 한바탕 꾸고 일어난 효과를 자아냅니다. 무의식에 잠재한 공포를 부러 끄집어내는 ‘의식’은 안전한 마음의 자리를 확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 서서히 면역력이 생긴 필자는 어느새 섬뜩한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보게 되었죠. 의식에 기꺼이 동참할 분들에게는 사심 가득한 장르 영화 리스트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세요. 추천한 세 편의 영화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탈을 썼지만 일상을, 인간을, 떠나보낸 이를 바라보게 하는, ‘공포기’ 거둬낸 코미디 혹은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필자 역시 처음부터 익숙했던 것은 아니기에 이제 막 호기심이 생긴 장르 영화 초심자를 위한 변주 작품들로 채웠으니까요. 긴장 풀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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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단면에서 철학하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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