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을 발굴한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

세계적인 예술가의 탄생
그 뒤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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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긴 시간 무언가를 좋아하고, 실행하고, 지키는 꾸준함을 사랑합니다. 뜻밖의 변화와 현실의 벽 앞에서도, 끝끝내 놓지 않는 굳은 의지를 보며 감탄합니다. 당장에 먹고 살 형편도, 물감과 붓을 사기 위한 여유도 없는 예술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려낸 작품에 감동하는 이유입니다. 갖은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았던 그들의 분투는 숭고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 뒤엔 또 다른 이의 희생과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를 후원하고 작품을 소장하며 널리 공유하기도 하는 컬렉터입니다.

페기 구겐하임은 세계적인 예술가를 발굴하고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컬렉터입니다. 페기 구겐하임은 뛰어난 안목과 사교성을 바탕으로 잭슨 폴록과 같은 예술가를 발굴해 지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한 틈에 예술가와 작품을 구출하면서 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변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들이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곁을 지킨 페기 구겐하임을 소개합니다.


예술에서 희망을 찾은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
이미지 출처: 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 구겐하임이란 이름, 익숙하지 않나요? 그녀의 이름을 딴 구겐하임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은 풍부한 컬렉션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뉴욕과 스페인 빌바오, 독일 베를린과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여러 도시에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처럼 전설적인 컬렉터인 페기 구겐하임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광산업과 군수업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쌓은 유대인 집안이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이미지 출처: Peggy Guggenheim Collection

그러나 페기 구겐하임은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편안하게 유년기를 보냈을 것 같지만 불안정함 속에 친척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불륜을 거듭하던 아버지는 타이타닉호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굴곡이 계속해 찾아올 때, 예술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미술관에 다니던 것을 시작으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책을 통해 예술에 깊은 관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은 예술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지자 고향인 미국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술계 중심지였던 파리로 향해 마르셸 뒤샹, 막스 에른스트, 피트 몬드리안 등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했습니다. 나아가 직접 화랑을 열고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중에게 알릴 장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발견한 예술가

Peggy Guggenheim and Jackson Pollock in front of Pollock’s Mural, 1943.
Peggy Guggenheim and Jackson Pollock in front of Pollock’s Mural, 1943. © Foto George Kargar. Image courtesy of The University of Iowa.

페기 구겐하임은 빛나는 눈으로 오늘날 거장이 된 무명작가를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페기 구겐하임은 다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금세기미술 화랑을 열었습니다. 이어 차세대 화가를 찾기 위해 연 공모전에서 잭슨 폴록의 작품을 마주합니다.

당시 잭슨 폴록은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못한 무명작가였고, 액션페인팅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선보이기 전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미술관에서 일하며 우울과 불안을 겪는 중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페기 구겐하임은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거친 색감과 표현이 눈에 띄었고, 가까운 지인인 피터 몬드리안, 마르셸 뒤샹과 나눈 이야기도 힘이 되었습니다.

Jackson Pollock, ”Mural”, 1943. Gift of Peggy Guggenheim, 1959.
Jackson Pollock, ”Mural”, 1943. Gift of Peggy Guggenheim, 1959. University of Iowa Museum of Art. Reproduced with permission from The University of Iowa.

페기 구겐하임은 잭슨 폴록에게 높은 월급과 함께 타운하우스에 전시할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잭슨 폴록은 15제곱미터에 이르는 강렬한 벽화를 완성합니다. 미국을 누비는 소, 말, 영양 등 수많은 동물의 폭주를 표현한 이 그림은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잭슨 폴록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집을 구해주고, 생활비를 지원한 덕에 잭슨 폴록은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어떠한 도상도 알아볼 수 없게 물감을 강렬히 흩뿌리는 독특한 액션페인팅 기법을 완성해 주목받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문화적으로도 스타를 보여주고 싶었던 정치적 배경도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Abstract Gallery, Art of This Century, New York, 1942
Abstract Gallery, Art of This Century, New York, 1942, 이미지 출처: 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 구겐하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작가일 수 있었던 잭슨 폴록을 찾은 데에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 묻는 질문에 잭슨 폴록을 발굴한 것이 첫 번째, 자신이 수집한 전체 컬렉션이 두 번째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크 로스코, 빌럼 데 쿠닝 등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했습니다. 현대미술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페기 구겐하임의 선구안과 굳건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쟁에 위협에서
예술가를 구원하다

페기 구겐하임
이미지 출처: Peggy Guggenheim Collection

페기 구겐하임이 파리에서 활발히 갤러리를 열고 작품을 소개할 당시, 거대한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 예술계를 뒤엎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나치의 돌격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때에 페기 구겐하임은 예술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 현대미술 작품들을 매일 모으기 시작합니다. 도움을 요청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관할 가치가 없는 작품이란 답을 들으면서도 ‘누군가는 한 시대의 미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Guggenheim with artists in exile at her New York City apartment, circa 1942
Guggenheim with artists in exile at her New York City apartment, circa 1942. From BPK Bildagentur/Muenchner Stadtmuseum/Hermann Landshoff/Art Resource, N.Y.

예술가들의 작품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선박에 실어 미국으로 향합니다. 나치의 위협을 받았던 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등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비밀 망명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데에도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에 전쟁으로 영원히 파괴될 뻔만 수많은 작품과 작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구출작전의 결과 미술의 중심지 또한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페기 구겐하임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아낌없는 후원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컬렉션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저택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으로 남았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있었기에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고, 기쁨과 위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바라보면서 예술가 뿐만 아니라 컬렉터와 다양한 후원자의 힘으로 예술이 지금의 모습을 이룰 수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 덕분에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해온 예술가들을 그려보고,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꾸준함 뒤에 또 다른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응원과 지지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상기하며 새로운 눈으로 예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Picture of 이수현

이수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
삶을 깨트리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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