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수진입니다.

이례적으로 무덥고 유난스러운 여름 기운에 몸과 마음의 기력마저 잃어버리기 쉽게 느껴집니다. 굳은 마음으로 외출하더라도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지쳐버립니다. 변덕스러운 8월의 한가운데서 인사드립니다. 이 뉴스레터를 열어본 당신이라면 그간 ANTIEGG의 면면을 다정한 눈으로 보아주셨겠지요. 조금은 멋쩍은 마음으로 소개하자면 저는 디자이너로 ANTIEGG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직접 말을 건네는 일은 드물었지만 나의 손을 거친 이미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이미 자주 만났을지도요. ANTIEGG에 속한 이 이야기 또한 유심히 읽어주실 다정한 당신을 커서의 있음과 없음의 틈 사이로 상상하며 써 내려갑니다.

‘무기력(無氣力), 명사 :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

날씨 탓일까요? 고백하건대 요즘 들어 저는 자꾸만 무기력했습니다. 단어 그대로 읽어보자면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대체로 기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평소라면 가뿐히 완수했을 일들이 버겁게만 느껴지거나, 그동안은 잘 넘겨 왔던 거스러미 같은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마음에 담겨 있기도 하고요. 때문에 몸의 상태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어떨 때 무기력하다고 느끼시나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아도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을 때, 저는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때에 저는 무언가를 닥치는 대로 보고 읽습니다. 책, 혹은 영화 같은 종류의 것들을 계속해서 소비하죠. 상태를 전환해 볼 만한 스위치를 찾으려고요. 이번에도 일과를 마치고 작은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비춥니다. 단출한 히라야마의 집처럼 일상 또한 아주 단순합니다. 매일 새벽 빗자루질 소리에 눈을 뜨고, 작은 차를 타고 담당 화장실로 출근하죠. 가끔 퇴근 후 단골 가게에 들러 하루를 마무리하고 휴일에는 빨래방 찾고 빨래가 다 될 동안 동네 목욕탕을 이용합니다. 그의 작은 세계는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영화는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 나아가 살아내는 삶을 따라갑니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표면적으로는 매일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같은 일상 안에 출근하며 고른 카세트의 배경 음악이, 우연히 계속되는 새로운 만남이, 매일 지나는 도시의 풍경과 날씨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조차 매일, 매 순간이 다릅니다. 그런 우연의 순간마다 히라야마는 조용히 미소 짓습니다. 영화의 말미는 햇살 아래 나무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코모레비’라는 단어를 설명합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이라는 뜻의 일본어라고요. 비슷해 보이지만 매일이 다릅니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그 사이로 비치는 순간의 햇살과 같이 모든 것은 그 찰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일상은 어떤가요. 잘 지내시는가요. 요즘 들어 더욱 자주 주고받는 물음입니다. 잘 살아낸 하루는 어떤 날일까 그려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걸리는 일이 없고,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고, 맛있은 음식을 먹고, 미뤄왔던 일을 청산하고… 하지만 우리의 삶에 잘 산 하루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최악의 날만 더 오래 남는 것처럼 느껴지죠. 마음 같지 않은 날, 미움받는 것이 버거운 날, 다 망쳐버린 것만 같은 날들이요. 한 발짝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 철저하게 고독해지는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스스로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됩니다. 기쁨과 슬픔과 기대감과 회한이 뒤섞인 채로요. 좋은 날과 그저 그런 날, 좋지 않은 날들의 무수한 집합을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우리의 삶도 ‘코모레비’로 일렁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대부분 같은 시간 잠에서 깨고, 같은 장소로 가,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장소를 지나쳐,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대체로 반복되는 하루에 쉽게 무감각해집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 나의 선택은 소거된 것 만 같은 감각을 느끼는지도요. 영화 속 히라야마는 조카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라고요. 오늘은 오늘뿐이에요. 지금은 지금뿐이고요.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시나요? 당연한 지금을 붙잡아 이 순간에 머물러 보세요. 여러분만의 찬란한 코모레비를 잦게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 류샤오보가 남겼다는 말: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또 그가 부인 류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잘 살아가세요.”

    괄호 속 한자어를 읽으니 이 말은 더 자세히 이런 뜻이다:
    “늘 기쁨을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_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ANTIEGG에서
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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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실재하게 합니다.
고착시키지 않고 포용하며, 오래 가꾸는 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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